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12장 1절-13절

신복교회 목사

 

[들어가는 말]

전도자는 보통의 인간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만한 인생에 대한 즐거움과 기대를 단숨에 제압해 버린다. 그가 보기에 사람들은 단체로 망각(妄覺)에 빠져 있다. 그래서 전도자는 인간들이 헛된 바람과 의미 없는 열심을 그치도록 그들이 직면한 비루하고 남루한 실상을 철저히 고발한다. 그렇다고 해서 전도자가 인간들이 허무함 속에 죽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인간들이 어리석은 착오를 겪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다. 망각에 사로잡혀 엉뚱한 길을 걸어가는 인간들을 고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참되신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기대한다. 그가 자신의 교훈을 ‘기억하라’는 말로 마무리 하는 이유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사람들은 망각(妄覺)에 사로잡혀 본분을 망각(忘却)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세상에 대한 헛된 기대들로 마땅히 걸어가야 할 인생의 참된 길을 저버리고 있는 것이다.

[본문 설명 및 교훈]

1. 전도자의 결론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

청년들을 향한 전도자의 결론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망각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청년아 너는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너의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말씀한다(12:1).

기억하라는 말은 잊은 채 산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청년들이 하나님을 잊고서 헛된 망각에 빠져있음으로 참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망각에 사로잡혀 살다가 후회와 고독 속에서 비참한 생애를 마감하게 될 것이다. 이어서 전도자는 인간의 마땅한 본분을 지키라고 한다. 인간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인간은 속히 망각에서 벗어나 인간의 마땅한 본분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며 그분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전도자의 결론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망각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자주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본분을 망각한다. 신명기의 주제도 기억하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으로 들어간 이후에 줄곧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망각한 채 우상을 섬기며 살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같이 멸망할 수 없다. 이제 속히 세상에 대한 망각에서 벗어나 실상을 깨닫고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2.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며 살아가는가!

① 약시의 인간(12:2) 
이미 전도자가 인생과 해 아래의 세계가 다 헛되다는 사실을 전해 주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가 보는 세상은 빛으로 가득하다. 2절 말씀에 보니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라고 한다. 우리가 망각하는 이유는 계속해서 아름다운 것들을 보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것들, 먹고 싶은 것들, 가지고 싶은 것들이 항상 주변에 있다. 우리에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것들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줄 안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태생적으로 참되고 본질적인 것을 볼 수 있는 시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기는 보지만 온전히 보지 못한다는 뜻에서 약시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인간들은 실상을 보지 못하는 한계에 놓여 있다. 참되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약시 상태에 빠져있는 것이다. 천하 만물에 하나님의 신성이 깃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시상태에 있는 인간들은 그 신성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겉모습만 본다. 화려하고 빛나고 돋보이는 것들을 좋아한다. 육신의 안목과 이생의 자랑이다. 이런 것들은 영원하지 않고 다 지나갈 것들이다(요일2:16). 사실 이생의 즐거움은 신기루와 같다. 잠깐 맛은 볼 수 있지만 결코 소유할 수 없고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전도자는 아름답게 보이는 모든 것들이 별 의미가 없어질 때가 온다고 경고한다. 죽음이 다가와 움직일 힘조차 없을 때 스포츠카를 동경할 자가 있겠는가! 그런 날이 오면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지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유용하게 여겼던 것들이 다 깨어지고 말 것이다(12:6).

② 충천의 인간(12:3-7)
전도자가 청년아 기억하라고 말씀하는 이유가 있다. 청년의 때에는 내적인 에너지가 충천하기 때문이다. 육신의 건강도 있고 원기가 넘친다. 패기와 열정이 있다. 그래서 청년의 때의 특징은 용감하다는 것이다. 도전 정신이 강하다. 난관을 스스로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전도자는 청년들의 이러한 성향을 알기 때문에 용사라고 해서 반드시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인간의 한계를 지적 하였다.

그럼에도 청년들은 전도자의 지혜를 따르지 않고 내면의 에너지에 집중한다. 신체가 건강하고 패기가 있으니 교만하기 쉽고 또한 망각하기가 쉬운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그리고 자기가 언제까지나 젊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며 산다. 그러나 전도자는 메뚜기조차 짐이 되고 정욕이 그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정욕이라는 단어는 ‘의욕’을 의미한다. 의욕조차 사라지는 날이 올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젊음과 기력이 거두어지는 날이 다가온다. 그 때에는 길 거리에서 놀라곤 한다(12:5). 어린 아이는 다쳐도 금방 새살이 돋아난다. 그런데 노쇠하면 다친 곳이 잘 아물지 않는다. 그래서 범사에 주의해야 한다.

전도자는 아침 새소리에도 잠이 깰 것이라고 한다. 왜일까! 우선은 나이가 들면 곯아 떨어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주의하고 경계하고 염려가 많아진다. 특히 죽음의 공포가 찾아온다. 그래서 작은 소리에도 잠에서 깬다. 전도자는 그러한 날이 속히 다가올 것이라 경고한다.

③ 불신의 인간(12:12)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삶의 경륜이 없어 행동이 앞서는 그런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무모하고 맹랑하다. 공포영화를 보면 이런 사람들 많다. 가지 말라고 하는데 꼭 들어간다. 한치 앞도 모르면서 자기 자신을 맹신한 결과로 굳이 낭패를 당한다. 전도자는 많은 공부는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할 뿐이라고 한다. 이 말은 공부가 의미 없다는 말이 아니다. 공부해 봐야 괜히 피곤할 뿐 전도자의 말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전도자는 8절 말씀에서 다시금 자신의 주장을 반복한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의심하여 무모한 도전을 감행한다. 스스로 허무함을 깨달을 때까지 믿지 못하고 계속 나아가고 추구한다. 그래서 많이 공부하고 더욱 지혜를 탐구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특징이 무엇인가! 정통을 해체하고자 한다. 탈현대화가 주류이다.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을 의심해 보고 재구성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이러한 성향이 교회에도 들어왔다. 정통을 부정하고 진리를 해체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허구로 몰고 의심한다. 전도자는 이런 자들을 향해 괜히 피곤한 일을 하지 말라고 한다. 전도자는 자신의 말이 찌르는 채찍 같고 잘 박힌 못과 같다고 한다. 그것은 빼어내서 확인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진리는 정확무오하며 전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다(12:10).

3.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① 보이지 않는 실상을 보라. 
눈에 보이는 것은 당장에는 좋으나 실상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우리는 껍데기만을 보고 있다. 하나님이 없이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들은 실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다. 모두가 맹인과도 같은 처지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다. 그 분은 칠흑같이 어두운 세상에 한 줄기 빛으로 오셔서 어둠을 밝히시고 진리를 드러내셨다. 환히 보게 하신 것이다. 그 빛은 믿음으로 우리 안에 자리 잡는다.

그러므로 믿음의 눈을 뜨고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에 허망한 것들에서 시선을 거두고 참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보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셨다. 믿음이라는 안경을 통해서만 진정 의미 있고 참된 된 것을 볼 수 있다. 언제까지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여 육신의 안목을 좇아 살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모양도 풍채도 없다. 십자가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 곳에 참 생명과 진리가 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께 집중하는 삶을 살라!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알게 하시고 분명한 실상을 보이실 것이다.

② 성령과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하라! 
우리 안에 에너지에 집중하지 말고 외부로부터 주어진 새로운 에너지에 집중하라. 청년은 충천한데 그것이 인간의 부패성으로 가득한 것이 문제이다. 자기의 능력에 집중하다보면 필히 탈선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제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신다. 새로운 마음을 주시고 새로운 의지를 부어주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정욕과 용기를 따르는 삶이 아닌 성령을 따라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온유하다는 말은 재갈을 물린다는 의미이다.

야생마와 같은 우리 안에 기질들을 성령의 고삐로 묶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드려야 한다. 너무 열심히 달리려고만 하지 말고 멈추어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의 양심의 소리를 따라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정하고 그 길을 걸어야 한다.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살기를 기대하라. 은혜 아니면 우리는 설 수 없는 존재들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겸손히 그 분과 동행하는 것을 원한다. 임마누엘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족하다.

③ 정통적 진리위에 믿음을 건설하라! 
진리는 단번에 주신 것이다. 믿음의 도는 하나님께서 확정하셨다. 그 복음의 내용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도자가 말한 한분 목자이시다. 참되신 스승이시며 교사이시다.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교훈은 잘 박힌 못과 같다. 따라서 교회가 주님께 받아 확립한 하나님의 진리 위에 자신의 믿음을 건설하라! 이것은 맹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어리석게 하나님의 진리를 의심하지 말고 그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 자신을 하나님께 복종시키라는 것이다.

우리는 진리를 의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예수께서는 최고의 선지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몸소 십자가에 못 박아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것을 나타내셨는데 젊은이들이 지속하여 하나님을 의심하고 시험하려 한다. 어떤 이들은 취업을 해야 예수님의 사랑을 알겠다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살아보면서 합리적으로 이해되는 선에서만 진리를 믿겠노라 한다. 자신들이 스스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앞에 다시 시험을 받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정직하며 영원하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 하셨다. 이제 진리를 믿는 확신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욱 믿고 따르며 살도록 하자!

[나가는 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이제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 늘 망각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던 우리들을 영원한 사랑에 속박시켜 주시고 그 사랑을 확인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헛된 망각에서 벗어나서 속히 하나님께로 나아와 인간의 본분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존재 자체가 망각하는 습성을 가졌다. 따라서 우리는 지속하여 믿음을 발동하여 실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우리 자신을 성령께 내어 드리며 그리스도께서 주신 진리를 따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야 한다.

청년에 때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에 순종하라! 이것이 우리가 결코 망각하지 말아야 할 인간의 본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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