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혜은 목사(주거취약계층 매입 임대주택 운영관리기관 임마누엘교회 담임목사)

우리를 죄악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계획하시고 섭리하심에 순종하심으로 절대적인 비천에 처하시고 성육신하셔서 생명으로 댓가를 지불 하셨기에 그 주님의 피 값은 완전한 것입니다. 이를 증명하시고 죄인들을 의인으로 온전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파라클레토스 보혜사 성령으로 오셔서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예비하시기 위하여 죄인들의 심령을 거듭나게 하시며, 동행하시고 동역해주시는 성령님의 겸허하신 사역 또한 모순됨이 없이 완벽한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심 앞에 순종함으로 이 땅 가운데 세워진 주의 교회들은 아무 갈등 없이 완벽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를 이루어야 만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사회에서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비아냥거리는데, 기독교는 절대로 개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종교의 한 단체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이데올로기(이념)도 결코 아닙니다. 때문에 기독교의 복음은 시대나 세대 따라, 정권 따라 변천 하는 주의(이념)나 휴머니즘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절대자의 절대적인(Only one, absolute) 거룩성을 왜곡하거나 훼손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도 한국의 초기교회도 피로 세운 순교자의 제단이었던 교회들입니다. 오직 십자가의 사랑의 능력과 부활의 생명적인 능력을 전하기 위하여 세워졌으므로 생명은 생명자체로서 보존되고 보호되어져야 하고 말씀은 말씀으로, 복음은 복음으로 외쳐져야 만 합니다.

한국교회의 사역자나 성도들은 변질되어 죄악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죽어갈 때, 구원받은 감격과 성령 충만 받아 세상은 간 곳 없고, 구속한 主만 보이던 때의 순수하게 불타오르던 처음사랑과 성경적인 복음에서의 본질과 주님께서 분부하신 지상명령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가슴을 찢고 되돌아서서 찾아내어 되 돌이켜 바로 서야 만 하겠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절실하게 무너져 내리 던 절망의 시절에 나를 만나주셨던 그 은혜를 이제는 살만해지니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관계 속에서 너무나 큰 은혜를 넘치게 입고 보면 하나님께나 인간에게나 국가에게나 그 부담스러움을 잊어버리고 싶고 무시하고 싶은 인간의 이기적인 자아의 속성이 바로 나 자신, 우리의 속사람이기 때문은 아닌가요?

한국은 구교 200여년의 선교역사 속에서 10만이 넘는 순교자의 피와 신교 100여년의 선교역사 속에서 20만이 넘는 기독교 순교사화를 가진 나라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복음의 문을 열기위해 너무나 많은 순교자의 피를 뿌려 세운 한국교회입니다. 피한방울 안 섞인 동방의 해 뜨는 작은 나라인 코리아 땅에 총부리의 협박을 받아가며 생명 걸고 복음을 전해 준 여러 선교사님들의 순교자의 피가 서양문명과 세계적인 학문발전의 논을 뜨게 했습니다. 양반, 상인의 정치에서 민주적인 개혁과 사람을 살리는 의술과 의료기관의 놀라운 발달과 목숨 걸고 서양의 선교사들이 심어놓은 복음의 열매는 놀라울 정도로 세계와 정상을 같이 하고 시대적인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하며 한국교회는 미국다음으로 세계에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기적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1960년대 이전의 한국교회 흐름은 말씀사경회 중심이었으나 1960년대 초반부터 한국강단역사는 성령 충만의 부흥회 시대였습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한국교회강단에 부흥회 대신 영성신학 영성의 성령바람이 불었고 지금까지 여러 형태의 영성적인 특징을 가지고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작금에 이르러서는 그 십자가와 기도소리가 그 특징이었던 곳에 소통과 화해라는 이름으로 대형교회들이 종교다원주의와 손을 잡고 오직 구원의 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이루신 구속자의 이름을 만홀하게 여기게 하고 있습니다. 절대적인 구원의 진리를 희석하게 만드는 길을 열어놓았으며 문교부에 소속된 반기독교 역사가들이 기독교역사를 삭제하고 이 땅위의 역사를 왜곡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역사의식이 말살된 통탄할 만한 소치입니다. 한국교회는 몰락해가는 유럽과 구라파의 세속적인 세계흐름이 타락인지 인권인지 이념인지 복음인지를 구별하지 못하게 하는 시대적 흐름의 위기 속에 있습니다.

한국교회와 한국정부와 한국역사 속에 기독교의 찬란한 문화의 유산을 버리고 성경의 절대적인 진리를 버리고 이념과 사상과 휴머니즘적인 인권이라는 구호 아래 동성애는 물론이요 종교차별금지법까지 동양최초로 동성애의 공식적인 법과 차별화금지법을 법률화하겠다고 아우성입니다. 이들 간 큰 사람들의 속내에서 대선이라고 하는 정치적 야욕이 보여 지는 것은 너무 예민하고 속 좁은 저의 편견일까요? 문화라는 이름으로 슬그머니 한국문화중심 속에 자리 잡고 운명론적인 결정론적인 정신세계로 지성인들을 몰고 가는 샤머니즘이 대학가는 물론이요 국회에까지 급속한 점령하고 있는 이 망연자실한 시대, 시대, 나라와 나라들....

한국정치와 한국경제에도 많은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88년도 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경제는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앞뒤를 바라 볼 겨를도 없이 급성장하면서 사회구석구석에는 물질만능주의로 인하여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결탁되어져서 갖가지 비행들이 난무하였습니다. 우리 한국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인 보수(우익)와 진보(좌익)주의(변질된 이데올로기)의 싸움입니다. 가장 윗선에 있는 세력인 가장 큰 정치인들이 한국경제의 한 축을 뒤 흔들어서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리고 이에 따른 정치적 양극화는 물론이요 빈부격차 또한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와 종교에서 조차도 양극화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급성장하는 산업의 물결 속에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정부의 산아제한 속에 전쟁과 고생을 모르는 세대가 태어나서 오늘날에는 중, 고등부 학생들은 신천지도 포기했다고 할 만큼 우리의 차세대들이 달라졌습니다. 난무하는 메스컴과 빛의 속도의 스마트 폰 시대에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로 이 사회의 앞날을 많이 걱정하게 만드는 지금의 젊은 세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종교, 사회, 어느 인권단체 주위고하를 막론하고 성경에 위배되어 절대 진리인 성경에 反하는 인간적인, 가장 인간적인 휴머니즘의 인권이라는 이름을 빙자하여 이 땅위의 기독교의 지대한 사회의 변화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유럽과 구라파, 미국에서 절대적인 진리를 상대성원리로 변질되게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와 다원종교의 물결이 한국 카톨릭과 개신교인 기독교 속에 위기로 찾아오고 있는 이 땅은 멀지 않아 불행하게도 몰락한 유럽의 전철을 밟게 될 까봐 심히도 안타깝습니다.

이 세대적인 아픔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며 신음하는 기도를 드리면서 우리가 확실하게 믿고 있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인 성경의 History는 바로 He story(주님의 이야기)임을 믿습니다. 이 땅의 역사와 이 땅을 통치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은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전 우주의 왕이신 그 분이 저의 아버지이심을 믿습니다. 그것은 교회와 성도들이 지켜가야 할 거룩입니다. 우리의 아버지께서 거룩하시니 마땅히 하나님 자녀 된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구약성서의 이스라엘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거룩을 잃어버리고 세속적인 물량주의와 샤머니즘의 기복주의와 세상과 양다리를 걸쳐 야합하면서 심판을 면치 못하고 이방민족의 포로로 끌려갔던 참담한 역사를 우리는 가슴 섬뜩하게 기억해야만 합니다.

저는 원래 꿈꾸는 자입니다. IMF 한국경제대란이 터져서 서울, 지방의 역사마다 홈리스군단들이 쏟아져 나왔을 때 제일 먼저 노숙인 문제는 아주 간단하게 풀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의견 내놓기를 했다가 현실을 직시 못하는 꿈쟁이로 공격을 당하는 수준에 그쳐지고 많았습니다.

제 계산법인 메시아닉 콤플렉스(사회적 약자를 없게 하는 나의 계산법)로는 한국에 교회의 숫자가 노숙인 숫자보다 월등히 많다는 겁니다. 성도의 숫자는 말할 필요도 없고요. 정부에서 엄청난 예산을 들여 쉼터나 공동체를 만드는 것보다는 교회마다 노숙인 한분이나 한 가정을 보호하고 처음에는 먹고 자는 일상문제를 해결하면서 일자리를 주고 그 개인이나 가정을 끝까지 책임 짓는 파트너 가정 만들기 방법으로 풀어 가면 금방 풀릴 것 같았습니다. 제 방법으로 하면 이 땅위에 고아나 장애인이나 어려운 사회적 약자들의 빈곤자들이 어떤 수단의 매체로 대우받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인간적인 처우를 받으면서 국가의 예산도 절감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제가 봉직하던 일반교회에 제직회 때마다 교역자회 때마다 이 의견을 내어놓았습니다.

그랬더니 “시집을 안 가봐서. 자식을 안 낳아보아서. 가정의 형편과 어려움을 알 리가 없어서, 자기 자식도 건사하기 힘들고 가정의 많은 갈등문제들이 있는데 믿을 수도 없는 거리의 사람들을 데려다가 가정을 파괴 할 작정인가? 그것은 너무나 황당무계한 전설의 고향 같은 발언이다”라고 핀잔을 받고 또 받았습니다.

저의 이러한 기독교적 철학을 혹자는 메시아닉 콤플렉스 중증이라고 진단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사각지대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많은 꿈을 꿉니다.

Homeless(노숙인) 선교를 결단하기까지 시대적인 부름이 있었습니다. 노숙인을 Homeless 라고 칭하는 이유는 그들의 형편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특별히 가정을 잃어버린 절대빈곤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시작한 Homeless(노숙인) 사역이 제 기질과 성격과 인격과 많은 부담감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작금에 이르러 한국경제는 1998년 IMF의 상황만큼이나 악화되어 있으며 오히려 글로벌 금융위기가 되어 더욱 심각할 수 도 있어서 또 거리노숙인들이 얼마나 급증을 하게 될지 예측불허하며 위기에 있기 때문에 제가 홀로 있는 시간은 나라를 위한 중보기도를 하는 시간을 많이 투자했습니다.

제가 사역자로서 하고 싶은 일은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 병원이 없는 곳, 먹거리가 너무 빈곤한 곳, 등의 도서지방과 농어촌 오지를 버스 한 대에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과 질병을 치유하기 위한 의약과 먹을 만하고 입을 만한 의복들의 복지를 싣고 팀을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을 비롯하여 아시아 제 3세계에 이르기까지 70세 중반까지의 사역을 하고 싶었고 70세 중반 이후 80세 중반까지는 이러한 사역을 바탕으로 하여 후진을 세우기 기르며 사람을 키우는 일에 투자하기 위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한국의 영광을 위해서 노벨문학작품 하나는 남겼으면 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꿈은 유효합니다.

다만 한국은 통일이라고 하는 가장 큰 과제가 있기 때문에 이제 저의 사역의 꿈은 통일한국을 겨냥하여 이러한 때에 한국교회는 무엇을 대비하며 무엇을 기도하며 무엇을 선교정책으로 내놓아야 하는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Homeless(노숙인) 선교를 시작한 동기와 그 사역과 목회현장을 소개하고 그 동안의 사연들을 요약하여 올려드리는 최종적인 저의 목적은 한국교회의 관심과 도움과 호소를 드릴 일이 있어서입니다.

저는 1998년 종단들과 함께 한국의 1차 경제대란인 IMF당시 거리에 계신 Homeless(노숙인) 들의 역학조사를 하면서 노숙인 선교를 결정하였고 일반교회 사역을 접었습니다. 한국경제대란인 IMF가 터지고 거리에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홈리스의 물결들, 무료급식소에 줄지어 서 있는 행렬은 마치 전쟁터의 한 장면과 같았습니다. 결국 저는 많은 눈물과 고민 끝에 17년 전 일반교회의 사역자로 봉직했던 18년간의 전도사 시간을 접고 교회당 안에서의 사역에서 교회당 밖 현장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서울역을 비롯하여 청량리, 용산, 영등포, 남대문역 등 지하철 역사를 매일 배회하면서 처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저의 분노가 일반교회의 사역을 내려놓게 되었고 다음에는 하나님께 눈물로 서원 아닌 서원기도를 드리면서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라 한번 살려주시면 어떠한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고 이분들의 구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 헌신하겠습니다.”

그 당시는 그것이 어려움에 빠진 나라를 사랑하고 위하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주님께 매일 눈물로 기도했고 삶으로 살기를 힘썼습니다. 한국경제대란(1988년 IMF)과 글로벌경제대란(2009년)의 어려운 난국 속에서 한국의 홈리스복지와 현장선교사역으로 1998년 5월부터 서울시 문래동에 김대중 대통령 시행령으로 응급구호식의 대형쉼터 ‘자유의 집’(지금은 폐쇠되었음)의료 행정실에 자원봉사하면서 저의 Homeless(노숙인)사역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이 입원해있는 병원과 결핵병동, 문래동에 있던 자유의 집, 그리고 행복한우리집, 이분들은 글로벌시대의 희생양이었으며 가정과 가족과 모든 것을 잃어버린 절대 빈곤자들입니다. 이분들과 한국시대적 회복을 위해 누군가의 헌신으로 희생제물이 되면 주님의 기름부으심과 긍휼하심이 계시기를 소원하면서 내린 결단이었습니다. 결혼을 포기하는 결단과 일반교회사역을 포기하는 결단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절대빈곤자들에게 선교하기 위하여 복지를 수단으로 업었습니다. 저는 보수적이며 복음적인 신학교육을 받았고 성령체험자이기 때문에 복지적인 수단으로 복음의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저는 한일여자신학교와 서울신학대학야간, 광나루목회계속교육원 2년 연수했고 서대문 독립문신학교신학대학원을 공부하면서 2002년도에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가정상담학이나 기독교사회복지학, 사회복지학과 성폭력상담, 가정폭력상담, 심리상담학등의 공부와 자격증은 노숙인 선교를 하는 가운데 필요하여 습득했습니다만, 제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16세 때 체험했던 성령체험과 중생의 경험이며,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한 처음 사랑이었습니다.

이 분들은 알코올, 경마, 경륜, 여러 상처들에 의한 피해의식에 중독자들이기 때문에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했습니다. 이 분들은 처음부터 중독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추위와 싸우면서 알코올중독자가 되었고 잃어버린 가족과의 고통과 고독과 사회적 편견에서의 소외감을 잊기 위해 경마와 경륜, PC중독, 게임중독, 그들은 미운털이 박힌 미운 오리새끼처럼 되었습니다. 이분들이 과거력을 보면 역기능가족과 알코올중독가정 이혼가정, 폭력가정의 배경이 있습니다. 이분들의 회복과 치유와 사회귀의에는 그들이 살아온 세월만큼의 시간과 노력과 진실한 사랑과 눈물이 필요합니다. 너무 힘이 들어 이제 이 길을 잘못 들어왔나 싶어 그만두려고 했을 때 주님께서는 사도바울의 로마서 5장 7절 말씀을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네 꿈과 네 기대치를 버리고 그분들의 영혼을 있는 모습그대로 안고 가거라. 너에게 있는 수준을 버리고 그분들의 입장으로 내려가 눈높이를 그분들에게 맞추어라.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 돌아보니 저는 그분들을 통해 내게 있는 수많은 꿈들을 이루어 그분들을 통하여 대리만족을 얻으려 했던 자신의 잠재의식을 내려놓고 다시 출발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이분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가슴에 품었습니다.

노숙인들의 선교현장에서 저는 매일처럼 10여년 동안을 산비둘기처럼 슬피 울었습니다. 가족에게로부터, 직장으로부터, 사회로부터,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자 들을 교회까지도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 어떠한 상황과 죄인들이라 해도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의 복음의 현장은 항상 소외계층과 죄인들과 가난한자들과 창기들과 세리들, 시대적인 희생양들로 가득 찼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노숙인 현장에서 선교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주님과 저와의 차이점은 능력이요, 사랑이요, 진실함이었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은 단번에 그들이 변화를 받았는데 제 현장에는 아직도 길가 밭, 가시밭, 돌밭을 기경하고 옥토 만드는 작업만을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제 눈물로 일구어가는 저들의 마음 밭도 옥토가 되어 말씀의 씨앗이 떨어질 때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맺을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자유의 집 의료행정실에서의 2년의 자원봉사와 영등포산업선교회의 남성노숙인 쉼터 희망의 집을 책임 맡았다가 2002년도 목사안수를 받으면서 영등포구 영등포동에 3천만원 은행대출을 받았습니다. 그 돈으로 전월세 집 세채를 얻어 남성 노숙인쉼터 ‘행복한 우리집’ 의 시설장이 되었습니다. 알코올 단주자 중간의 집 형태로 알코올, 정신병력 프로그램중심으로 재활쉼터에서 일자리 창출과 소개를 하면서 식사를 제공하는 자활 쉼터로 성격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제 안에 저 자신의 한계성과 클라이언트로 인한 공격성속에서 쌓여가는 갈등과 트라우마로 인하여 저는 2009년도에 유방암을 수술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계속 항암치료를 받아야 된다는 진단과 이제 사역의 활동을 그치고 자신을 돌보라고 하는 의사의 처방에 저는 지금까지의 노숙인 선교와 복지사역을 중단해야 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前 노무현 정부로부터 자활 된 홈리스들에게 국토부를 통하여 LH한국토지주책공사에서 제공되는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의 입주자의 운영사례 관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저는 노숙인선교의 2차적 성장의 단계에 돌입하게 됩니다. 다만 몇군데의 운영관리선정기관에게 경제적 지원이나 댓가성도 없이 순전한 봉사의 운영사례관리이기 때문에 운영위원회에서는 이 사역을 접자고 하는 강력한 의견들을 놓고 저는 생명을 거는 결단을 내려야 만 했습니다. 결국은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10년 동안 헌신해 온 노숙인선교 복지사역인 ‘행복한 우리집’ 은 2010년도 1월부터 다른 능력 있는 젊은 사회복지사에게 물려주었습니다.

2010년부터 새롭게 가슴과 삶으로 안은 현재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노숙문제를 주거문제로 보고 자활된 홈리스들에게 국토부를 통하여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제공되는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의 입주자의 운영사례 관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하신 분들과 함께 5년 전 영등포지하교회를 개원하고 만 4년 후 현재는 서대문구 북가좌동에서 30~40여명의 성도와 함께 예배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은 노숙인 선교복지사역 10여년 만에 주신 주님의 결실이라고 믿습니다.

저희에게는 시급하고도 절실한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현재 관리운영하고 있는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해야 할 가족의 자립을 위해 입주가족분들이 신앙적 구원의 공동체를 이루어 온전한 사회인으로 복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활에서 자립정책이 나와서 끊임없는 일자리 창출과 적어도 200명정도의 인원의 가족분들과 소회계층을 위해 일자리 창출과 영적, 육적인 치유를 포함한 신앙적 종합복지의 선교센터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매입임대에 자활의 의지가 있는 분들과 재결합하신 가족분들이 입주하고 보니 자녀들의 문제, 장학금문제, 일자리문제, 유별나게 많은 암이나 고혈압, 당뇨, 관절염, 허리디스크로 인하여 생명이 꺼져가는 노인들의 향후 문제, 기타 등등 많은 문제들이 노출되었습니다. 이분들이 건강하고 당당한 사회인으로서의 발 디딤은 본인들의 몫이기에 접근과 물러남을 조절하는 절묘한 지혜와 방법이 겸비된 영혼구원과 육체적인 치유적 공동체인 선교종합복지 센터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경험도 인간적인 재능도 누구의 도움도 받을 줄 모르는 자존심 강한 제 자신으로서는 오직 진실함과 기도로 인내하면서 이분들을 사랑으로 제 작은 몸부림의 삶으로 안고 있습니다. 어느 때는 주님 앞에서 황소처럼 울부짖으며 어느 때는 동료 잃은 산비둘기처럼 많이도 울어야 만 했고 지금도 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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