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가치가 난무한 교회를 바로 세워야

예장충진교회 집사, 대신대학교 기독교교육 강사 역임

교회란 성경적 가치관을 작은 곳에서 부터 실천해야 하는 장소이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도 세상의 가치관이 그대로 유입되어서 오히려 세상을 따라가거나 세상의 부패한 모습들이 나타나는 일들로 인해서 안타깝다.

별로 무신경하게 많이 행해지는 일들 중에 한 예로 교회의 행사에서 수시로 등수를 매기는 일들이 있다. 어느 구역이 성경읽기나 전도에서 1등이고 어느 전도회가 1등이고 어느 성도가 교회 안의 대회에서 1등상이며 심지어 성탄 축하 공연에서 어느 교육 부서가 1등이라고 발표하기도 한다,

사실 교회 안에서의 등수는 영향력도 없고 하늘나라 상과도 무관하기에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런 작은 일에서부터 교회가 성경적 가치관을 실천하지 못하면서 성도들에게 성경적인 삶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더구나 교회 안에서도 비선 실세가 있다면 이것은 정말 참람한 일이다. 개인의 신앙이나 능력, 은사와 상관없이 담임목사님의 사랑과 신임을 받기에 부서장이 되고 지도자로 세움 받고 그래서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는 일들이 없지 않고 이런 실세들이 교회의 전반에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어떤 교회의 경우 실세들은 교회가 계획하고 벌이는 여러 가지 사업, 건축 등의 일들을 통해 이권을 챙기는 있다고 들었다. 최순실게이트 같은 일들은 거룩한 교회나 노회나 연회에서 전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없지 않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원인은 결국 세상적 가치관으로 앞서가고 싶고 1등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직분에 대한 오해로 말미암아 직분을 교회안의 계급이나 신앙의 수준인 양 가르치고 인식하는 일들이 재고되어야 한다. 심지어 소위 권사, 장로 등 직분자들 중에 오히려 잘못된 신앙인이 많음을 여러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표를 얻어 직분을 얻었다는 자부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교회의 높은 자로 착각하거나 그렇게 인정해주는 어리석은 모습이 교회에서 보여진다.

<2등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는 [마케팅 불변의 법칙]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한마디로 더 좋은 것보다는 맨 처음이 낫고, 마케팅 싸움은 '인식의 싸움'이기 때문에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보다는 더 빠른 제품이 낫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첫 번째 제품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한 사람은 <찰스 린드 버거>라고 기억하는데, 두 번째로 대서양을 횡단한 <버트 힝클리>는 찰스보다 더 빨리 비행했고, 연료도 더 적게 들었지만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2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등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마케팅 법칙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케팅 법칙이 지금 교회 안에 얼마나 깊이 침투해 있는지 모른다. 성도들이 성실하게 인생을 살기보다는 약삭 빠르게 사는 것을 지혜라고 배우며, 성경적인 지혜를 배우기보다는 세속적인 지혜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라! 이런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면 이 사회는 추악하게 병들어서 곳곳에서 썩은 냄새가 날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우글거린다면 이 세상은 마치 숲이 하나도 없는 도시와 같이 될 것이다! 세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1등이 되고, 1등만 기억되는 세상이라는 전제하에 오직 1등을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들 때문에 추악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많은 재물을 가지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가지려고 나쁜 수단을 사용하며 부동산 투기가 보편화되어 있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상대적 손실을 당하면서 살고 있는 현실에서 기독교인들도 구별이 안될 뿐 더러 이권의 기회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착각하는 일마저 있어 왔던 것이다,

우선 교회 안에서는 무슨 대회를 하면서 등수를 매기는 것부터 멈추어야 한다. 심지어 성경 통독 전도 숫자 등을 개인별 구역별로 매겨서 경쟁을 시키기도 하는데 성경을 많이 읽게 하고 전도를 많이 하게 하려는 취지라 할지라도 이런 일도 바람직하지 않다. 신앙인의 삶은 목적뿐 아니라 수단도 성경적이어야 한다,

교회는 등수를 매겨서 사람을 줄 세우는 곳이 아니라 앞선 자가 뒤에 선 자를 끌어주고,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낮은 자를 높여주는 섬김의 법칙이 통하는 곳이어야 한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2등 이하로 살아가기가 힘들고 지치고 피곤한 인생들을 2등 이하가 아름답다고 인정해주는 곳이 교회여야 한다. 서열이 없이 등수 없이 모두다 하나님의 보배로운 성도라고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곳이 교회여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누구나 인정받는 기쁨을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는 일단 쓸데없는 경쟁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직분론을 바르게 가르쳐서 직분이 서열이나 높낮이의 자리가 아님을 가르쳐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까지 등수 매김이 있고, 직분별로 서열이 있고 세속적인 잣대로만 평가되며, 담임목사의 측근과 비 측근으로 나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 교회는 잠언23장19절 말씀처럼 성도들이 정로(正路)로 행하면서 2등을 하거나 등수에 들지 못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 사람이 훨씬 더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정로로 인도할지니라" 잠언23장19절. 자기 인생을 정로로 행하면서 등수에 들지 않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세상에 맑은 공기를 유입시켜주는 숲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우리 교회는 '등수가 없고 있다 해도 모든 등수가 아름답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공평하여야 한다, 비선실세가 전혀 없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렇게 느끼고 행복해 하도록 도와주고 있는가? 참으로 하나님의 교회다운 교회가 이 땅에 더욱 많아지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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