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구 신임 감독회장 첫 행보, 감리교 최초 순교자 추도예식 기려

<김영학 목사 기념사업회. 이하, 기념사업회>는 지난 31일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경기도 용인)에서 <기독교대한감리회본부> 주최로 기독교대한감리회 해외파송 최초 순교자이며 애국지사인 <김영학 목사 84주기 추도예식>을 드렸다.

특히 지난 28일 제32회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를 통해 새로 취임한 전명구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본부, 대은교회)의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으로 그 의미가 더욱 고취되었다.

김홍선 목사(명성교회, 기념사업회 후원이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추도예식에서 기도를 맡은 송광섭 목사(만족교회, 기념사업회 후원이사)는 “예수님의 복음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던 순교자 김영학 목사님을 기독교대한감리회 자랑스러운 목회자로 일찍이 세워주심을 감사하다.” 라고 하며, “이 시대 필요한 것이 순교자의 신앙임을 깨닫게 해 주기 위해서 기념사업회를 세워주심을 믿는다.” 고 기도했다.

 다음으로 김상철 목사(파이오니아21 대표, 기념사업회 이사)가 김영학 목사의 약력을 소개하였다. 김상철 목사는 김영학 목사의 일대기를 접한 후 감명을 받고, 다큐멘터리 영화 <순교> 제작·감독 하였다. 현재 영화 <순교>는 감리교단을 비롯한 초교파적인 관심을 모으며 전국을 순회하며 개봉되고 있으며,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큰 감동과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어진 추도사에서 진인문 감독(경기연회, 하북교회)은 “순교자를 추모하고 순교신앙을 기리며 이어받는 일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일은 없다.” 라고 하며, “순교신앙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죽도록 따르는 길인데, 김영학 목사님은 죽어서 사는 법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셨다.”고 말했다. 또한 “김영학 목사님은 민족의 양심이었고 어둠을 밝히는 증인이며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행동과 삶으로 보이시어, 배신과 변절의 이 시대 신앙의 사표가 되었다.”고 했다.

추도사를 마치자 윤혜지 해금연주가(대죽교회)가 ‘사명’이라는 찬양을 해금으로 연주하며, 더욱 숙연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어진 전명구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대은교회)은 “목숨보다 귀한 사명”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서 이번 추도 행사에 참여한 소회를 다음처럼 밝혔다.

“감독회장에 당선 후 양화진의 선교사들을 찾아뵈었다. 오늘은 감독회장 취임 후 첫 공식일정이다. 여러 바쁜 일정 중에도 이곳에 먼저 온 이유는 김영학 목사는 아직도 우리 가운데 살아 있기 때문이다. 김영학 목사는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양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한 참 목사였다. 마치 주님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의 낮고 천한 곳에 오셔서 그들과 함께 한 것처럼 김영학 목사는 예수님을 닮은 예수님의 신실한 종이었다.”라고 했다. 또한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곳에 올라갔다. 이처럼 사명은 목숨보다 귀하다는 것이다. 귀하게 쓰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가치관이 변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목숨보다 귀한 사명을 발견한다. 생명의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내 생명이 존재한다는 가치가 바뀐다.”고 설교했다.

전명구 감독회장은 “하나님의 사명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은 목숨을 바쳐서 이룰 일감이 있다는 것이다. 사명을 가지고 살아간 바울 사도와 고 김영학 목사의 삶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더 나아가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지를 깨닫게 되며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령에 붙들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순서로 최종호 목사(광주교회, 기념사업회장)는 인사말을 통해서 “오늘날 한국교회는 순교자를 기리며 기념하지 않아서 교회 신앙이 허약해지지는 않았는가? 그 동안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여러 순교자들이 있었는데, 이미 알려진 순교자들 보다 더 빛나는 삶을 사신 김영학 목사님이 계시다.”고 했다. 특히 “지난 84년 간 교단 내에서 공식적인 추도 행사를 드리지 못했는데, 전명구 감독회장이 김영학 순교자를 기념하는 추도 예식을 첫 번째 공식적인 업무로 여기고, 중앙연회 이광석 감독과 경기연회 진인문 감독도 함께 한 일은 앞으로 감리교단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에게 순교자의 정신을 고양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곧이어 김지영 교수(한국음악교수협의회 사무국장, 김영학 목사 손녀)의 후손인사가 있었다. 김지영 교수는 “아버지(김영수 씨, 전 육군군군의감 소장예편)가 할아버지의 어려운 순교로 인해 많은 상처가 있었음을 보았다. 그럼에도 할머니(안원정 사모)가 어렵게 가정을 이끌어 오면서도 신앙으로 양육하였기에, 자신들도 신앙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특히 그 순교자의 정신이 오빠에게 이어져 현재 이집트의 무술림들을 위한 선교를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곳을 흔들고 있는데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며 소명을 주셨다.”라고 말했다. 김지영 교수는 “김영학 목사 기념사업회가 서기까지 최양섭 목사님이 많은 고생을 하였다. 할아버지에 대한 논문을 쓰고 연구하며 밝혀 주신 일에 감사드리며 김상철 목사님, 김홍선 목사님께도 감사드린다.” 고 말했다. 이어서 “할아버지는 적색순교를 하셨다면 할머니는 백색순교를 하셨다. 어릴 때 늘 가정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기억하고 찬양을 부르게 하셨다. 할머니는 어려움 중에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후손들을 믿음으로 잘 양육하였다.”고 회고했다.

마지막으로 이광석 감독(중앙연회, 의정부중앙교회)가 “김영학 목사의 하나님을 사랑했던 뜨거운 마음과 영이 우리들과 교류되고 수고한 분들의 일들 속에도 채우시는 은혜가 있기를 원한다.”고 축복기도 함으로 1부 예배를 마치게 되었다.

곧이어 2부 순서에서는 최양섭 목사(대죽교회,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의 김영학 목사 일대기 소개가 있었다. “예수의 복음으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순교자 김영학 목사”라는 제목을 통해 최양섭 목사는 다음처럼 말했다.

“김영학 목사님이 7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1명이 살아남았다. 23년 전에 그 유일하게 살아남은 김영학 목사님의 아들 김영수 씨와 전화 통화를 통해 ‘김영학 목사님을 세상에 드러내어 그 순교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이 오늘까지 이어졌다.”라고 말했다.

특히 최양섭 목사는 “감리교단이 김영학 목사에게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한데, 이것은 김영학 목사 순교 당시 남감리회가 러시아 선교에 전력을 하였기 때문이다. 2020년에는 감리교회가 러시아를 선교한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1925년 이후부터 외국인 선교사는 여기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한국인 선교사만 남는다. 하지만 1929년 마지막으로 선교사들이 교인 300명을 데리고 탈출 할 때 김영학는 그곳을 떠나지 않고 지키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양주삼 총리의 간곡한 귀환 요청도 거부한 김영학 목사는 ‘여기에 단 사람의 성도가 남아있다면 어떤 고난과 위험이 있어도 떠날 수 없다.’고 자리를 지키다가 가족을 앞서 러시아를 탈출케 하고 자신은 홀로 남아 선교지를 지키게 된다. 그 후 집요한 배교강요를 거부하다가 나가예바(마가단) 노동강제수용소로 전감되고, 중노동현장에서 눈 치우는 일을 하다가 농가름에 빠져 순교한다.”라고 말했다.

(편집자 주: 김영학 목사의 일대기는 추후 본 지에서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 해외 파송 최초의 순교자이며 동시에 애국지사인 김영학 목사는 훗날 대한민국 대통령표창(1963), 건국포장(1977),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추서, 독립유공자 선정(1990)됨으로 역사적인 업적이 인정받았다. 이에, 전명구 감독회장의 첫 행보가 김영학 목사 84주기 추도예식으로 시작된 것은 뜻 깊은 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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