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목사의 교회이야기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국제신학교학장. 본월드미션(재)이사. 새길과 새일(사)부이사장. 본국제기독대안학교 이사장. 담적글로벌센터 CEO. 저서: 제자세우기 40일 영적순례. 충성된 일꾼 되어가기. 주기도문연구. 등.

지하실 교회에서 통나무로 예쁘게 지어진 교회건물을 구입했다. 교회 입구는 돌계단과 개나리, 철쭉이 잘 어우러져있고, 값비싼 주목이 모습을 자랑하며 서 있었다.

교회에 휠체어 1급 장애인 한 분이 계셨기에 40도 경사인 4미터 언덕을 휠체어를 밀고 올라갈 수 있도록 돌계단 옆에 나무로 만들어 놓았다.

어느날 수요일 저녁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딸(현재 대학 2학년)이 예배당에 들어와서 머리를 숙이고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30분이 지나 예배는 끝났고, 머리고 숙이고 있던 딸에게 다가갔더니 딸이 조용하게 발가락이 다쳤다고 했다. 살펴보니 피가 흥건하게 흘러 내리고 있었다. 급하게 대학병원에 데려갔는데, 심줄과 인대가 많이 상해서 대충 치료가 안 되고, 그 밤에 큰 수술을 하게 되었다. 콘테이너 교육관에서 공부하고 있다가 들어가는데 안에 있던 학생이 문을 쾅 밀면서 다리가 날카로운 유리문 테두리 밑에 끼면서 피부와 심줄이 상해버린 것이다.

아이가 수술실에 들어갔다. 12시가 넘어서 휠체어 장애인 집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왜 전화하셨어요?" "예배당에서 내려줄 사람이 없어서 집에 못가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얼마나 미안하고 죄송했는지... 차를 몰고 교회로 오면서 '최원영 너 목사 맞니?' 스스로 회개하고 못난 목사로 인해 집도 가지 못하고 밤 12시가 넘어서 미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한 집사님에게 한없이 죄송하고 미안했다. 집사님을 보는 순간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집사님,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내려 달라고 하지...아니면 나에게 일찍 전화를 하지 왜 이토록 늦게 전화를 했어요."

집사님은 그 밤에 전화를 할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목사가 곧 오겠지 라고 생각하고 혼자 예배당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집사님을 내려주고 다시 병원으로 달려가서 딸의 수술 방 앞에 지키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목사인데 가장 연약한 한 사람의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하면 목사가 맞는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혼자서 교회를 들어오고 내려갈 수 있는 것을 만들어주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다음날 교회 앞 데크 공사를 하기 위해 설계에 들어갔다.

데크 공사를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아름답게 가꾸어왔던 철쭉과 개나리와 측백나무와 배나무와 주목과 돌계단을 다 철거해야 했다.

문제는 돈이 없었다. 개척교회를 하면서 이자와 교회 운영비를 목회자가 책임지고 있었고, 자비량으로 목회를 하고 있어서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한사람의 불편함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목회자라고 할 수 있는가?' 2000만원의 빚을 내서 공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8월 한달간 목수를 데리고 일을 하였다. 더운 날씨에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려 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직 인간의 힘으로만 고된 일들을 감당하였다.

무엇보다 철거작업은 힘든 일이었다. 돌을 끄집어내고 사이 사이에 있는 나무들을 캐서 옮겨심는 고된 일이었고, 그 시간이 참으로 힘겨운 작업이었다. 기초적인 작업을 해야지 목수가 와서 데크 공사를 하기 때문이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초 작업을 하였다. 포크레인만 잠시 빌려 일을 시작했다. 모든 뒷 작업은 혼자 몸으로 그 일을 감당하였다.

그리고 목수 2명을 고용하고, 내가 허드렛일을 모두 감당하면서 약 40평 데크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공사를 마치고 나면 모든 공사비를 당연히 주어야 한다. 그런데 돈이 항상 문제이다. 아내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주어야 한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돈 실수하는 것을 용납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주님께서 여호와 이레의 은혜를 주셨다. 교회 공사 소식을 듣고 은밀하게 헌금을 주신 분이 있었다. 그 이후 본푸른교회의 믿음의 동역자가 되신 위담한방병원 병원장인 최서형 장로님이시다.

나는 데크를 볼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늘 떠오른다. 한 사람을 위해서 나의 온 마음을 드렸다. 몸을 드렸고, 물질을 드렸고, 뜨거운 여름 땀방울을 주님의 교회에 드렸다. 그리고 최서형 장로님의 은밀한 헌신이 늘 기억에 남는다. 잊지 못할 간증이요 교회 역사의 중요한 이야깃거리이다.

휠체어 집사님이 혼자 교회 들어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늘 행복하다. 데크가 없을 때에는 교회에 왔다가 사람이 없으면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고 마당에서 기도하다가 돌아간다. 또한 화장실은 사택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사람이 없으면 계단을 올라갈 수 없어서 화장실을 사용할 수가 없다.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다시 차를 타고 나가서 공중화장실로 가야한다.

그런데, 휠체어 집사님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혼자 힘으로 올라와서 예배를 드리고, 화장실을 다닐 수 있다. 얼마나 행복하고 복된 일인가?

교회에 들어오고, 화장실을 가려면 누군가에게 부탁을 늘 해야 했던 집사님의 마음을 읽지 못했던 목회자였다. 늘 누군가에게 부탁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늘 힘들었을 텐데, 매일같이 교회 뜰을 밟고 기도하며, 교회를 지켜준 소중하고 아주 귀한 집사님이다. 데크는 집사님에게 너무도 필요한 선물이었다. 이것은 집사님이 매일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딸을 다치게 하여 목사의 마음을 깨우쳐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딸의 사고로 인해 나에게 한 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사건을 주신 것이다. 그때부터 한 사람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습관이 생겼다. 얼마나 다행인가?

목회자란 가장 연약한 한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전부를, 가장 귀한 옥합을 깰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목회자가 존재해야 할 이유이다.

목회자는 대접받는 사람이 아니다. 예수님은 죄인과 세리와 연약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다. 힘없고 불쌍한 사람들을 보고 지나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었고, 그 아픔에 함께 동참하셨고, 애통해하셨고, 눈물을 흘리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이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무엇이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가? 예수님의 긍휼한 마음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가지고 행동으로 살아야 한다. 행동으로 내가 주님의 사역자인 것을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며 증명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숙제이다. 목회자란 사람들의 지저분한 발을 씻어주는 사람이다.

영향력 있는 큰 목회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대중속에서 고독하게 외롭게 힘들게 죽어가는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전부를 내어 살릴 수 있는 목회자가 필요하다.

오늘날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이 너무도 많다. 점점 종교인으로 굳어져가는 목회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은 울고 계실 것이다. 주님의 일을 대신하라고 목회자를 특별히 부르시고 훈련시키시고 세워주셨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너무도 율법적으로 변해가고, 인간미가 사라져가는 앙상한 말기 암환자처럼 살고 있다. 겉모습은 아주 훌륭한데, 옷도 얼굴도 윤기가 흐르는데 점점 메말라가고 있다. 본질은 잃어버리고 형식만이 춤을 추고 있지는 않은가? 되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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