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목사의 교회 이야기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국제신학교학장, 새일과 새길(사)이사, 본월드미션(재)이사. 본국제기독대안학교이사장, 담적글로벌센터 ceo. 본헤럴드 신문 편집인 & 발행인. 저서: [충성된일꾼되어가기] [주기도문연구] 등 다수

사택은 항상 주일학교 어린이들의 놀이장소요, 교육장소요, 점심식사를 함께 해서 먹는 만찬의 장소였다. 교회는 20평 정도 공간에서 예배를 드렸다. 공간 부족으로 인해, 콘테이너로 교육관 공사를 하게 되었다. 더운 여름날 몸으로 시간을 드렸다. 개척교회는 늘 재정적인 압박감에 시달리는 것이 다반사이다. 무엇을 할 만한 여유가 별로 없다. 결국에는 리더의 몫으로 남게 된다.

어느날 평소에 잘 알고 있던 단양에 계신 권사님이 올라오셔서 강변역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나는 일하던 모습 그대로 나가서 잠시 만났다. 권사님이 헌금이라고 아주 가벼운 봉투를 하나 주셨고, 즉시 단양으로 가셨다. 교육관 공사가 바뻐서, 헌금 봉투를 성경책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몇 일이 지나서 미불된 콘테이너 제작비를 지불하는 과정에서 봉투를 열어보니 수표로 1,000만원이 들어있었다. 공교롭게도 1천만원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당시 개척교회를 힘겹게 운영하는 처지라 엄청난 큰 헌금이었다. 나는 그때 그 감격을 평생 잊지 못한다. 그리고 너무도 고마웠고, 일생 동안 빚진자의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권사님의 가정에 어려움이 있어, 남편 권사님이 원치 않게 사업상 거래의 문제로 교도소에 가게 되었다. 어느날 교도소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치아가 다 빠져서 틀니를 해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그 당시 권사님의 가정은 재정적으로 심히 곤고했다. 그 때 틀니를 할 수 있는 전액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출소했다. 출소하자마자 교회를 찾아오셨다. 얼굴을 보니 틀니를 하지 않으셨다. 틀니는 왜 안하셨어요.  권사님은  외국인중에 틀니 할 사람이 있어 그분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권사님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권사님의 평소의 삶을 보면 힘들고 어려운 분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선한분이었다.

그렇게 당당했던 얼굴에 치아가 몽땅빠져 잇몸으로 밥을 먹었으니 얼마나 힘들어겠는가? 치아가 몽땅 빠지고, 얼굴은 주름살로 가득 채워진 초로의 모습이었다.  권사님에게 다시 틀니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권사님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굴러만 갈 수 있는 폐차라도 좋으니 중고차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권사님의 요청을 마음에 담고 기도했다. 그리고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주십시요 기도했다. 교회도 우리 가정도 넉넉함이 없이 늘 이자를 매달 매달 힘겹게 막아가며 살던 시기였다.

나는 권사님의 상황을 생각해보았다. 내가 이분과 똑같은 처지라면, 나와 사업을 함께 하자고 할때, 내 손을 거절하지 않고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감옥에도 다녀오고, 사업도 파산했고, 얼굴은 늙었고, 이는 몽땅빠져 합죽이가 된 사람, 폐차 수준의 중고차를 끌고 다니면, 어떤 사람들이 함께  일하자고 덥석 손을 내밀고 친절하게 대해줄 분들이 있을까?  파산한 사람에 대해, 세상은 덥석 손잡아 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것이다.

나는 현금이 없었다. 늘 의지했던 신용카드가 내가 융통할수있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나는 아내와 의논하지 않고, 카드로 1350만원이나 하는 모닝가스차를 내 이름으로 새차를 뽑아서 드렸다. 왜냐하면 중고차를 사면, 기름도 많이 들고, 고장나면 수리비도 많이 들고, 아무것도 없는 권사님에게는 오히려 생활이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목회자를 향한 권사님의 따스한 마음에 대한 아주 작은 사랑 배려였다. 권사님 남편이 폐차할 차만 있어도 좋겠다고 요청했다. 나는 노후된 차가 아니라 새차를 뽑아드렸다. 그리고 신용불량자라 차를 인수할 수가 없어서, 내 이름으로 구입하고, 보험까지 완벽하게 끝내고, 차를 넘겨 주었다. 그때 권사님의 모습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쁨으로 가득했다. 미안함과 고마움과 눈물이 교차하면서 삶에 대한 용기와 확신으로 활짝 핀 모습이 지금도 기억난다.

섬세한 작은 배려가 절망 가운데 아무런 소망 없이 교도소에서 나왔던 권사님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큰 믿음과 감동을 주었다. 권사님이 다시 살아나셨다. 옛날처럼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것으로 나는 이미  마음의 보상을 충분히 받았다.

이제는 매달 카드 이자와  원금을 지불하는 일이 남았다.  그러나 한 사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은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대가를 지불한 것이다. 

1000만 원 헌금을 가져오면서 어떤 생색도 내지 않고, 함께 점심식사도 하지 않고, 액수도 이야기하지 않고, 단양에서 서울 강변역까지 오셔서 헌금만 주시고 급히 그 길로 내려가셨던 김옥련 권사님의 사랑과 소중한 마음은 평생 잊지 못할 믿음의 소중한 자산이다.

김옥련 권사님과 남편은 평소에 신앙이 신실한 분들이었다. 말없이 섬김의 삶을 사셨던 분들이다. 주님은 이분들의 섬김을 모두 기억하실 것이다. 이 땅에서의 삶이 때로는 어렵고 구차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주님 나라에서 가장 큰 자일 것이다. 하나님은 권사님 부부를 그렇게 평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믿음의 길은 받는 자나 주는 자나 항상 가슴에 따스한 눈물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그러기에 내려놓음의 삶은 감동의 스토리를 엮어 내고 있다. 이것이 우리들이 걸어가야할 신앙의 참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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