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왔는가?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from everlasting)니라(미 5:2).

성경은, 베들레헴에서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영원하신 통치자가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위해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해마다 12월이 되면 영원하신 통치자의 모습은 전혀 볼 수가 없고, 마리아의 품 속에 안겨서 잠들어 있는 아기 예수의 모습만이 크게 부각되어 우리 곁에 다가온다. 크리스마스가 왜 있어야 하며 또 그날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아리송해진다. 교회마다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이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위해 매우 분주한 모습들을 보게 된다. 마치 크리스마스란 선물을 주고받는 날인 것처럼 생각된다. 왜 그럴까?

'아기 예수'라는 단어는 '산타클로스'라는 뜻

산타클로스를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지에서는 '크리스트 킨들(Christkindl)'로 알려져 있는데, 이 말은 'Christ Child'라는 말이다. 즉 '그리스도 아이'라는 말인데, 이는  '아기 예수'라는 뜻이다. 이 말이 나라마다 'Jesus boy', 'Little Jesus', 'God child' 등의 뜻으로 불려졌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상 예수님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져다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크리스트 킨들(Christkindl), 크리스트 킨트(Christkind) 등으로 쓰이는데, 등에 천사의 날개가 있는 금발의 크리스 크링글(Kris Kringle)을 뜻하는 말이다. 이 크리스 크링글(Kris Kringle)은 아이들에게 몰래 선물을 나누어주는 존재로 산타클로스와는 처음에는 다른 존재였으나 현재는 산타클로스를 의미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즉 '아기 예수'라는 단어가 '산타클로스'를 의미하는 단어로 쓰인다는 말이다.

따라서 '아기 예수'라는 단어가 '산타클로스'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우리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느껴야만 한다. 사실 기독교에서는 아기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사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시는 분이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만 되면 교회마다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 우리는 무언지 모르지만 속고있고 속아온 것이다. 그 속임이 과연 무엇일까?

성탄절이 다가오면, 많은 교회에서 크리스마스에 대한 성극을 준비하고 크리스마스송을 준비한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슴에 금 띠를 띠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그 오른 손에는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는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며,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고, 그의 눈은 불꽃같아서 감히 인간이 살아서 쳐다볼 수 없는 거룩한 모습의 성인 예수님이 아니라 아기 예수를 찬송하며 기념하고 있다. 
 
기만과 바꿔치기의 달인 마귀
 
사람들이 잠든 사이에 마귀가 가라지를 뿌린 것처럼 마귀는 교회 안에 묘한 크리스마스를 들여놓았다. 크리스마스라는 명절을 만들어놓은 것까지는 봐줄만 하다. 그런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성경에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것만 쏙 빼어서 아무 힘이 없는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형태의 절기를 만들어놓았다. 
 
마귀는,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신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이 아니라,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인간의 보호가 필요한 아기 예수로 바꿔치기 했고, 또한 '아기 예수'라는 말을 산타클로스라는 뜻으로 사용하도록 해 놓은 것이다. 결국 교회에서 '아기 예수'를 기념하는 행위는 산타클로스를 기념하고 있는 것이란 뜻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라고 하지 않으셨고, 오직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라고 하신 것이 아닐까?
 
Old Nick=the Devil, Old St. Nick= St. the Devil?
 
영어로 'Old Nick'이란 말은 마귀(the Devil)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산타클로스를 우리는 'Old St. Nick'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마귀(Old Nick)에게 'St.'라는 말을 붙였다고 해서 '성스러운 마귀(St. the Devil)'라는 말이 성립될까? 그런데도 세상에서는 마귀에게 'St.'라는 말을 붙여놓고 그것이 예수님을 대신하는 선한 존재처럼 크리스마스가 올 때마다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단처럼...(고후 11:14). 그 동안 우리는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 그럴듯하게 잘도 속아왔다.
 
Santa -> Satan
오래 전에 우리 아이들에게 산타가 왜 적그리스도인지를 설명해주었다. 그랬더니 우리 아들이 "엄마! 산타의 스펠링의 순서를 바꾸면 사탄이 되네요?"라며 종이에 적어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니까 산타(Santa)라는 영어 단어에서 n을 뒤로 보내면 사탄(Satan)이라는 단어가 만들어 지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면서 그것을 지적한 아들이 대견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기독교에 있어서 우연이란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공인 크리스마스를 만들어놓고, 그날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를 그럴듯하게 바꾸어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산타클로스야말로 적그리스도이며 사탄인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뜻이 무엇인가? 적(anti-)이라는 말은 두 가지의 뜻이 있는데, 첫째로 '~에 반대(대적)하여'(against)라는 뜻과 둘째로 '~을 대신하여'(instead of)라는 뜻이 있다. 그런데 이 두가지 의미를 모두 갖추어야만 한다. 따라서 적그리스도는 이교도들이나 무신론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모방하여(예수님처럼=빛처럼) 예수님 자리에 대신 앉아있지만, 그러나 그의 행위의 결과는 예수님을 대적하여 사람들로하여금 구원의 자리에서 떨어지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산타클로스가 적그리스도인 이유
 
산타클로스가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앉아서 예수님을 대적하고 있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1) 전지(全知, Omni-science), 전능(全能, Omni-potence)
캐롤 중에 "울면 안돼. 올면 안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 주신대요"라는 노래가 있다. 이것은 산타클로스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의 행실을 모두 보고 알기 때문에(Omniscience) 선물을 준다는 말이며 또한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하룻밤에 선물을 나누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Omnipotence)는 말이다. 즉 하나님만이 '전지전능'하신데, 산타 역시 전지전능하다는 말이다.

(2) 무소부재(無所不在) 또는 편재(遍在, Omni-presence)
산타는 하루밤에 세상에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느 곳에나 계시는' 즉 하나님의 '편재성'을 말하는 것이다.

(3) 영원성(永遠性, eternity)과 불변성(不變性, unchangeableness)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올 때마다 산타는 변함없이 아이들을 찾아온다. 이는 영원하시고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영원성과 불변성을 말하는 것이다.

(4) 그의 오는 절기는 알지만, 정확한 때를 알 수 없다
예수님의 재림은 예수님도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께서 마지막 추수 때인 장막절 시기가 있는 나팔절에 나팔 소리가 울려퍼지며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사실은 알지만, 어느 나팔절과 장막절에 그리고 어느 시간에 오셔서 구원과 심판을 하실지는 전혀 모른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지만 그 때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것처럼,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가 온다는 것을 알지만, 아무도 산타클로스가 오는 시간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깨어있으라고 명령하셨듯이, 아이들도 깨어서 산타클로스를 보려고 기다리는 것이다.

(5) 북쪽에 거함
성경에서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을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산"(시 48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성막에서 번제물을 드릴 때에도 북쪽 하나님 앞에서 행했다. "그가 단 북편에서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레 1:11). 
반면에 루시퍼가 반역할 때에도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사 14:13-14)라며 북쪽을 언급하는 것처럼 산타클로스도 북쪽에 살며 썰매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온다고 한다.

(6) 심판자(the Judge)
산타는 아이들의 잘잘못을 따져서 선물을 준다. 즉 이세상의 재판관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신데, 산타가 그 일을 하고있는 것이다.

(7) 하얀 머리털
요한계시록 1장14절을 보면, 예수님의 머리털은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산타의 머리털 역시 흰 양털같고 눈처럼 하얗다.

(8) 각양 좋은 선물을 나누어준다
야고보서 1장17절을 보면,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선물을 값없이 나누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그 일을 산타가 하고 있다.

(9) 어른들이 자기 아이를 데리고 온다
누가복음 18장15절에는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즉 어른들이 자기 아이를 예수님 앞으로 데려왔듯이, 오늘날에는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을 산타클로스 앞으로 데려오고 있다. 무섭다고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설득시켜서 산타클로스에게 데리고 가서 산타클로스의 품에 앉히고, 산타클로스를 믿게 만든다. 

(10) 믿으면 선물을 받는다
예수를 믿으면 영생이라는 구원을 선물받듯이, 산타클로스가 있다는 것을 믿으면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을 받는다. 교회에 다니는 부모조차 세상과 함께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끊임없이 가르치며 믿게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산타로부터 자기가 원하는 선물을 받기 위해 착한 일을 행한다. 결국 교회에서도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의 복장을 한 산타가 나타나서 부모가 준비한 선물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린 자녀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참된 선물인 영생이 아닌, 일시적인 거짓 선물과 거짓 산타를 믿게 한 결과가 무엇인가? 아이들은 조금만 자라면 부모가 선물을 사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선물을 받기 위해 거짓인 줄 알면서 산타클로스를 믿는 척 한다. 이렇게 자라는 아이들에게 믿음이란 별 것이 아니다. 신앙생활 역시 산타에게 선물을 받기 위해 했던 것처럼 교회에 나가서 믿는 척(?) 한다. 따라서 영생이나 구원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다. 그저 삶 속에서 복받고 잘 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기도의 대부분은 무엇을 구하는 기도이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겠다거나 자기의 삶을 바치겠다는 기도는 하지 않는다.

불행을 초래하는 선물교환
 
크리스마스가 되면 왜 우리는 선물을 주고받아야만 할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교회에서도 그날만 되면 선물교환을 한다면서 성가대원들에게,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각 선교회별로 얼마짜리 선물을 사갖고 오라고 광고를 한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은 돈이 없기 때문에 다른 핑계를 대고 그 모임에 빠진다. 그런데 하나님의 지혜가 없는 이들은 그들이 왜 빠지는지를 모른채 빠진다고 오히려 뒤에서 욕을 한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에게 있어서 파티에도 참석하지 못할 뿐만아니라, 욕까지 얻어먹는 날이 크리스마스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끼리 선물교환을 하며 즐기라고 이땅에 오셨는가? 예수님은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자들을 위해 이땅에 오셨다. 그래서 천사들이 가장 먼저 그 기쁜 소식을 전해준 대상이 왕족이나 귀족들이 아닌 천대받는 목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이들이 예수께서 오신 목적과 반대의 길을 걸어가면서 예수께서 오신 날을 기념한다고 하고 있다. 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현재 성탄절이 되면 교회 안에서 가난한 이들이 더욱 소외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이들은 선물교환을 해야한다며 부모에게 돈을 달라고 조르고, 돈이 없는 부모는 그러한 아이들에게 돈이 어디있느냐며 화를 내므로 집에서 뛰쳐나가서 탈선하게 하는 계절이 크리스마스이다.

왜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고받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남들이 다 하니까? 전통이니까? 그렇다면 선물교환을 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받은 적이 몇 번이나 되는가? 오히려 불필요한 것을 받아서 처리하지 못한 적이 더 많지 않았는가? 12월만 되면 선물을 사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지는 않았는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쁨으로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의무감으로 없는 돈을 쪼개어 억지로 선물을 고르지는 않았는가? 성탄절에 행해지는 선물교환은 교회안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풍습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배신과 고난과 핍박과 죽임을 당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께서 언제 예수님이 오신 날을 기념하라고 하신 적이 있는가?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그런 말씀은 없다. 그래서인지 예수께서 언제 오셨는지에 대한 기록조차 몇년간의 오차가 있다고 할 정도로 예수께서는 이땅에 오신 날을 밝히 알려주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라고 하셨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맞을 때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예수께서는 잘사는 사람들과 생일파티를 즐기는 왕으로 이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소외당하고 가난한 소자들에게 천국의 소식을 전해주고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러 오셨다. 예수님은 사랑을 받거나 축하를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배신을 당하고 고난과 핍박을 당하며 죽기위해 오셨다.
 
빌라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예수)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라고 물었을 때,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라며 종려가지를 흔들며 환영했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바라바를 선택했다.
 
성경에는 성탄절이란 절기가 없지만 현재 교회는 성탄절을 지키고 있다. 전통에 의해 교회에서 성탄절을 지키는 이유는,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그 은혜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이 이땅에 오신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첫사랑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예수께서 이세상에 오신 날이 지금의 크리스마스가 있는 겨울은 아니지만, 그 날을 지키고 있다. 
 
양의 탈을 쓰고 교회에 들어온 늑대를 구별하라
 
비록 크리스마스는 세상 풍속의 하나가 되었으나 교회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진실된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지킬 것이라면, 교회만큼은 세상과 정말로 구별된 다른 성탄절을 맞이하며 보내야 한다. 무엇보다 교회 안에서 산타클로스의 모든 것을 추방해야 한다. 크리스마스 행사를 할 때마다 교회 안에서 어른 아이 할것없이 모두가 산타의 모자를 즐겨 쓴다. 카드를 보면 루돌프 사슴과 산타로 도배를 하고 있다. 반면에 어두운 그늘에 앉아있는 이들을 구원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 마음은 정말 찾기 힘들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Abstain from all appearance of evil.)"(살전 5:22) 
 
이번 크리스마스에 여러분과 여러분이 속해있는 가정과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산타클로스 중 누구를 선택할 예정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선택은, 여러분이 진리의 편인지 아니면 거짓을 사랑하는지를 밝히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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