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가 미국에게 보일 비전은 무엇인가? -

트럼프가 미국민에게 보여줄 비전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 비전이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 그 비전을 보여주는 데에는 공화당이 할 일이 있다. 트럼프 정책이 드러난 순간부터 이 비전의 공을 미국시민 99%에게 던지는 주체는 트럼프 개인이 아닌 공화당임을 알아야한다. 즉 ‘공화당의 이름’으로 던지는 ‘공화당의 공’이요 '공화당의 비전'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공화당 내의 트럼프 비판세력은 이제부터 ‘트럼프와 함께’ 국민들에게 공을 던지는 자리에 설 것인지, 아니면, 크루즈(T.Cruz)의 말처럼 트럼프와 거리를 둔 그늘 속으로 주저앉을 것인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물론, 이 결정을 하자면, 당연히 트럼프가 그려낸 그림을 올바른 기준에 의거해 엄정하게 판별하는 작업이 전제(前提)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트럼프와 함께 나선다는 것은 ‘빅브라더가 된 트럼프에게 맹종한다’는 의미이어선 결코 안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트럼프가 혹시 그런 짓을 하려들면, 그것을 막고 바른 그림을 그리도록 도와야 하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트럼프가 적극적으로 쏟아낸 그 ‘피에로식 불안한 쓴 웃음이 배인 막말’을 이제부턴 바꾸게 해야 한다.

무엇으로 바꿔야 하는가? 그것은 오로지 ‘대반전 희망을 향한 웃음’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 누가 모르는가? 트럼프를 선택하고 나자, 즉시 삼키지 말아야 할 벌레도 함께 삼킨 불편함이 공화당 전체에 깔려 있다. 국민들도 그렇다. 공화당은 이 벌레를 트럼프에게서 뽑아주어, 자신들과 국민들의 불안을 씻어 주어야 한다. 크루즈를 비롯한 당내의 트럼프 비판세력은 그 불편함을 고쳐주는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특히 ‘제3의 목소리’ 그룹은 이 작업을 이루어내야 한다. 그래서 그 그룹의 명칭은 ‘트럼프 현상의 의미를 읽어내는 지혜의 트렌드’ 명칭이어야 한다. 즉 ‘시민연합 패러다임(LOGOS Paradigm)’을 창출해야 한다. 그래서 제3의 목소리와 시민연합 세력은 이 ‘로고스 패러다임의 트랜드’ 명칭으로 변화해야 한다.

트럼프 현상의 의미를 잘못 읽는 사람은 미국정계에선 그 얼굴이 마른 낙엽처럼 시든다. 여야 어디에 속했든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내 가족을 모독하는 사람을 못받아 들인다’는 소리부터 거두어 들여야 한다. 건국의 아버지들과 링컨과 킹을 따라 ‘21세기적으로 번안된 예수 그리스도(퓨리터니즘)의 통치원리’를 제시해야 한다. 공화당은 국민 앞에서 이렇게 거듭나야 한다.

그 거듭남의 기회를 준 점에서 트럼프 돌풍은 국민들과 공화당에게 닥친 ‘하나님의 선물’인가 하면, 동시에 ‘하나님의 심문’이기도 하다. 그 심문에 바른 대답을 한 연후에야 트럼프를 준열하게 나무랄 것을 나무라면 잘 들을 것이다. 공화당원의 양심은 ‘트럼프 혐오의 눈’이 아니고, ‘형제애의 양심’이 될 때, 공화당의 재단결이 가능하다. 그래야 트럼프를 지지한 백인계 시민들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아 내게 된다. 그제야 그들의 올바른 주장과 미숙한 고집과 잘못된 욕망도 모두 읽을 수 있게 된다.그렇게 되면, 트럼프 돌풍을 일으킨 그 실질적인 주역은 하나님임을 알아보게 되고, 공화당은 거듭나게 된다.

- 공화당과 트럼프의 결속은 꼭 이루어져야한다. 그러므로 이룰 수 있다. -

이런 명제를 단순히 칸트와 같은 철학자의 추상적 관념으로 여기지 말아야한다. 개혁과 혁명이 일어난 곳에서는 언제나 이 명제가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등장한 까닭이다. 오늘의 미국정치현장은 바로 이 대개혁의 시즌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이 원리는 기어코 되살려 내야한다.

공화당은 미국을 거대한 빙산과 충돌하여 붕괴된 ‘타이타닉호’처럼 끌고 가려는가?

오바마-힐러리 배후의 빅브라더는 지금 미국을 붕괴시킬 빙산으로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무 늦지 않게, 이 위기를 인식하고 극복할 수 있는 미국이 되어야한다. 그러자면, 미국의 키잡이는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 정권’이 되어야 한다!

이 목표를 이루려면, 트럼프를 통해 노출된 공화당(티파티)의 위선성을 솔직하게 인정해야한다.

그렇게 되면, 공화당은 빅브라더를 업고 미국을 반역하는 민주당과는 확연하게 차별화된다. 그런 자리에 이르러야 비로소 ‘트럼프의 가치’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일 것이다. 미국을 위해서라면, 그는 ‘삭개오의 회개’에 용기를 내며, 뜨거운 마음으로 공화당의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다. 단, 그를 그런 사람으로 신뢰해 주어야한다. 공화당과 트럼프는 바로 이 선택을 해야 한다. 아니면, 그들은 하나님과 국민들 앞에 나설 수 없다. 그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다름 아니라, 티파티가 2015년의 ‘동성결혼 합헌 정치쇼’ 앞에서 보인위선과 무능이다. 다시는 범하지 말아야 할 그 실수와 잘못을 여기 말해둔다.

티파티의 기독교적 색깔은 ‘위선적 색깔’로 이미 드러나 있다. 티파티는 그것을 인정하는가? 그들의 ‘전통 가정윤리관’이나 ‘동성애 반대노선’은 원칙을 고수하는 일관성있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들에겐 없다. 동성애 반대의지는 ‘빅브라더지배욕’에 대한 거부의지와도 결합해 있어야 신뢰가 간다. 그런데 그들은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가난한 국민들의 복지에 관해선 무감각하다. 빅브라더의 ‘미국통치권 탈취’를 위한 음모성 준동(蠢動)에 대해선 무감각하다. ‘빅브라더 지배체제’의 잔인한 ‘반인간성(反人間性, Anti-Humanity)’은 동성애가 지니는 비정상성과 동급(同級)의 무서운 악인데도 말이다.

동성애 합헌화는 ‘인간성 도둑질’이요, 빅브라더 공포지배는 ‘통치권 도둑질’로서, 둘다 ‘인간성 파괴의 악’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한데 묶어서 문제 삼아야 한다. 그런데티파티는 빅브라더 지배체제 등장을 문제삼지 않는다. 또 그 두 악의 연계성(連繫性)도 부인한다. 왜 그럴까? 그들 티파티 자신이 ‘패권적 엘리트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힐러리 배후의 빅브라더 세력을 단순히 자신들과의 ‘패권지배 경쟁상대’로 인식하는 수준이다. 그러한 자신들이 얼마나 일반시민들에 대해 억압적 속성을 지닌 존재로 보이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2015년 대법관 9명의‘ 동성결혼 합헌화 범죄’에 대해 올바른 대응을 할 눈을 뜨지 못했다. 그 결과가 참담하게도 동성결혼의 합헌화이다. 그래서 오바마는 자신있게 그 합헌조항을 실정법적 칼로 삼아 크리스천 긴급척결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겉으로 보면, ‘동성결혼자의 인권보호’를 위한다는 명목이지만, 실은 퓨리터니즘과 보수적 크리스천을 법적으로 제제(除制)를 가할 장치를 마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트럼프 앞에서 자신들이 매끈매끈한 언어를 구사(驅使)한다하여, 그것이 곧 자신들이 트럼프보다 나은 도덕성과 실력을 가진 이들로 인정받으리라는 생각을 고쳐야한다. 국민들은 티파티 그룹이 빅브라더 세력의 이익을 옹호하는 짓만 골라서 해온 것을 잘 안다. 따라서 그들이 아무리 동성애를 반대한다 해도, 본질적으로그것을 참된 신앙으로 신뢰하지 못한다.

트럼프도, 공화당도, 예수 앞에서 서로 씻어라. 그래야 예수가 보인다!

오바마-힐러리 캠프는 왜 크리스천 척결같은 위험한 음모에 이토록 매달려 있다고 보는가? 이번 선거를 전후해서, 그들은 기어코 ‘글로벌 리스트들의 미국지배 양성화(陽性化)’를 완성하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미국진출에 제1차적 천적(天敵)인 퓨리터니즘과 보수적 크리스천을 먼저 쳐내거나, 눌러놓자는 책략으로 이 무리수에 매달려 온 것이다.

그들이 보수적 크리스천을 쳐내는 일에 성공하면, 미국사회는 즉각 공포지배 분위기로 진입한다. 동시에 테러예방을 구실로 크리스천 다음의 척결 대상 정적(政敵)들에 대한 무자비한 ‘예비단속’ 조치를 취하리라. 물론, 그 과정에 ‘666 베리칩’을 받도록 하는 강압적 조치도 등장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트럼프 돌풍’을 일으키신 이유는 바로 이 빅브라더 등장 음모를 막기 위함이시다! 아직도 모르겠는가? 아직도 모른다면, 그의 돌풍 앞에서 오로지 정치적 이해타산 만하는 자세를 지닌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그렇게 되면, 보이는 것이라고는 무소처럼 좌충우돌하는 트럼프 만 보일 것이다. 공화당은 이토록 자신의 눈이 멀어있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

트럼프는 이 빅브라더 지배음모를 드러내며 짓뭉개는 ‘무소의 질주’를 해 온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그 질주는 분명히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 측면이 있다. 그런가하면, 무소다운 어리석음과 오만도 있어서, 그 방향이 일정하지도 않고 바르지도 못한 면도있다. 그러므로 그 무소를 잘 길들여 훌륭한 전마(戰馬)나 농우(農牛)의 역할을 할 수있게 해야한다. 이무소를 잘 길들여 주어야 트럼프 돌풍이 마련한 ‘기막힌 대반전 희망’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 것은 오로지 ‘트럼프 정치돌풍 속에 감추인 하나님의 메시지’를 제대로 읽어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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