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은 사울의 개종(1-31절)이 있고, 사도행전 10장은 이방인 고넬료의 개종을 소개한다. 구원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행 9장). 구원은 복음 전파와 함께 성령의 내주로 이루어진다. per Verbum와 cum Verbo를 명료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Verbo는 ‘말씀’으로 번역하는데, 말씀-Logos인지, 성령인지, 성경인지, 설교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간략하게 복음선포(설교)와 성경과 성령으로 제시한다. 복음전파(설교)를 통해서(per), 성경과 성령이 함께(cum)으로 은혜의 방편이 펼쳐진다. 고넬료의 개종(회심)에서 복음전파(per)와 성령의 내주(cum)이 잘 드러난다.

1. [행 10:1-23] 이방인 고넬료와 유대인 베드로. 사도 베드로는 성령을 받아 복음 전도를 쉬지 않았다. 베드로는 이스라엘 회복을 갈망하는 유대인이었다(행 1:6). 그가 성령을 받아 주의 인도하심을 받아 예루살렘을 떠나 욥바에 내려와 사역했다. 그런데 사도행전 10장은 고넬료에 대한 소개에서 시작한다. 고넬료는 유대교로 전향한 이방인이었고, 베드로는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이었다.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으로 이방인 선교의 문이 열린 것이다. 이 만남은 하나님의 천사가 이루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만남과 하나됨이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을 일이었다.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주둔한 이달리야 부대 백부장으로 경건한 사람(God-fearing)이었다. ‘경건한 사람’은 종교성이 아니라 이방인으로 유대인의 신을 추앙하는 사람이란 신분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 선교 활동을 하면서 정작 회당에 들어온 그들을 정회원으로 용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열방에 이방인들이 유대인의 신을 사모했다. 1세기 유대인을 향해서 갈망하는 이방인들이 많은 것은 특이한 일이고, 로마의 백부장이 그랬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주께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일을 인간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 고넬료는 구약성경을 따라서 구제와 기도에 힘쓰는 사람이었다(2절).

어느 날 고넬료가 9시쯤(오후 3시경)에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고넬료에게 욥바에 있는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도록 지시했다(5-7절). 천사가 고넬료에게 장소와 사람을 정확하게 일러주었고, 고넬료는 부하 둘과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자초지종을 일러주고 욥바로 보냈다(8-9절).

유대교에 구원이 있었다면 주께서 고넬료를 특별하게 불러 베드로에게 인도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유대인은 예수를 죽임에 주도하고 동조했으며, 하나님께 반역하면서도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는 수단으로 자기 종교법이 아닌 본디오 빌라도의 손을 빌려 합법적 차도살인(借刀殺人)을 시도했다. 어리석은 정복자 빌라도는 종의 말을 듣고 굴복해서 만유의 주 예수를 십자가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유대인들은 입으로는 순종하지만 불순종이 생활화된 것이다

가이샤라에서 욥바까지 거리는 북에서 남으로 50Km 정도 떨어졌다. 고넬료의 전령이 베드로가 기거(寄居)하는 집에 다다를 때가 6시(정오)였고,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시간이었다. 베드로는 유대인의 습관을 버리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러 지붕에 올라갔다. 고넬료의 전령이 다음날 정오에 도착했다면 밤새도록 쉬지 않고 달렸다는 의미가 된다.

베드로 사도께서 6시(정오)에 기도하는데, 환상 중에 부정한 짐승과 새들이 등장했고, 주께서 먹으라고 명령하셨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거부했는데(14절), “결코”의 강조형으로 거부했다(14절). 그런데 두 번째 말씀은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15절). 베드로 사도는 그러한 일을 세 번 겪었다(16절). 베드로 사도에게는 ‘Three Trauma’가 있다고 한다. 주께서 잡히시기 전, 부활하셔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그리고 욥바의 지붕에서이다. 베드로 사도가 깊게 생각할 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시몬의 집 앞에서 기척을 했다(17절). 성령께서 베드로 사도를 강권해서 그들에게 인도했다(19-20절). 베드로 사도는 이방인과 대면했을 때, 그들이 백부장 고넬료와 거룩한 천사의 지시 사항을 고지했다. 베드로 사도는 그들을 불러 시몬의 집에 유숙하게 한 뒤 이튿날 동료와 함께 욥바에서 가이샤라로 올라갔다(23절).

베드로 사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순종했다. 베드로 사도는 주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주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갔고, 주의 성령의 확실한 증거 앞에서 순종하여 세례를 베풀었다. 베드로 사도는 안디옥에서 사도 바울의 책망도 인내하며 주의 도를 이루었다. 사도는 주의 복음을 전함을 제1목표로 삼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고, 동료의 비판을 너그럽게 수용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사자(3절), 성령(19절)께서 직접 고넬료에게 구속의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반드시 복음 전도자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신다(롬 10:14). 사도 베드로는 이방인에게 들려진 복음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고, 성령에 의해서 수동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을 구약성경을 통해서 명확하게 이해했다. 그래서 능동적인 자세로 사역에 임했다. 그러나 그 능동성도 자발적이 아니라, 아라비아에서 3년, 다소에서 13년을 기다릴 정도로 인내를 가졌다.

2. [행 10:24-43]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서 복음을 전한 유대인 베드로. 사도 베드로는 성령의 인도로 욥바에서 사역하는 유대인 동역자들과 함께 가이샤라에 도착했다(24절). 베드로 일행은 욥바에서 가이샤라까지 하루 길을 진행했다.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절하며 환대하는 것을 적극 거부했다(25-26절). 그리고 고넬료와 친척과 친구들, 이방인들을 보며 자기는 유대인인 것을 밝히며 부당한 상황인 것을 인지시켰다(28절). 그러나 성령의 강권하심에 순종한 상태를 주지시켰다(29절). 고넬료는 지금까지 시간이 나흘 전 상황임을 인지시키고, 자기 경험을 베드로에게 보고했다(30-33절). 고넬료의 강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베드로 사도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34절). 외모를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며, 요나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요나 선지자와 다른 점은 베드로 사도는 그들과 함께 머물렀다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복음의 대략을 제시했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36절)이 세례 요한에 의해서 준비되었고(37절), 세례 받으심(38절)-하나님께서 성령과 능력을 부으심, 공생애(38b절), 십자가에 죽으심(39절), 부활, 몸의 부활(40-41절), 유언-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진 자(행 1:8, 행 10:42)를 제시하면서,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증언한 그를 믿는 사람이,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고 선언했다(43절). 베드로 사도는 42절에서 ‘이 사람(τῷ λαῷ, the people)’으로 제시했다. 사도 베드로의 마지막 결단 부분은 상당히 소극적인 복음 제시라고 볼 수 있다. 베드로 사도는 주의 명령을 정당하게 전달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성령’을 받으면 ‘예수’을 증언하도록 하셨다(행 1:8). 단지 그의 사역만을 나열했다.

3. [행 10:44-48] 이방인 고넬료가 성령 받음과 세례 받음. 사도 베드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이방인 고넬료와 이방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성령이 모인 모든 이방인에게 성령이 내려오셨다(44절). 성령이 오심은 베드로와 함께한 할례받은 신자들도 봤다(45절). 이들이 성령받음의 확증은 고넬료와 가족들이 방언으로 하나님을 높였기 때문이다(λαλούντων γλώσσαις, 46절). 사도행전의 방언은 성령받음의 외적 표증인데, 서철원 박사는 고집센 유대인들을 위한 핑계할 수 없는 표적으로 방언을 주셨다고 해석했다. 베드로 사도는 방언이 없어도 성령받음을 알 수 있었겠지만, 동행한 동역자들도 핑계할 수 없도록 방언을 주어 성령임함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었다. 성경이 충족된 이후(계시가 종료된)에는 가시적으로 성령받음을 구할 수 없다.

베드로 사도는 성령을 받은 이방인에게 세례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세례를 베풀지 않고 명령해서 시행시켰다(48절). 성령을 받은 고넬료는 베드로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가 되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머물도록 청함을 거철할 수 없었다. 유대인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지 않으며 함께 식사하지도 않았다. 이렇던 베드로 사도가 안디옥 교회에서 식사하던 중 자리를 피해서 사울에게 책망을 받았다. 사역자는 자기가 결정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교회 원리: 세례는 성령을 받은 자에게 준다. 교회 사역자가 주도적으로 세례를 베푸니 후행으로 성령이 임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도식은 로마 카톨릭 도식이다. 영세와 견진으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주께서 옳다고 인정한 자에게 교회는 순종해서 세례를 베푼다.]

4. 전능하신 하나님, 믿음이 없음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나의 한계를 벗어버리고 주의 복음을 전파하게 강권하여 주옵소서. 주께서 택한 자로 인도하여 주옵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옵시고, 죄사함의 세례, 성령의 내주의 역사 일어나게 하옵소서. 복음을 전할 내용과 능력을 주셔서, 주께서 택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케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