요 11:21~26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우리가 부활하면 흰색 세마포 옷을 입고 주님 앞
요한복음은 굉장히 어려운 책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을 공부하다 보면 성경 전체의 흐름이 다 잡힐 것이다. 과거에 일반적으로 보는 요한복음의 관점은 4 가지가 있다. 첫째,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서 중에서 하나 혹은 두 개를 근거로 해서 기록했다는 설이다. 둘째, 요한복음은 유대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글의 흐름이 헬라적 사상을 가지고 있다. 셋째, 요한복음은 예수의 역사성은 없고 신학적 가치만 있다는 것이다. 넷째, 요한복음이 역사적으로 볼 때 1세기 마지막 단계에 기록한 것으로 보고 공관복음을 보고 신학적으로 재편집 했다는 것
요 1:9~13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그 어떤 중간 매체가 끼어서도 안 된다. 중간에 끼어들면 빛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창세기의 태초는 천지창조를 시작하면서 태초이고 요한복음의 태초는 창조 이전의 태초이다. 말씀은 창조 이전에 존재했다. 요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라고 하면서 말씀과 하나님을 구분 시킨다. 중요한 것은 말씀이 인격으로 표현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이 말씀이 요1:14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육신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다. 말씀이 인간이 되었다.그렇다면 말씀과 하나님과 예수님은 어떤 관
(요 8: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요 8: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요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에베소서 1장 3-5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되어 있다는 말씀이 나온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신약 성경의 맨 처음은 복음서로 구성되어 있다. 신약의 복음서는 구약의 구성과 차별되는 독특한 이름과 내용을 갖는다. 마태 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시작한다. 복음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세계”로 시작된다. 마가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복음은 “구원의 기쁜 소식”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 그 복음의 내용은 논리적으로 어떤 말이나 메시지가 되어야 할텐데,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복음으로 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