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선지자 엘리야(열왕기상 18:41-46)

김에스더 목사, †he 2nd Life Foundation, 뉴욕퀸즈교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열왕기상 18:41-46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앞에서 달려갔더라


구약의 선지자들에게는 별명들이 있습니다. 호세아는 '사랑의 선지자', 아모스는 '공의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 그리고 본문에 나오는 엘리야는 '불의 선지자'입니다. 엘리야가 '불의 선지자'라고 불리는 이유는 첫째로 갈멜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불이 내렸으며(왕상 18:36-38) 둘째로 불수레와 불말들이 나타나서 엘리야와 엘리사를 갈라놓고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에 싣고 하늘로  올라갔기(왕하 2:11)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기도를 통해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게도 했지만, 불이 내린 후에는 또다시 기도를 하여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가물었던 땅에 비가 내리게 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기도는 불이건 물이건 하늘로부터 내려오게 하는 능력의 기도였습니다. 그뿐입니까? 하늘에서 내리게 하는 것 뿐 만이 아니라 하늘이 막혀서 아예 비가 오지 못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3년 6개월간 땅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야고보서 5:17-18을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엘리야와 우리가 같은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가 도대체 무엇이 다르기에 엘리야는 자연 현상까지도 기도로 컨트롤 할 수 있었을까요? 엘리야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라면 무조건 들어주셨을까요? 그리고 그는 어떻게 보잘것 없는 손바닥만한 구름만 보면서 큰 비가 올 것이므로 비에 막히지 않도록 하라는 장담을 했을까요? 또 그는 "큰 비의 소리가 있다"라고 했는데, 그 소리는 어떻게 들은 것일까요? 오늘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받고 우리도 엘리야처럼 큰 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큰 비를 기다리는 사람이 해야할 일의 순서

1. 하나님께 받기 원하는 것을 먼저 하나님께 풍성히 바쳐라.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가물었던 상황 속에서 엘리야는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과 기도의 대항을 벌이면서 네개의 통에 물을 담아서 3번을 단 위에 부었습니다. 즉 4(통)X3(회)=12. 즉 12번 물을 제단에 바쳤습니다. 성경에서 12라는 숫자는 완전 숫자이며 3회라는 것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숫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물은 그 자리에서 구한 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어드리기 위하여 미리 준비해온 물이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받기를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먼저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벳세다 들녘에서 보리떡 5개와 생선 2마리를 바쳤던 아이가 있었기에 5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떡과 생선을 충분히 먹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부족하거나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 부족한 것을 먼저 하나님께 바쳐야 된다는 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를 만났을 때에 사르밧 과부의 집에는 아들과 함께 한끼 먹을 밀가루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한끼 먹을 양식으로 과부와 아들이 먹기 전에 그것으로 음식을 조금 만들어서 자기에게 먼저 달라고 했습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집에 먹을 것이 다 떨어져서 이제 겨우 한 번 먹을 것밖에 없다고 하소연을 하는데, 목사님이 그 말을 듣고 안됐다라며 위로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을 목사님에게 먼저 조금만 달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도 목사님이니까 목사님 먼저 드리자"라고 하며 주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같으면 목사님에게 화를 내며 "도대체 목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목사라면 성도가 먹을 것이 없다고 하면 불쌍히 여기면서 그것부터 해결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던가 아니면 먹을 것을 주던가 해야 할 것이 아니냐"라며 따질 것입니다.

그런데 사르밧 과부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엘리야의 말을 듣자마자 자기 집에 있는 마지막 양식으로 엘리야를 위해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그녀의 집에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밀가루와 기름은 그 당시의 양식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의 말을 듣고 순종한 사르밧 과부는 평생 먹을 걱정을 하지 않고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잘 듣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일마다 교회에서 목사님을 통해 대언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성경말씀을 얼마나 잘 듣고 순종합니까? 여러분은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하나님과 얼마나 대화를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시는 것은 여러분을 calling하고 계시는 겁니다. 여러분을 부르고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여러분은 얼마나 귀를 기울여 잘 듣고 있습니까?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아가페 사랑"을 닮아서 그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고 했듯이 우리의 입에서는 "I don't care"이라는 아가페 사랑과 반대되는 말은 생각도 하지 말고 아버지의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여 자기의 모든 양식을 거의 바쳤던 사르밧 과부처럼, 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음식을 구하러 갔던 안드레처럼, 그리고 안드레의 말에 순종하여 도시락으로 보리떡 5개와 생선 2개를 싸갖고 왔던 어린아이가 자기 도시락을 바쳤던 것처럼, 우리가 무언가 받기를 원하면 그것을 구하기 전에 먼저 있는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서 바치는 헌신이 있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 당시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모든 땅이 마른 상황 속에서 엘리야가 어디에서 물을 12통이나 구해왔겠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요. 그것은 왠만한 수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 먼저 물을 제단에 부으라고 명령합니다. 사람들에게 물을 떠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물을 떠와서 준비해 놓고 있었던 것을 부으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정말 간절히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기 위하여 얼마나 미리 준비하고 있습니까? 혹시 바치라고 할까봐 걱정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해마다 6월 25일이 되면 한국에서는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 위하여 나라를 위한 기도회가 거국적으로 열립니다. 지금으로부터 약10년 전에도 나라를 위한 기도회를 하게 되었을 때에 그 기도회를 하기 위하여 5만불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항상 큰 교회들은 별로 협조를 하지 않고, 열심히 한푼 두푼 모아둔 그런 분들의 헌금으로 행사가 많이 진행되었다고 하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중에 성령께서 "네가 해라"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어머니를 통해 저에게 주셨던 유산이 조금 있었는데, 저는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치면서 하나님께서 저희 남편에게 복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우리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즉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10장29-30절에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집과 형제 자녀와 부모와 재산 등 모든 것을 버린 자는 핍박과 더불어 복을 받는다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씨를 뿌렸을 때에 30배 60배 1백배의 열매를 맺게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1만불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그 복을 저희 남편에게 내려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만 1년 만에 남편이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서 제가 바쳤던 액수와 똑같은 액수로 매달 월급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께 먼저 바치는 자에게 바치는 그 이상으로 복을 주십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정말로 거저 주셨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을 헐값에 다른 이에게 넘기고 받은 돈으로 재단을 만들어서 재단에 모두 부어 바쳤습니다. 약 10년 전에 의정부 광명교회 최남수목사님께서 우리 교회에 집회를 오셨을 때에 그분의 설교 중에 어느 할머니가 헌금을 했던 이야기는 항상 저에게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할머니에게 천원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그 할머니는 "하나님! 저에게 천원을 주시다니요! 이것은 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하나님께 바칩니다"하고 바쳤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후에 그것이 1백배의 열매가 맺혀서 10만원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너무나 놀라서 "아이고,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큰 돈을 저에게 주시다니요! 이것은 정말로 제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께 바칩니다"라고 하며 바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것의 1백배의 열매가 맺혀서 1천만원이 생겼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씀이 항상 제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저에게 만약 1천만원이 생긴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했는데, 막상 그런 기회가 오니까 전혀 머뭇거림없이 바칠 수 있었습니다. 한 번 바치고 나니까 그 다음에 바치는 것은 더 쉬웠습니다. 왜냐하면 바쳤을 때에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시작 단위가 그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받았던 액수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스케일이 매우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우리 부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돈을 모두 하나님께 쏟아 부었습니다. 그 액수는 10만불이 넘었는데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적은 액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돈이 그렇게 많은 돈이 아니어서 2년만에 금방 바닥이 났습니다. 주위에 도와줄 이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바닥이 났다고 생각지 않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저희가 부어드렸던 그 물을 모두 핥았다고(licked up the water) 생각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1-3절을 보면 오순절에 성령이 "불의 혀(cloven tongues like as of fire)"같이 갈라지며 임했던 사실이 있습니다. 즉 엘리야의 기도로 하늘에서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서 혓바닥으로 물을 핥듯이 모든 물을 핥은 것처럼 우리 부부가 하나님께 부어드린 것을 여호와께서 모두 핥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맛이 있으면 혀로 핥아서 깨끗이 먹듯이 그렇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다는 말입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왕상 18:36-38)


2. 필요한 것을 받기 전에 먼저 성령을 받아야 한다.

엘리야는 비의 응답을 받기 전에 먼저 하늘로부터 불이 임하는 기도를 합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여러분이 예배할 때에 여호와의 불이 여러분에게 임하시는 것을 경험하셨습니까? 여러분이 바치는 그 모든 헌신과 제물을 하나님께서 모두 태우시고 가져가시는 것을 느껴보셨습니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엘리야처럼 여호와의 불이 내려오도록 하는 능력의 기도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그리고 여러분이 바친 것들을 하나님께서 모두 흡족하게 받으시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대한 담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담대한 믿음이 없다면 감히 엘리야가 8백50대 1로 싸우자고 할 수 있었겠습니까? 엘리야는 사람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그 숫자가 감히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또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께만 기도했습니다. 그랬을 때에 8백50명이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의 몸에 상처를 내면서까지도 하지 못했던 일을 엘리야는 혼자서 해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과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불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가 바치고 헌신하는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하나도 남김없이 기쁘게 받으셔서 다 가져가시는 역사가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3.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제거해야 한다.

엘리야는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받고싶은 것을 먼저 드린 후에 하나님께 간절히 불이 임하기를 간구하여서  여호와의 불이 임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즉 오늘날로 말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자 엘리야는 담대히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자신이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에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그 순간에 먼저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 또다시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여호와의 불이 내린 것을 보면서 자기의 기도가 응답된 것에 만족하고 취해서 사람들과 잔치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자랑하지도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들을 제거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그의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되자 엘리야는 사람들을 시켜서 그들이 직접 우상숭배자들을 죽이도록 담대히 명령을 내립니다.

여러분에게서 죽여야 하며 없애야 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비전을 들은 사람, 그리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삶 속에서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걸림돌들을 모두 제거할 수 있는 용기와 부지런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무엇을 없애야 하는지를 잘 알면서도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 않는 것은 생각이 게을러서 그렇습니다. "나중에 하지 뭐~. 지금은 너무 힘드니까~" 등등의 게으른 생각이 우리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게 하며 계속해서 핑계 거리를 주는 것입니다.

저의 삶을 되돌아보니 자주 리더의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리더의 자리에 서게 되는지를 생각해보았더니 제 생각이 부지런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쉬지않고 했던 부지런함과 성실함. 그것이 리더의 자리에 있게 했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리에 있도록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로마서 12장8절을 보면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도와주려면 성실해야 합니다. 한두번 하다가 그만 두는 것은 구제하는 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성실히 끝까지 해야 합니다. 또한 누군가를 다스리려면 부지런해야 한다고 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결코 사람을 다스릴 수가 없고 오히려 부지런한 사람의 다스림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현재 리더의 자리에 서게 된 것도 게으르지 않고 항상 최선을 다해 성실히 일했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특히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고 미워하시는 것에 대해 부지런히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약속했어도 그 약속을 받을 상대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으면 천만금을 주려고 했을지라도 줄 수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준다고 약속하셨을 지라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운다면 그 약속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버려야 할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버리는 것이 힘들고 때로는 귀찮고 때로는 정말 버리고싶지 않은 것일지라도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우리의 자아가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우상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달란트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 비유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배로 남겨서 주인에게 갖다준 이들에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그 무엇으로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구원의 즐거운 자리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맡기십니다. 우리를 이제 편히 쉬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으로 맡기시겠다고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사용하여 무언가를 했다고 큰소리 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성취하는 분도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4. 언약의 말씀을 믿음으로 선포한다. 

우상숭배자를 모두 처분한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41절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하나님께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먼저 바치고 헌신한 뒤에 성령충만함을 받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던 모든 우상숭배에 관한 것들을 제거하였으면, 그 다음에 해야할 것은 이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들었던 약속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고 선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하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성심성의껏 바치지도 않고, 성령충만함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믿음을 갖고 선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자기 확신일 뿐 믿음이 아니며 허공에 떠다니다가 사라질 헛소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것이 이루어졌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순간적일 뿐 지속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마귀도 부귀와 권세와 영광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그런 사람에게 그가 원하는 것을 주어서 속게 만듭니다. 그리고 확실히 속았을 때에 주었던 것을 다시 빼앗아갑니다. 그렇게 될 때에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고 주위 환경을 불평하며 과거보다 더 악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인가 믿음을 갖고 선포할 때에 반드시 우리가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헌신했는가, 성령충만함 속에 거하는가, 우리 속에 있는 우상을 모두 제거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직까지도 우리 속에 제거되지 않은 우상을 갖고 있으면서, 그리고 하나님께 별로 헌신하지도 않으면서, 성령충만보다는 자기 생각으로 꽉 차있으면서 아무리 긍정적 믿음을 갖고 선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주안에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를 선물로 받습니다. 은사 중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믿음이며, 또 다른 하나는 예언입니다. 오늘날의 '예언'의 은사는 성경말씀을 제대로 잘 해석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잘 전달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과거 성경이 없었을 때의 '예언'은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앞날에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던 땅에 비가 올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 속에 있던 우상숭배자들을 모두 죽인 후에 엘리야는 비가 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큰 비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무도 듣지 못한 그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진실하게 기도하는 사람은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비전을 보고 듣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을 믿음을 갖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자 즉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자에게는 예언의 은사를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풀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며, 때로는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일들 즉 하늘의 지혜를 듣고 보기도 하며 깨닫게 되어 믿음을 갖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5. 믿음을 갖고 겸손히 기도한다.

엘리야의 기도하는 태도를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본문 42절을 보면,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다고 나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살이 쪄서 무릎에 머리가 닿지 않는다구요? 몸이 굳어서 안된다구요? 그러나 그런 것은 핑계에 불과하며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넣었다는 것은 고개를 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즉 기도 응답이 될 때까지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얼굴을 돌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 포커스를 맞추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마태복음 26장3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무릎 사이에 얼굴을 넣고 기도한 것이나 예수님께서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한 것은 모두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며 또한 간절한 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6. 인내와 소망을 갖고 응답될 때까지 간구한다.

믿음을 갖고 기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비전을 주십니다. 그것을 보여주기도 하시며 듣게도 하십니다. 엘리야는 큰 비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큰 비의 소리를 들려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가 큰 비의 소리를 들은 것은 그가 갈멜산에서 기도하여 하늘로부터 불이 임한 뒤에 들은 것이 아니며, 우상숭배자들을 모두 척결한 뒤에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큰 비의 소리를 들은 것은 이미 갈멜산에 가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받은 비전 때문에 그는 담대하게 갈멜산에서 마귀의 종들과 영적 전쟁을 치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18장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임하셔서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미 엘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엘리야는 담대히 믿음을 갖고 아합을 찾아가서 만났던 것이며, 그에게 비가 올 것이라고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비전을 듣고 선포했는데, 그 비전이 금방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은 뒤에 금방 아들이 생긴 것이 아니라 25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요셉도 어린 나이에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형제들로부터 시기를 받아서 인신매매단에 팔려가서 애굽에서 살아야 했으며 심지어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까지 들어가야 했습니다. 요셉도 십수년이 걸려서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드는데 1백20년이 걸렸습니다. 일주일도 아니고 한달도 아니고 일년도 아니고 십년도 아니고 1백20년을 방주를 만들면서 얼마나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을지를 상상해 보십시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비전을 듣고 본 뒤에 그것이 성취될 때까지는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엘리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일을 행하여서 하늘로부터 여호와의 불이 임하게 하는 능력의 기도를 하고 우상숭배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엎드려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도를 하는데, 쉽게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만약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약속을 받았으니까 기도를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약속만 받고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응답을 받는 이들의 특징은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을 주신 뒤에 우리가 그 언약을 믿고 그것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아직 우리 가정이나 재단에는 큰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서 손만한 구름이 일어나게 하신 것을 이미 듣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담대히 선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사환에게 7번까지 가서 보라고 한 것처럼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지금 부족하지만 저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7번까지 가서 본 사환은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라고 자신이 체험한 것을 간증했습니다.

여러분도 이 사환처럼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반드시 7번 가시기 바랍니다. 6번까지 갔을 때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이는 끝까지 보일 때까지 가라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온전히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응답받을 때까지 손만한 작은 구름이 보일 때까지 하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작은 성공에 만족하지 맙시다. 이는 불만족스럽게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작은 성공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큰 비의 소리를 들으라는 말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큰 비의 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계십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엘리야처럼 머리를 무릎 사이에 박고 응답이 될 때까지 7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에, 우리 가정에, 우리 사업에, 우리 나라에 큰 비의 소리가 있게 하옵소서."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축복의 기도가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와 기업과 나라를 살릴 줄 믿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성취하시리라 믿습니다. 지금까지 하루에 겨우 한 번 기도했습니까? 두세번으로 늘리시기 바랍니다. 하루에 두세번 기도했습니까? 대여섯번으로 늘리시기 바랍니다. 대여섯번 기도했습니까? 일곱번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더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에 머리를 무릎 사이에 박고 절대로 고개를 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큰 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기도의 사람, 비전의 사람, 비전을 선포하는 사람, 비전을 성취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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