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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는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그릇된 교황의 권위에 항거하여, 그 교리를 논박하고, 성경이 지니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최고 권위의 토대에서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이라고 외쳤습니다. 루터 자신은 ‘종교개혁’을 일으켰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가 사용한 “오직”이라는 말 때문에 피할 수 없이 개혁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루터가 오직이라는 말로 선포한 성경, 믿음, 은혜, 그리스도, 영광은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가 불가능한 것임을 주장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여러 대안
신학덕담
황상하
2020.06.01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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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영웅이나 위대한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또는 어릴 때부터 뭔가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한 이야기는 사실이기보다는 영웅 만들기에 의해서 덧붙여진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에디슨같이 어릴 때는 어리바리 한 사람이 나중에 크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유명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 사람에 대해 어릴 때도 특별했다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분의 엄청난 상승 변화를 한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사형수가 임금의 아들이 된 이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성공을 이야기하자면 이보다 더
신학덕담
황상하
2020.05.25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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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문화에는 죽은 자에 대한 집요한 애착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시신을 정중히 다루고 명당을 찾아 장례를 지내는 것이나 시신을 썩지 않게 하는 미이라 기술이 발전했던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죽은 자에 대한 살아 있는 자들의 이 같은 애착은 죽은 자가 살아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종교적 희망의 인간심리 때문입니다. 죽음은 인간의 모든 영화를 헛되게 합니다. 아무리 죽은 자의 시신을 정성들여 장례를 지내고 시신을 썩지 않게 보존하고 무덤을 화려하게 꾸며도 죽음의 허무를 상쇄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요즘은 기독교에서도 화장
신학덕담
황상하
2020.05.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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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저널리스트 토마스 라슨(Tomas Lasson)은 그의 저서 “The Race to the Top: The Real Story of Globalization”에서 ‘세계화는 세계의 축소 과정, 거리가 짧아지고, 사물이 더 가까워지는 과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이 말은 세계의 한쪽에 있는 누군가가 세계의 다른 쪽에 있는 누군가와 상호작용하고, 상호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점점 더 쉬워지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동 수단의 발달은 세계화를 더욱 촉진했습니다. 며칠에 걸려 갈 수 있는 거리를 몇 시간 만에 갈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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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20.05.1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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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를 믿어 받은 구원을 은혜라고 하는데, 이 은혜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법률적 관계에서 은혜의 관계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법률적 관계는 행한 만큼 상이나 벌을 받는 관계입니다. 상을 받으려면 합법적 행동을 해야 하고 불법을 행하면 벌을 받습니다. 이런 관계에서는 상 받기 싫고 벌 받아도 괜찮다면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그만입니다. 그런데 은혜의 관계에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은혜의 관계는 다른 말로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 사랑의 관계에서는 “내가 나쁜 짓 하고 내가 벌 받으면 될게 아니냐.”는 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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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20.04.2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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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톨레미(프톨레마이오스)왕은 알렉산드리아 대학의 유명한 기하학자인 유클리드에게 기하학을 배우고 있었는데, 왕은 기하학이 너무 어려워 유클리드 교수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기하학을 좀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겠소?”그러자 유클리드가 톨레미 왕에게 “왕이시여, 길에는 왕께서 다니시도록 만들어 놓은 왕도가 있지만,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왕도”란 기원전 330년 알렉산드 대왕에게 멸망당한 페르시아 제국이 만든 길입니다.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 있는 메소포타미아가 기원전 900년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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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20.04.0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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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직접적인 박해나 고난을 통해서는 더 강해지는 강점이 있지만 권력과 풍요를 누리게 되면 반드시 그 본래의 맛과 힘을 잃게 됩니다. 로마 제국 안에서 초기 기독교는 권력자들과 당시 지식인들인 철학자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조롱과 박해를 받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강하여져서 복음으로 로마 제국을 정복하고 희랍의 철학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 하게 되자 기독교는 권력의 비호를 받게 되었고, 신학이 여왕의 자리에 오르고 철학을 시녀로 거느리게 되자 진정한 기독교는 쇠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최고의 권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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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20.03.3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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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이 고도로 발전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지나치리만치 편리와 풍요를 누리면서, 좋은 일이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재난이 닥치지나 않을까 막연하게 두려워하는 것처럼 21세기는 환경 재난에 따른 생명 위기의 순간이 오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의 그러한 두려움을 더욱 증폭시키는 것은 종말론적 환경음모론입니다. 환경음모론은 마치 시한부종말론처럼 인간의 환경 파괴로 말미암아 머지않아 지구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지나친 개발과 그에 따른 자원 낭비가 환경을 오염시키고 어느 정도 자연을 훼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기의 온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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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20.03.2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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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생명현상을 설명하려고 하였습니다. 그가 던진 이 질문에 도전을 받은 많은 학자들이 생명현상을 설명하려는 노력으로 노벨상을 받았지만 생명은 여전히 신비에 쌓여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자들은 생명을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만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생명현상을 과학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 이해하지만 생명의 더 깊은 차원인 영적으로 이해하고 또한 믿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생물학이나 과학으로 뿐 아니라 영적으로 이해하고 믿어도 생명은 여전히 신비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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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20.03.1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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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코로나바이러스로 마스크 수요가 늘어나자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여 사람들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끝이 보이지 않게 줄을 서고 있습니다. 정부는 사람이 많이 모이면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기 때문에 가급적 모임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고 확진 자가 나온 곳은 강제로 모이지 못하게 조치하고 있습니다. 신천지 때문인지 교회가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의 가장 취약한 곳으로 지목되어 강제 폐쇄된 교회들도 있고 자진 폐쇄한 교회들도 있습니다. 병상과 의료진이 부족하여 의심 환자는 자가 격리를 독려하는 형편이니 재난 상황임이 확실합니다. 아직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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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20.03.10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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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난리법석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생산국은 중국이고 그것의 최대 수입국은 대한민국입니다. 그동안 중국과 가깝게 지내던 나라들도 중국인 입국 거부라는 최강경책으로 코로나바이러스 수입을 예방하였습니다. 북한과 러시아가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그러한 조치에 대해 중국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정치 외교나 통상이나 군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역병이기 때문에 북한과 러시아가 중국인 입국 거부라는 초 강경책에 대해 기분 나빠할 일이 아닙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역병이기 때문에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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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20.03.0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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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이후 세대가 하나의 큰 성과 탑을 건설하려 한 것은 모든 인류를 하나로 묶어주는 통일의 중심을 확보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이러한 욕구는 통일 그 제체가 목적이 아니었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인간의 영광을 드높일 제국을 건설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의도대로 되었다면 그들이 세우려고 했던 성은 인간 제국의 사령부가 되었을 것이고 그들이 쌓으려고 했던 탑은 그 제국 건설의 가능성을 확증하는 것이 되어 인간이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행세하게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이러한 시도를 보시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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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20.02.1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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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의 출발은 자연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인간이 자연현상을 이해함에 있어서 초기에는 신화적인 방법으로 이해하고 설명하였습니다. 신화적인 방법이란 변화무쌍하고 신비로운 자연현상을 다스리는 초자연적인 어떤 존재가 있는 것으로 가정을 한 설명입니다. 서양철학은 희랍신화에서 바다를 다스리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포세이돈으로, 번개와 불을 다스리는 존재를 제우스로 설명하는 것에서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 사유는 신화적인 방법에서 철학적인 방법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테면 인간 사유의 방식이 myth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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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20.02.1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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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계 미국인 칼릴 지브란은 “나는 수다쟁이로부터 침묵을, 편협한 이로부터 관용을, 불친절한 이로부터 친절을 배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스승들에게 고맙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역사에는 긍정적인 사건보다 부정적인 사건이 많습니다. 긍정적인 사건을 통해 지혜를 배우게 될 때는 그 역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만, 부정적 사건을 통해서 지혜를 배우게 되어도 그 부정적 사건이나 역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다는 지브란의 말에 공감하는 것이 정당한지 모르겠습니다.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는데, 그 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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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20.02.0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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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가 국가의 의지를 위해 개인을 경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면 극우가 되고, 진보주의가 민중의 의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딛고 가면 극좌가 됩니다. 보수주의가 되었건 진보주의가 되었건 극단적 경향을 드러내게 되면 이는 곧 독재의 길로 접어든 것입니다. 독재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어떤 정당성에서 비롯된 인간 독재라도 거기에는 반인권 독재 통치의 함정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독재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통치는 인권을 위한 최상의 통치가 되지만 인간의 절대 권력과 통치는 결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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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20.01.2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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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무엇을 모르는 것의 무지입니다. 무엇을 모르는 무지는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인 문제로서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앎이란 사실 무지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바슐라르가“빛은 어두움으로부터 나온다.”고 한 것처럼, 무엇을 안다는 것은 무지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무지는 알고자 하는 욕망의 에너지가 됩니다. 다만 자신이 무엇을 모른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인정할 때 그 무지는 앎을 향한 에너지로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엇을 모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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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20.01.1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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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어느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보리타작이 한창이던 때였으니까 6월 쯤 되었을 것입니다. 시골 장날이 되어 아버지는 장에 가고 두 아들은 보리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사가지고 돌아오던 중 집 가까이에서 이웃을 만나 이야기가 길어지자 시장 본 물건들을 집에 들여다 두고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보리타작을 하던 두 아들들은 잠간 쉬는 중이었습니다. 쉬었다가 다시 타작을 하려고 일어난 아들이 아버지가 사 온 물건들 중 가스 활명수가 있는 것을 보고 타작하느라 고생하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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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20.01.13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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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과 개인의 믿음과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정통신학자들과 이성을 앞세우는 사상가들 사이에 오랫동안 계속되어왔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역사 초월적 토대를 가지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지 않고, 심지어 바울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면 그에 대한 믿음도 헛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역사적 사실 자체를 믿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은 아닙니다. 이순신이 역사적 실제 인물임을 인정하고 믿는 것처럼 예수님이 역사적 실존 인물임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 역사를 통해 행하시고 보여
신학덕담
황상하
2020.01.0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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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마을로 이사 오신 하나님 2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 한 때는 기원전 1290년경입니다. 지금부터 약 3천 3백 년 전입니다. 모세가 애굽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출발하게 된 출애굽은 순조롭게 진행 된 일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바와 같이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정된 일입니다. 애굽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애굽 하자는 모세의 제안을 처음부터 거부하였습니다. 애굽에서의 그들의 삶이 고역의 삶이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살고 있던 애굽의 고산 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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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19.12.29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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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존재한다고 하든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든지 그것은 엄청난 무게의 주장이기 때문에 입증 책임이 요구됩니다. 유신론자들의 신 존재 입증은 쉬운 반면 무신론자들의 신 부재 입증은 불가능합니다. 어차피 신 존재 증명은 이성을 바탕으로 이론이나 논리적 차원이 아닌 믿음의 차원이기 때문에 무신론자들이나 유신론자들은 서로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합리와 상식으로 생각할 때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하나만 확인되어도 신은 존재하는 것이지만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온 우주를 샅샅이 다 조사하고 역사 이래 존재했던
신학덕담
황상하
2019.12.22 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