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여전한 이유

윤승용, 서울시 중부기술교육원장, 명지전문대학교 객원교수, 청와대 홍보수석 및 대변인 역임, 한국일보 기자 역임

사상 최악의 진흙탕 선거로 치닫는 미국 대통령선거. 특히 어제 진행된 2차 TV토론은 정치선진국(?) 미국이라는 얼굴에 먹칠을 한 저질 말싸움 그 자체였다. 언론들도 일제히 '추악한 썰전(sleazy debate) '이라고 질타했다.

물론 원인 제공자는 그간 숱한 막말 시리즈로 악명이 높았던 도널드 트럼프 후보였다. 그런데 2차 토론회 역시 힐러리 클린턴이 더 잘한 토론회였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막상 토론회 이후 트럼프의 지지율이 급전직하하지 않고 있다. 일반적 상식이라면 그는 후보 사퇴를 해야 마땅할 정도로 저질과 막말의 종합선물세트다. 특히나 근본주의적 종교관을 신봉하고 세속적 타락을 혐오하는 원조 보수 공화당 지지층에서 후보 교체론은 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미국을 좀 안다는 나에겐 이게 매우 궁금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궁금증을 다소 풀어주는 칼럼이 있어 재미있게 봤다. 뉴욕타임즈의 저명 칼럼니스트인 로저 코언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여전한 이유>란 칼럼이다. 오늘자 중앙일보에 실렸다. 그의 칼럼 일부분을 옮겨본다.

" 지난 1년간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과 대선 유세를 통해 미국인들에게 보여준 건 무지와 무능, 그리고 게으르고 덜떨어진 인품뿐이다. 그런데도 이 남자가 다음달 미국의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작지 않다.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정치가 범인(凡人)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한 가운데 사실과 픽션의 경계선이 없어졌거나 그 구분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공포가 민초들의 삶을 잠식한 가운데 누군가가 그 공포를 손쉽게 조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의 발달로 과거엔 인류가 알지도 못했던 불안이 증폭됐기 때문이다.

또 있다. 미국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이기기 위해 수조 달러를 낭비한 결과를 책임지지 않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2008년 금융위기를 일으켰음에도 그 죄를 인정하지 않는 워싱턴과 뉴욕의 엘리트 지도층에게 엿을 먹이려는 국민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세계화에 뒤처진 B급 백인들이 30년 안에 미국은 유색인종의 나라로 변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포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공화당과 민주당은 미국의 근로자들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지도층이 무역자유화를 내세워 미국을 헐값에 팔아치우고 미국의 예외적인 힘을 폄하해 위대함을 희석시켰기 때문이다.

글로벌리즘에 젖은 ‘뉴욕좌파’들의 유치한 평등주의가 “백인의 생명도 소중하다”고 믿는 이들에게 반발심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다른 인종에 대한 적개심이나 희생양을 찾는 비겁함 같은 가장 저열하면서도 뿌리 깊은 인간의 본능을 트럼프가 건드리고 칭송했기 때문이다.

백악관을 8년간 차지했던 클린턴 부부가 지난 25년간 부유층과 결탁하면서 기득권 정치세력의 정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왕적 특권에 치를 떠는 미국인들 눈에는 클린턴이 부패 정치인의 전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에는 한계가 없음을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트럼프가 백악관을 넘보는 이변이 가능해졌다."

매우 날카로운 지적이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를 유발하고도 이 죄과를 회피하려는 워싱턴과 뉴욕의 엘리트 지도층에 엿먹이려는 국민이 급증했다"는 지적과 "글로벌리즘에 젖은 '뉴욕좌파'들의 유치한 평등주의가 백인의 생명도 소중하다고 믿는 이들에게 반발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평가는 섬뜩하다. 바로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할 만한 사안이기때문이다.

미국 선거를 바라보면서 부의 독점과 양극화가 가속화하고 있는 한국의 내년 선거도 누군가가 '격발(trigger)'하기만 하면 미국처럼 뜻밖의 방향으로 폭발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http://news.joins.com/article/20704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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