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에스더 목사, †he 2nd Life Foundation, 뉴 욕 퀸 즈 교 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누가복음 12:16-22

16.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15분' 이라는 연극이 있습니다. 막이 오르면 한 젊은이가 나오는데, 아주 행복에 가득차 보이는 모습입니다. 그는 현재 세계적으로 일류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여 논문을 제출했는데 교수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있어서 곧 논문 통과가 될 것을 짐작하고 있었으며 또한 아름다운 여인과 연애하다가 얼마 전에 그녀에게 청혼을 한 상태였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상당한 부자였으며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조건을 모두 갖추었습니다. 그는 이제 행복하게 살 일만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더이상 바랄 것이 없었고, 그는 미래에 대해 잔뜩 가슴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때 흰 가운을 입은 의사 한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의사는 이 젊은이를 진찰한 뒤에 "당신은 이제 15분밖에 더 살지 못할겁니다"라고 말하고는 퇴장합니다.

행복에 겨웠던 청년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졌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안고 잔뜩 부풀어올랐던 그의 마음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기쁨으로 활짝 펴있던 그의 얼굴은 점점 잿빛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편 배달부가 편지 한통을 주고 가는데, 그가 박사논문을 제출한 대학에서 그것들을 인정해주고 박사학위를 수여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이제 10분 남았는데, 그때 배달부가 또 한 통의 편지를 가져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수억원의 재산을 상속 받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전혀 기쁘지가 않습니다. 

이제 5분 남았습니다. 우편배달부가 또 편지를 가져옵니다. 사랑하는 여인이 그의 청혼을 받아들여서 결혼을 승낙한다는 내용입니다.

이제 이 청년이 통곡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1분 남았습니다. 그는 1분동안 굉장히 괴로워하다가 쓰러져 죽으면서 연극의 막이 내립니다.

이 연극의 주인공은 우리가 인생에서 갖고 싶어하는것을 다 가진 사람입니다. 아니, 가질 뻔한 사람입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라고 공부도 잘했으며 외모도 멋있게 잘생기고 재산 상속까지 받아 가진 돈도 많고, 아름다운 여인과 멋진 사랑도 했습니다.

그런데 남들이 갖지 못했던 그 많은 것들을 정말로 갖게 되었을 때에 그는 그것을 단 하나도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그가 꿈꾸어왔던 그 모든 것들이 아무 소용도 없는 쓰레기와도 같이 다 버려야하는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죽음 앞에서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멋진 꿈을 실현하는 것도,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해서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는 것도 아닌, 홀로 죽음이라는 고통과 싸우며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통곡을 하다가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은 다 죽어도 자기만큼은 영원히 살 것처럼 말과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말씀합니다. 즉 죽음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오고, 그 후에는 모든 사람에게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인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 대해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유는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강론하고 계실 때에 어떤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어떤 문제가 있을 때에 '랍비'를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랍비'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도중에 자기의 문제를 내놓았던 것입니다. 그는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13절)라고 예수님께 요청했고, 예수님은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라고 하시면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라고 하시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14-15절).

예전에 한국에서 유산분배 문제로 형제간에 살인사건이 일어난 이야기를 듣고 저는 정말 말문이 막혔던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형제에게 유산이 남겨졌는데, 동생 몫으로 1천5백만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형이 자기몫을 주지 않아서 동생이 언제 줄거냐고 물어보니까 형이 함께 여행을 다녀와서 주겠다고 하면서 여행을 다녀오자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즐겁게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간 곳에서 형이 동생을 죽이고 그 시체가 동생이라는 신원이 확인이 되면 안 되므로 전혀 알아볼 수 없도록 난도질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에와서 동생의 물건을 정리하면서 보니까 생명보험에 가입이 되어 있었던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동생은 가족이 없기 때문에 그 몫이 형에게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또 그 돈에 욕심이 생긴 형은 경찰에 목소리를 위장하여 '어디 어디에 가서 땅을 파보면 시체가 나올텐데, 그 시체가 아무개이다'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결국 그의 동생의 시체가 발견이 되었고, 그 형의 죄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형처럼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의 욕심만 채우려는 사람은 형제도 가족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이러한 파렴치한 인간이 활개치고 돌아다니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가족이건 누구건 간에 자기를 위해 존재해야 하며, 자기의 야망과 욕심을 채우지 못하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 항상 우리 주위에서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야비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없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마귀의 세상은 모든 것이 교만과 거짓과 허영과 질투와 시기심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가족이라도 내가 더 가져야 하고, 내가 더 누려야 하고, 내가 더 높아야 합니다. 만약 누가 나보다 돈이건 재능이건 학력이건 인기건 심지어 신앙까지도 조금이라도 더 갖고 있으면 당장에 죽여버리는 것이 마귀의 세상입니다. 

이러한 일이 교회에서는 안 일어난다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에요. 교회에서 더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최초의 인간인 형 가인이 하나님께 제사(예배)를 드린 다음에 동생 아벨을 죽인 것처럼 모든 문제는 예배를 드린 후에 발생합니다. 자기의 예배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은 것을 영적으로 느끼는 이들이 기쁨의 예배를 드린 자들을 망가뜨리기 위하여 교회 안에서 온갖 일들을 저지릅니다. 항상 시기심과 질투로 빚어지는 미움과 살인은 예배와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못하여 그의 삶이 하나님께 열납되지 못하는 인간으로부터 나옵니다.

'사람'이라는 뜻의 '아담(אָדָם)'이라는 말은 알레프(א:하나님)+달레트(ד:문:언약, 십자가)+멤(ם:물:말씀)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즉 낱자들을 분석해보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창조하신 것이 바로 아담인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대로 사는 인간을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인간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20).

언제 죽을지 모르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은 인간들은 죄악을 밥먹듯이 행하면서도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살아갑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생활합니다. 자기의 배만 채우며 남보다 더 가지려고, 남보다 더 높아지려고 바벨탑을 쌓아갑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오셔서 흩으시고 쓰러뜨릴 바벨탑을... 그래서 예수님은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파괴하는 그 모든 것이 '탐심'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탐심'이라는 헬라어 πλεονεξία(플레오넥시아)라는 말은 "더 가지려는 욕심(greedy desire to have more)'이라는 뜻입니다. 즉 현재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자꾸만 비교하면서 그 사람보다 더 가지려고 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내가 갖고 누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바로 탐심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십계명이 요약을 해서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 증거하지 말라,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지 말라"라고 명령하신 것이며, 골로새서에서는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골 3:5).

우리가 돈을 왜 법니까?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요? 아니면, 즐기기 위해서요? 또는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기 위해서요?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것을 이웃과 나누기 위해서라는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청지기로서 잘 다스리며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삶을 살기 위해서이지, 나만 누리고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많은 수확을 거두어서 그것을 둘 장소가 모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는 그것을 불쌍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하는데, 그는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것을 더 쌓아두기 위해 큰 창고를 만들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생각이 "악하다"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본다면, 그는 유능하고 성공한, 잘 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성공의 비결을 배우러 올 수 있는 그러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잘 나가며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다고 해도 오늘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가족과 이웃에게 베풀어주며 그들을 겸손히 섬겨주면서 그들을 위해 희생했을 때, 그가 죽으면 그를 통해 사랑을 받았던 모든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며 슬퍼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마음 속에 그의 희생의 사랑을 간직할 것입니다. 

반면에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려고 하며 자기 기분에 따라 사람들이 따라주기만을 바라며,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시기하여(이웃의 것을 탐내며) 미워하며(살인) 어떻게 해서든(거짓 증거) 그를 자기 발밑에 두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며(도적질), 주위 사람들의 마음이 아프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과 자기의 기분만을 위해 살아가는 즉 하나님보다 자신의 정욕을 위해 살아가는(영적 간음) 사람이 죽는다면, 그를 위해 슬퍼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단지 천국에 가지 못함을 인하여 안타까와하며 슬퍼할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강포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하나님)를 말함보다 거짓(세상, 마귀)을 사랑하는도다.(셀라) 
간사한 혀여! 네가 잡아 먹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그런즉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취하여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생존하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셀라)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저를 비웃어 말하기를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던 자라" 하리로다.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영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함으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의지하리이다." (시편 52편)


그러므로 야고보서 4장에서는 우리의 인생이 잠간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 4:13-17).

성경은 우리가 선을 행할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시기심"과 "정욕"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기심과 욕심 때문에 아무리 싸우고, 하나님께 간구하여도 그것을 결코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원수가 될 뿐이라고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약 4:1-4)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겸손히 하나님께 순복하라고 명령합니다. 마귀에게 순복하지 말고, 마귀의 미혹에 귀 기울여 넘어가지 말고 마귀를 대적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마귀가 피합니다. 마귀를 대적하지 않고, 마귀가 넣어주는 교만함으로 인해 피어나는 시기심과 열등감과 좌절감과 우울함과 미움이라는 육체의 열매를 받아들일 때에 마귀는 좋아서 그 사람에게 바짝 붙어서 그를 통해 신바람나게 어둠을 뿌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정쩡하게 양다리를 걸치면 안 됩니다. 두 마음을 품으면 안됩니다. 이러한 사람을 성경은 '죄인'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교만히 행하면, 하나님께서 그 교만한 자를 물리친다고 하십니다. '물리친다(ἀντιτάσσω, 안티타소)'라는 말은(to range in battle against, resist, to oppose one's self) 베드로전서 5장5절에서는 '대적한다'라는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즉 마귀를 대적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대적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찌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6-10)

우리의 인생은 단 한 번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인생이 80년이 될 수도 30년이 될 수도 60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을 정하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15분'이라는 연극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꿈을 갖고 살아간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사람의 꿈을 이룰 때까지 살게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저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소식만 듣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서 고통스럽게 죽어갈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자기밖에 모르는 부자처럼 세상적으로 볼 때 너무나 똑똑하고 잘 나가는 사람이지만, 그래서 모든 계획이 완벽하게 짜여졌지만, 계획만 세우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또 야고보서에 나오는 사람처럼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자신의 머리를 자랑을 하지만, 그것은 안개처럼 사라지는 허탄한 자랑일 뿐 오늘이라도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데려가시면 그의 생명도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인해 다투며 싸우며 근심하며 걱정하며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무엇이 필요한지를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아서 다 챙겨주시는데 왜 자꾸만 더 가지려고 하냐고 하십니다. 왜 남을 밟고 올라서려고 하냐고 하십니다. 왜 현재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감사와 축복 대신에 불평과 비난과 저주가 쏟아져나오냐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아직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세상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말씀하십니다. 돼지처럼 겉은 쪽발이어서 경건한 척 교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정욕을 위해 세상적으로 복을 받기 위해서 할 뿐이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시고, 그 사람의 중심을 보고 판단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현주소는 어디입니까? 지금 여러분이 서있는 땅은 어떤 땅입니까? 거룩한 땅입니까? 어둠이 결코 침범할 수 없도록 마귀를 대적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마귀의 유혹에 반쯤 마음을 내어주고 마음껏 마귀가 활동하도록 해주고 있습니까? 

오늘 밤 당신이 죽게된다면, 지금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지금부터 15분 뒤에 갑자기 어떤 예기치 못한 일로 죽게된다면, 지금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 가슴을 치며 죽어가시겠습니까? 교만함과 미움과 용서하지 못함을 가슴에 품은 채로 죽어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다가 가시겠습니까?

그리고 당신이 죽었을 때에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서 뭐라고 할 것 같습니까? 그리고 뭐라고 하기를 바라십니까? 지금 당신의 가족들은 당신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교인들과 학교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은 또한 당신의 뒤에서 당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살아온 행위록에 기록된 것을 보시며 뭐라고 평가하실 것 같습니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는 말씀처럼 죽는 순간 그 다음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입니다. 그 자리에 떳떳하게 설 자신이 있습니까? 모든 사람이 죄인이므로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했으므로 당신의 언행이 어떻거나 상관없이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받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습니까?

소련의 서기장이었던 후르시초프는 하나님을 모독하며 기독교인을 말살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세계기독교평화회의'라는 것을 만들어 K.G.B.요원이며 그 단체의 회장인 니코팀이 W.C.C.(세계교회협의회)의 의장이 되도록 했습니다(W.C.C. 제3차 총회). 그리고 그는 세계를 적화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가 3년 안에 소련에 있는 모든 기독교인을 다 죽일 것인데, 한 명만 남겨두고 나머지 기독교인을 다 죽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한 명을 전세계 사람들이 TV를 보는 앞에서 죽이면서 "이제 기독교인은 한 명도 없이 다 죽었다"라고 선언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하고 3년 만에 기독교인들이 죽은 것이 아니라 그가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아무리 권력을 잡고 위에 올라가서 사람들을 다스리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을 다스리는 분은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며 생각하는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 139:2-4). 이 말씀을 정말로 믿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천국과 지옥도 믿으십니까? 믿는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로마서 8장19-22절을 보면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인간이 하나님을 버리고 마귀의 유혹에 넘어감(타락)으로 인해 인간과 함께 허무한데 굴복하게 되었습니다. 즉 세상 피조물들은 자기 뜻으로 허무한 것에 굴복하게 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주하셨기 때문에 죄인인 인간과 함께 허무한 것에 굴복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며 탄식가운데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환경은 어떠합니까? 여러분 한 사람으로 인해 이렇게 모든 주변이 고통하며 탄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여러분 한 사람으로 인해 기쁨과 감사가 넘치며 천국이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15분 뒤에 이 세상을 떠난다면, 고통하며 탄식하고 있는 모든 주변이 "만세!"하고 기뻐하겠습니까? 아니면, 여러분 때문에 삶의 희망을 갖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왔던 사람들이 가슴을 치며 슬퍼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추수(심판)의 계절을 보내면서, 우리의 인생을 성경 말씀에 비추어 철저히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내가 정말 크리스천인지, 정말로 거듭난 크리스천인지를 그 동안 내가 해왔던 말과 생각과 행동을 통해 체크해봅시다. 그 말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했는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말과 행동을 했는가를 생각해 보면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며 원망을 들을만한 언행을 멀리하며 열심을 다해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7-11)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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