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새판 짜기'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내 인생의 새판 짜기: 날마다 주님과 함께 시작"

내 인생의 새판을 짜기 위한 위대한 발걸음의 첫 출발을 날마다 주님과 함께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영으로 충만하면 현실을 이기고 삶을 기름지게 하는 영적 에너지가 나옵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능력과 업무를 지혜롭게 감당하는 탁월함도 주어집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지침과 피곤함과 엉클어짐도 이겨낼 뿐 아니라 오히려 능동적으로 믿음으로 극복하는 에너지를 얻습니다.

"오직 예수님께 모든 시선을"

많은 분들이 교회의 문제를 지적하며 진단을 내립니다. 그리고 대안을 제시합니다. 그 대안이 별거 아닙니다. 초대교회의 정신을 회복하라고 합니다. 초대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교회 회복이요 성도가 성도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기준점이라고 합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라는 것은 오직 예수님에게 모든 시선을 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의 지침서입니다. 성경은 기본입니다. 기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성경을 쓰며, 성경을 묵상하며, 성경속에서 예수님의 정신을 나의 삶의 자리에서 적용해갈 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영광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사진제공, 박병득(미래포럼사무총장)
사진제공, 박병득(미래포럼사무총장)

 

"사람의 평가 기준"

사람을 평가할 때 평가의 기준이 별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평가할 때 공부를 잘하느냐? 잘 생겼느냐? 옷을 잘 입느냐? 누구 집 자녀인가? 어디 학교를 다니는가? 이런 것 가지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평균적으로 어른들이 아이들을 평가할 때 기준은 거의 비슷합니다. 인사를 잘하느냐? 예의 있게 말하고 행동을 하느냐? 얼굴에 웃음을 가지고 있느냐? 성품이 온전하냐?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는가? 이런 것으로 아이를 보고 잘 키웠다. 잘 자라주었다. 인정이 좋다고 평가를 합니다.

"현재의 기초가 미래를 결정한다"

결국은 인간으로서의 인간다움의 기본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지요. 기초가 튼튼한 사람은 비바람 앞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초가 부실한 사람은 비바람과 광풍 앞에서는 견디지 못하고 무너집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결론을 내릴 때 비유로 모래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반석위에 집은 지은 사람으로 비교했습니다.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바로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을 지칭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비바람이 와도 풍랑이 쳐도 홍수가 와도 견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래위에 집은 말 그대로 기초가 약해서 폭풍우나 바람이 불면 모래성이 한 순간에 무너진다는 말합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바람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길이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품격을 세워가는 축복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정신을 나의 삶의 자리에서 내려놓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현재의 기초가 미래를 결정합니다.

기초가 견고성을 결정한다.
기초가 견고성을 결정한다.

 "한국교회의 펀더멘탈, 아직 괜찮은가?"

한국교회 펀더멘탈(fundamental, 기본의)이 아주 약해졌다고 합니다. 펀더멘탈이란 용어는 한 나라의 경제 상태를 표현하는 가장 기초적인 자료가 되는 성장률, 물가 상승률, 실업률, 경상수지 등의 거시 경제지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교회를 거시적으로 평가해볼 때 기본이 될 수 있는 지표들이 있습니다. 주일 출석, 성경, 기도, 헌금, 전도, 사회적 영향력 등을 평가 할 때, 많은 부분이 과거의 지표보다 현저하게 내려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정도입니다.

한국교회 회복을 위한 처방전은 너무도 많습니다. 대외적으로 교회의 위상을 높이는 사회적 이슈앞에 교회는 겸손함으로 섬기는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한국교회가 반사회적, 반지성적, 이기적인 폭력집단처럼 비취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 과거는 언론의 파장이 지역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손안에 모든 언론이 담겨져 있습니다. 작은 실수 하나가 뚝 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교회 내부의 온도와 세상이 교회를 바라보는 온도가 현격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교회 내부에서는 아직도 교회는 건강하다고 외침니다. 코로나가 장기화 되지만 충성스러운 성도들이 십일조를 잘 내고 있기에 우리 교회는 문제없다고 말합니다. 교회 건강의 기준점이 오직 "헌금"의 줄었느냐? 줄지 않았느냐?에 단세포적인 생각에 머물러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향해서 문제가 있다고 공격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때 교회는 세상보다 더 수준이 떨어진다는 말로 평가해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잣대보다 교회의 잣대가 너무 느슨하다는 말로 들려집니다. 이렇게 온도의 차이가 심합니다.

"사명의 길은 말이 아니라 초라한 낙타를 타고 입성하는 것"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모든 능력과 권세와 위엄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입니다. 그런데 하늘을 버리고 이땅에 가장 낮은 자로 오셨습니다. 뿐만아니라 마지막 죽음을 통한 구원을 완성하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실때에 대장군처럼 말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권세 있게 뽐내며 입성하지 않고, 아주 어리고 볼품없는 나귀 타고 입성했습니다. 이것이 기독인들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사명의 길은 이렇게 폼나지 않습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선전포고 방식보다는 거품을 빼고 진정성 있게 낮은 자세로 다가가는 것이 예수님의 정신입니다. 교회가 성도가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세상적인 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적인 방식을 추구하는 한 결국에는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오히려 추해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내외적으로는 신앙 정결운동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겉보다 먼저 내면의 더럽고 추한 것들을 씻어내라고 합니다. 안을 깨끗이 하면 겉도 깨끗해진다는 말씀입니다(23:25-27). 신앙회복 운동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거울로 자신을 비추어 보면, 금방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삶과 너무도 동떨어진 내면의 엉클어진 가치들을 회개하며 걸러내는 것입니다. 또한 일반적인 상식의 눈에서 볼 때 어긋나는 것들, 눈살 찌푸리는 아름답지 못한 행동이나 언어를 걸러내면 됩니다. 신앙의 정결운동이 곧 성결운동이며, 교회가 교회되어지는 가장 건강한 방식입니다.

한국교회의 펀더멘탈이 아주 약해져가고 있습니다. 기초를 다시 회복할 때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정국에서 교회는 인생의 새판을 짜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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