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목사의 교회 이야기(12)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국제신학교학장. 본월드미션(재)이사. 새길과 새일(사)부이사장. 본국제기독대안학교이사장. 벧엘의료재단이사. 담적글로벌센터CEO. 저서: 주기도문연구, 제자세우기 40일 영적순례. 충성된일꾼되어가기. 등

2014년 11월 2일 주일 오후 7시에 남방항공기를 타고 하얼빈 공항에 도착하니 저녁 9시였다. 그리고 12시30분에 목단강 가는 열차를 타기까지 4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하얼빈 00교회 자매인 관시를 만났다.

관시와의 만남은 2014년 7월 00교회 새벽예배에서 처음 보았다. 예배를 마치고 우연히 목에 흉한 상처가 있는 자매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왜 목 주변에 상처가 났는지를 물었다. 자매는 림프절 결핵 환자였다. 결핵균으로 인해 목 주변에 파상풍처럼 번져있었다. 24살밖에 되지 않은 처녀, 꿈과 낭만을 향해 해맑게 웃으며 활기차게 살아갈 젊은 숙녀가, 더운 여름에 목에 난 상처를 가리기 위해서 목 위 턱밑까지 옷을 덮고 있으니, 참으로 그 모습이 안쓰럽고 가련해 보였다.

나는 자매의 결핵을 치료해주고 싶었다. 한국에 오면 치료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결핵에 걸린 사람을 보았다. 결핵에 대한 선행 지식이 없었기에, 한국에 와서 인터넷과 의사들에게 치료방법을 물으며 결핵에 대한 공부를 했다. 7월에 만나고 한 달만에 관시는 한국에 왔다. 관시의 결핵을 치료해주기 위해 병원을 데리고 갔다. 한국에서는 장기간 치료가 불가능하고, 중국에서도 결핵약은 동일하다는 의사의 권고를 듣고, 자매에게 중국 가서 반드시 치료하라고 이야기했지만, 치료받을 재정적인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어머니와 하얼빈에서 월세를 살고 있기에 사정이 아주 딱한 편이었다.

그래서 아내의 여름 휴가비 100만원에 40만 원을 더 보태서 중국 가서 치료할 수 있도록 경비를 주었다. 자매를 축복하고 중국으로 돌려보내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한국에서 치료하면 좋을 텐데, 외국인들에게는 의료보험이 되지 않아 치료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또한 중국인이라 중국말을 통역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치료기간이 최소 1년 이상 걸리기에 한국에서 치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자매는 한국에 오기 전에는 중국에서 치료를 받기를 거부하였다. 치료약이 독하기 때문에 위가 망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결핵을 진단받으면 앞으로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또한 재정적인 어려움도 이런 생각을 더욱 굳히는 이유 중에 하나였다.

무엇보다 한국에 와서 의사를 만나고, 목사와 사모의 진심 어린 이야기와 애정과 사랑의 기도를 통해서 자매의 생각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또한 선뜻 잘 알지도 못하는 목사와 사모가 140만원을 주었기에 감동을 받았다. 하루빨리 기도하며 치료받고 하나님의 귀한 딸로 쓰임받기를 바란다고 용기를 주었다.

하나님이 자매를 만나게 한 이유가 있었다. 하나님이 자매와 우리 부부를 만나게 한 것은 그 자매의 인생길에 전환점을 주기 위해서였다. 자매는 중국 병원과 약에 대한 불신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우리 부부를 만나고 나서 그의 생각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불신이 다시 희망의 끈을 여는 도구가 되었다. 만남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자매와 나는 인생에서 만남의 어떤 연결 고리도 없었다. 우연히 한번 중국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 때 1시간 예배로 만난 것이 전부였다. 더운 여름에 옷이 목을 감싸고 있었고, 목안이 살짝 보였는데 빨간 핏빛을 띤 선이 선명한 상처를 잠깐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잠시 물었을 뿐이다. 이 만남이 전부였다. 모른 체 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매가 한국에 도착해서 교회에 이미 왔는데, 아내에게 자매가 온 이유를 미리 설명하지 않았다. 아내는 자매를 사택에서 처음 보았다. 그리고 자매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한국에서 고쳐준다고 말했기에 왔다고 말했다. 아내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남편의 무모한 행동에 대해 아무 말 없이 자매의 상황을 체크하고, 아는 의사분들과 의논하고, 병원에 예약하고, 자매를 데리고 의사와 면담 등 모든 일을 정신없이 처리했다. 그리고 자매가 병을 고칠 수 있도록 마음에 큰 변화를 주었다.

아무 말 없이 최선을 다하며 일처리 하는 아내에게 고맙고 감사했다. 남편의 가슴이 늘 따뜻하여, 항상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가는 모습으로 인해 난감한 일을 자주 만들지만, 그것으로 인해 갈등이나 다툼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성숙함이었고, 혹시 남편의 믿음의 행동을 저지할 경우, 남편이 하나님의 형상과 나라를 세워가는데 최소한 방해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부부와 자매는 언어가 다르고, 살아왔던 환경이 다르고, 민족이 다르지만, 오직 하나 하나님으로 인해 서로 이해할 수 있었고, 그의 아픔과 고단한 인생을 어루만져줄 수 있었다.

두 달이란 시간이 참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신학교 강의차 하얼빈을 지나가기에 자매의 건강 상태를 보고 싶었다. 자매를 공항에서 만나는 순간, 환한 모습으로 밝게 다가오는 자매는 더 이상 어둠도 그늘도 그에게 없었다. 약을 먹으면서 치료를 잘 받고 있었다. 결핵균으로 목에 선명하게 드러났던 상처도 더 이상 보이지 않고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많이 좋아지고 있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작은 사랑이 희망을 잃어버린체 하루 하루 절망 가운데 살던 자매를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게 한 것이었다. 나는 또 하나의 믿음의 추억을 가슴에 새기는 기쁨과 주님의 은혜를 진하게 경험했다. 나는 이미 돈으로 얻을 수 없는 아주 귀한 선물을 받았다.

나와 자매와 자매의 교회 지체들과 친구들은 일생동안 그 아름다웠던 믿음의 사건들을 떠올리며 함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며,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가를 일생동안 그 의미를 느낄 것이다. 그리스도가 주신 하늘의 은혜를 체험한 분들이 그 사랑을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 사랑을 함께할 때, 이미 우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큰 보상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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