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돌풍 속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읽어야

미국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이래, 공화당에서 트럼프는 1%의 밑바닥 지지율에서 48%로 끌어올리는 기염을 토하며, 대통령 후보로 정식 지명을 받았다. 그리고 이젠 힐러리 지지율을 바짝 추격하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다. 이 자체만으로도 그는 이번선거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한 주연급 인물이다. 그런데 이렇게 대선 흐름을 장악한 그의 선거 전략 또한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비록 아직은 그의 ‘피에로식 화난 얼굴과 막말’이 불안을 조장하긴 하지만 말이다. 이 트럼프의 정치 돌풍이 그 피에로식 불안한 분노로 무슨 ‘정치효과’를 일으켰는가?

- 미국 시민들은 공화당의 타 예비후보들(16명)의 매끈한 지적 연설보다 트럼프의 거칠고 직선적인 막말을 더 믿었다. 티파티는 ‘시장경제체제 옹호로 99% 시민이익 대변자’인 척했으나, 실제는 ‘1% 기득권층 이익수호자’로 변신했다. 그 배신당한 시민들의 아픔을 트럼프는 대변했다.

- 객관적 설득을 위한 근거 제시에 능한 힐러리보다 폐부를 찌르는 트럼프의 솔직함을 미국 시민들은 더 믿었다. 서민 복지와 인권을 보장한다는 오바마-힐러리의 꿀같은 약속은 빅브라더 공포지배를 끌어들일 낚싯밥이었다. 트럼프는 이를 폭로하며, 시민들을 끌어 안았다.

- 99%의 미국시민들은 능수능란한 속임수의 엘리트들 5%에게 미국자산 80% 이상을 도난당한 사실을 이젠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누가 속임수를 덜 쓰며, 약자들을 덜 괴롭힐 후보일까 하고 질문한다. 이 질문에 용기를 갖도록 트럼프는 ‘백인계 표심’을 자극하는데 성공했다.

- 양당 후보 모두 1% 권력 엘리트층에 속한 인물이다. 하지만, 99% 시민들을 공포 지배의 감옥에 가두려는 빅브라더들 중에서, 혹시 트럼프는 ‘No!’ 하고 나온 ‘예외적인 강자’가 아닌가 하는 기대를 품게 했다. 1%의 강자들에 대해 99% 시민들의 ‘재도전 의식’을 그는 일깨웠다.

이것을 미국 언론에선 트럼프현상(Trump Phenomenon)이라 하는 바, 미국 역사상 특이한 ‘역설적 정치효과’를 몰아온 돌풍이다. 이것은 앞으로 ‘미국판 21세기형 정치개혁운동’의 모델로 승화될 수도 있는 바람이다. 왜냐하면, 이 ‘역설적 희망의 정치효과’는 21세기에 와서 터지는 여러 정치개혁들이 지닌 공통된 특이 징후이기 때문이다.

이 바람은 벌써 시대적인 ‘정치 허리케인’으로 상승하기 시작한 징조도 드러내 보인다. 필리핀에서는 이미 비슷한 정치 바람이 일었고, 영국의 브랙시트(Brexit)도 유럽에서 독자적으로 동시에 일어난 비슷한 정치 바람이다. 북부 아프리카의 재스민혁명 역시 그 내부에서 ‘알라는 종교-정치계의 특권층 부패를 불가촉성역(不可觸聖域)으로 지켜주는 신인가?’ 하는 도덕적 심문이 폭발한데서 출발했다. 이런 점에서 새롭게 이해해야 할 거대한 새바람 가운데 한줄기로서 트럼프 정치돌풍이 일고 있는 중이다. 이 바람들의 공통된 특이 징후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도덕적 심문의 돌풍’으로 등장했다.

2) 1% 기득권층이 그 심문 대상이다.

3) 99% 서민대중 역시 그런 세력을 숭배하며 키워준 죄를 심문받는 객체이다.

4) ‘역설적 희망의 정치효과’를 지닌 집단적 개혁의지이다.

그래서 ‘트럼프현상’은 트럼프 자신을 훨씬 넘어선 큰 정치변화의 바람으로 증폭하고 있다. 이 바람은 앞으로 트럼프와 상관없이 커나갈 도덕적 충격의 힘을 이미 지니기 시작했다.

‘트럼프, 너는 미국 헌법을 읽어 본 적이 있는가?’라고 하는 ‘칸 변호사의 연설’은 그 증거이다. 따라서 이 돌풍은 오바마-힐러리 진영에겐 다음과 같이 심문한다고 보아야한다.

- 오바마와 힐러리, 그대는 미국 헌법을 어떻게 읽었기에, ‘동성결혼 합헌’에 축배를 드는가?  

그래서 이 돌풍의 특이 징후를 하나 더 추가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의 질문이다.

- 여야를 막론하고 미국 전체를 도덕적으로 심문하는 트럼프 돌풍의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그 주체를 알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점을 깊이 고려해야 한다.

미국 정계를 겨눈 트럼프의 이 ‘막말 창질’ 같은 소리가 실은 많은 흠과 모순을 지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브라더 지배주의자들에 대해 날카로운 ‘정의의 비판’으로 느껴지게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 보는가? 그 속에서 미국 권력층 전체의 부패를 폭로하는 강력한 ‘도덕적 메시지’를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아무도 말을 못하던 끔찍한 악이 트럼프의 막말 형태의‘ 레토릭(Rhetoric)'으로 터지고 있다. 그 터지는 내용마다 미국의 자멸을 부를 만한 부패의 핵심을 건드린다. 그로 인해 여야에 포진한 미국 정계의 ‘엘리트 군단(미국 인구의 4%)’이 불안으로 떤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여기는가?

그렇다고 하여, 트럼프 돌풍이 트럼프 자신에겐 무조건 유리하게 작용하는가? 아니다. ‘무슬림 변호사 칸’의 연설같이 트펌프 자신도 무릎 꿇어야할 심문도 또한 담겨져 있다. 도대체 트럼프의 그 ‘못생긴 막말 레토릭’에 어째서 이런 거대한 ‘정치적 공진현상(共振現象)’을 일으키는 것일까? 그 ‘정치적 음향대포(音響大砲) 효과’가 지금 이 돌풍을 허리케인으로 부풀게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 돌풍 속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온 미국은 겸허히 일어나서, 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결정되는 순간, 그를 인한 정치 돌풍은 하나님의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서의 역할은 다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계에서 ‘트럼프현상’이라는 말을 사용하더니, 이젠 심지어 ‘트럼프주의(Trumpism)'라는 신조어(新造語)까지 나타났다. 이것은 이 바람이 새로이 ’정치개혁 허리케인‘의 씨앗으로 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왜 그렇게 되었다고 보는가?

- 미국을 위한 미국의 정치라면, 최소한 미국국민의 생존권과 위대성은 지키려해야 한다. 그런데 오바마와 힐러리는 지금 누구를 위해 미국을 빅브라더들에게 팔아 넘기려하는가?

- 트럼프 외침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물론, 그의 막말 레토릭 전체가 하나님의 메시지일 리는 없다. 그러나 분명히 ‘정의의 메시지’ 부분이 있다. 그에게 호응하는 백성들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정치 개혁의 바람 속에도 이 메시지가 새겨져 있어서, 사람들의 양심을 쿡쿡 찌르고 있다. 그것은 마치 인간의 양심 바닥에 쓰인 예수 그리스도의 글씨와도 같다. 실제로 기독교의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 예수의 손으로 쓴 글이 일으킨 한 놀라운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이 사건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거리에서 자신을 돌로 쳐 죽이려는 한 무리의 유태인들과 갑자기 마주친 일이 있다. 그들은 한 여인이 간음을 범하는 현장에서 잡아끌고 와서, ‘모세는 이런 여자를 돌로 쳐 죽이라했는데, 당신은 우리에게 무어라 하시겠소?’ 하고 물었다. 무슨 대답이 나오든, 구실을 대서 무조건 돌로 쳐 죽이려는 속셈이었다. 이에 예수께서는 땅 위에 그 손으로 글을 쓰셨다.

그런데 그 무리들은 이 글씨를 읽으면서 이변을 일으켰다. 이 살인 집단을 이끌고 온 늙은이부터 시작해서 돌 던지는 일에 고용되어 끌려온 젊은 자들까지 하나씩 하나씩 양심에 가책을 받아, 돌을 그 자리에 쏟아놓고 물러갔다. 그렇다면, 그 글씨 내용은 무엇이라 여기는가? (요한복음8:1~10)

물러간 자들 하나 하나의 은밀한 죄악이 적혀 있었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은 것이다. 강한 살해 의지를 지녔던 자들이 돌을 쏟아 놓고 물러간 것은 두려움을 느꼈다는 뜻이다. 오늘날 미국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능멸하며 퓨리터니즘을 살해하는 무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빅브라더 지배 야망’에 장애가 되는 예수와 그 자녀들을 ‘동성결혼법’으로 내치겠다며 나섰다. 예수를 돌로 치려던 그 유태인들 행태와 똑같다. 그런데 ‘트럼프 돌풍’은 이것을 막고 나섰다. 따라서 이 돌풍 속에 예수의 손으로 쓰신 메시지가 있다.

- 네 돌로 나 예수를 치려느냐? 그 돌로 네 자신의 머리나 치지 않도록 조심하라! -

미국은 아직 하나님의 정의의 보루이다. 트럼프도 자신의 돌풍 위에서 추락하지 않으려면, 레토릭 효과에 더 의존하지 말고, 더 정결해져야 한다. 하물며, 예수에게 돌을 든 자들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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