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훈 목사(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미션유럽 대표)

임재훈 목사(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미션유럽 대표)

1. 독일개신교회(EKD)는 2016년 10월 31일 베를린 마리엔교회에서 드려진 종교개혁일(Reformationstag) 기념예배에서 종교개혁 500주년 희년(Reformationsjubiläum)이 시작됨을 선언하였다.

이날부터 시작해서 내년 2017년 10월 31일까지 독일교회를 비롯한 유럽교회 차원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예배, 교회의 날, 각종 행사가 개최된다.

2008년부터 시작된 ‘루터 10년’은 종교개혁이 정치·사회·문화·교육 각 부문에 끼친 영향을 십년간 열 가지 영역으로 접근함으로 교회가 감당해야 할 오늘의 선교적 과제를 제시해왔는데, 매해 10월 31일부터 다음해 10월 31일까지 새로운 연간주제가 다루어졌다.EKD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그 역사적인 의미를 규명하고 향후 교회가 나아갈 미래적인 전망을 수립하기 위해 ‘루터 10년’(Lutherdekade, 2008-2017) 프로젝트를 전개해왔다.

2. 종교개혁 희년의 시작을 선언한 이날 예배에서 EKD 의장 하인리히 베드포드-슈트롬감독(Bischof Heinrich Bedford-Strohm)은 종교개혁 500주년의 의미를 ‘화해와 출발의 시그널’(Signal der Versöhnung und des Aufbruchs)과 ‘교회일치를 위한 역사적 기회’(Historische Chance für Ökumene) 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제시하였다.

이는 독일개신교회가 더 이상 500년 전 과거의 기억과 업적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종교개혁이 초래한 의도치 않은 교회분열의 역사적 과오를 되새기며 미래를 향해 새로운 출발(Aufbruch)을 하는 계기로 희년을 맞아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개신교 특히 루터교와 가톨릭 간에는 16세기 종교개혁이 지니는 의미를 개신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2000년 교회사 속에서 공통의 역사적 유산으로 여김으로 미래를 향해 개신교와 가톨릭이 현재의 선교적 과제들을 어떻게 함께 수행해 나아갈지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지난 50년 간 있어 왔다.

지역단위 로컬처치 현장의 결혼, 장례, 세례 등 구체적인 목회적 차원에서의 개신교와 가톨릭 간의 협력 경험 그리고 양 교회 리더쉽과 신학자들 간의 지속적인 대화와 축적된 연구를 집약한 최초의 신학적인 문서가 1999년 아욱스부르크에서 체결된 ‘칭의교리에 대한 합의선언문’(Gemeinsame Erklärung zur Rechtfertigungslehre/Joint Declaration o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1999)이다. (참고적으로 감리교는 2006년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감리교대회에서 이 문서에 서명하였다.)

이날 베드포드-슈트롬 감독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교회일치를 위한 역사적 기회’로 삼자는 언급은 같은 날 스웨덴 룬트(Lund)에서 가톨릭 프란치스코교황과 세계루터교연맹(LWF) 무니브 유난 의장이 함께 인도한 종교개혁 500주년 희년 맞이 예배의 정신에 연대함을 의미한다.

베드포드-슈트롬 감독은 이 예배에서 지난 50년 간 독일에서의 교회일치와 연합에 기여한 공로을 기려 마틴루터 메달을 마인츠 주교를 역임한 칼 레만 추기경에게 수여하였다.

말씀(Ansprache)을 전하는 EKD 의장 하인리히 베드포드-슈트롬 감독

3. 역사적으로 마인츠 대주교는 종교개혁 당시 알프스이북의 가톨릭교회 특히 신성로마제국(지금의 독일)의 가톨릭을 대표하는 주교였다. 종교개혁을 유발한 독일지역에서의 면죄부 판매도 마인츠 대주교의 관할이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채교회에 95개조를 게시하기 전에 마인츠대주교에게 면죄부의 부당함에 대한 서한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마인츠 대주교는 종교개혁을 유발한 직접적인 원인제공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스웨덴은 가톨릭이 주류인 유럽에서 독일과 더불어,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개신교 국가들을 대표하는 나라이다. 또한 희년 맞이 예배가 드려진 룬트는 제 3차 신앙과 직제위원회(Faith and Order, 1952)가 열린 도시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종교전쟁(30년 전쟁, 1618-1649) 당시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아돌프의 참전이 없었다면 독일 개신교, 종교개혁 진영의 존립은 상상하기 힘들다.

지금도 독일개신교회 내의 선교기관 ‘구스타프 아돌프 기구’(Gustav- Adolf-Werk)는 유럽과 남미의 개신교가 취약한 지역을 후원하는 역할을 함으로 전사를 하면서까지 개신교를 지켜낸 구스타프 아돌프 왕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4. 종교개혁 500주년 희년을 오픈하는 베를린과 룬트의 예배에서 마인츠주교에게 마틴루터 메달이 수여되고, 500년 만에 처음으로 가톨릭 교황이 종교개혁일 예배에 참석해 양 교회 간의 화해와 일치에 대한 성명을 발표한 것은 교회사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개신교는 물론 가톨릭 역시 '종교개혁의 영적, 신학적인 유산'을 교회사적인 공동의 유산으로 수용함으로 과거지향적인 것을 넘어 미래를 향해 양 교회에 부여된 현재적인 공동의 선교과제를 함께 수행해 나가겠다는 상징적인 선언이라고 여겨진다.

이는 21세기 근대이후의 세속화 된 사회에서 전통적인 기독교왕국(Christendom)이 지녀왔던 영적인 영향력과 선교동력이 쇠퇴한 유럽교회가 취한 현실적인 대응이며 새로운 출발이다.

베를린 마리엔교회(St. Marienkirche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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