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성경연구원 안정훈 목사의 성경강해

계1장은 요한계시록 22장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장이다. 성경 전체가 마찬가지겠지만 요한계시록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기 때문이다.(계1:1,막1:1)

요한계시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특징은 반드시 속히 될 일들이다. 반드시 속히 될 일들이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일으키실 일들이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는 말씀은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역사의 끝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역사 속에서 각 개인과 교회들에게 계속 적용되어지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합당하다.

속히 될 일이란 일곱 인 재앙과 일곱 나팔 재앙과 일곱 대접 재앙을 통한 하나님의 자기 백성 구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심판에 대한 계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구약에서 봉인되어 있었던 말씀의 비밀이(단12:4)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승리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역사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계5:1-5) 하나님은 사도 요한을 통하여 그가 반드시 속히 일으키실 구원과 심판에 대하여 다 보여주셨는데(계1:2,19) 이를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이미 하늘나라에서 결정되어진 일들로서, 그 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진행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계시록의 말씀을 통해서 알아내는 것이다.(계1:3)

요한계시록이 당시에는 일곱 교회에 주어진 편지였지만(계1:4,11) 지금에 와서는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당시 상황에만 국한된 교회만이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의 하나님의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증거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알파와 오메가 또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계1:4,8)

계1장에서 먼저 살펴야 할 부분은 성령에 감동한 사도 요한을 통하여 일곱 교회와 오늘 우리에게까지 보여주시는 천상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계1:12-16) 천상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왜 중요한가 하면 계1장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일곱 교회에 그대로 다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계2:1,8,12,18,계3:1,7,14)

주님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 계1:12절에서 보면 “사도 요한이 자기에게 말하는 자의 음성을 들으려고 몸을 돌이킬 때 일곱 금 촛대(구약성전)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예수-단7:13)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으며 그의 눈을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으며 그 오른손에는 일곱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았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오른 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촛대 사이에 서 계신다는 것이다. 일곱별이 일곱 교회의 사자이고 일곱 촛대가 일곱 교회라는 계1:20절의 말씀을 비추어 볼 때, 예수 그리스도는 천상에 계신 것이 아니라 땅에 있는 일곱 교회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성령에 감동한 사도 요한이 일곱 교회에 나타나시는 천상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뵈옵고 엎드려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했다.(계1:17)

왜 사도요한이 죽은 자 같이 되었는가? 과거에 요한과 함께 했던 초림의 예수와는 전혀 다른 재림의 예수였기 때문이다. 재림의 예수는 초림의 예수와는 달리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이다.(계1:7)

그런데 사도요한이 보았던 이 재림의 예수께서 지금 천상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일곱 교회에 나타나셨듯이, 오늘 우리 안에 또는 우리 교회 안에 그대로 나타나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저와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의 신앙 자세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심판과 구원을 베푸시는 영광의 주 예수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의 말씀에 엎드려 순종하는 것뿐이다.(사6장) 알파와 오메가 되시며 처음과 나중 되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시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리게 하기 위해서이다.(계1:5-6) 이러한 성도의 삶은 역사 속에서 철저하게 예수의 십자가 죽음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갈2:20)

계1장에서 왜 이런 그림을 보여주는가 하면 예수 믿는 성도의 위치와 신분과 나라가 어디인가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인간의 몸을 입고 땅위에 성육신한 초림의 예수는 말할 수 없이 고난 받는 초라한 모습이지만 천국에서의 예수와 재림의 예수는 그 앞에 누구라도 엎드리지 않으면 안 될 위엄과 권능과 능력과 권세와 부를 갖춘 분으로 나타나신다. 모든 무릎이 그 앞에 꿇을 것이다.(계1:17, 빌2:10-11) 예수를 믿는 우리가 그 분 앞에 무릎을 꿇고 그 분의 말씀이라면 깜빡 넘어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도 요한처럼 그분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분의 말씀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이 성령에 이끌리어 보았던 그 환상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보고 있다는 것은 나와 요한과 동일한 주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씀을 믿는 믿음을 통해 그 분을 만났고 본 사람이다. 지금 우리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래서 우리는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그 분의 길 곧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그 길 끝에는 천국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믿음으로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라가는 성도를 승리하신 영광의 주님은 오늘도 일곱 교회처럼 붙잡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고난 받는 주님과 영광의 주님을 동시에 보고 있다.(롬8:18) 이 두 모습의 주님을 보지 못하면 우리는 영광은 보지 못하고 현재의 고난 속에서 불신자들처럼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다. 천국에서의 영광의 주님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 받고 있는 일곱 교회와 나를 붙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영광스러운 분이시다. 이러한 예수의 두 모습을 볼 수 있는 자가 계시록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성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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