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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칼럼] 성탄절 단상 아담과 하와의 변명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미술연구소장
1. 베른바르트의 문, 세부, 아담과 하와의 변명, 1015년, 대성당, 힐데스하임

1. 성탄은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 이야기의 절정이다.

독일 힐데스하임(Hildesheim) 대성당의 청동문에 새겨진 부조 중 ‘아담과 하와의 변명’은 성경에 기록된 인간을 찾아오시는 수많은 하나님 이야기의 원형을 담고 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창 3:9)

만남과 대화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시종일관 변명으로 일관함으로 결국 낙원에서 추방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작품에 나타나 있다.

1000년 전 오토왕조 시대의 청동주물로 제작된 이 부조상은 성탄을 기다리는 대강절기에 묵은 잘못을 회개하고 우리의 영혼이 깨어나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2 베른바르트의 문 낙원에서의 추방

2. 힐데스하임 성 미카엘교회(St. Michaelis)는 성·속의 통합을 추구한 신성로마제국의 이상을 동서 양단에 내진이 있는 독일 특유의 이중내진(Doppelchor) 평면으로 표현한 오토왕조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이러한 이중내진은 베른바르트 주교(Bischof Bernward)의 신학적 구상에 의한 것 이었다. 그는 성 미카엘교회 인근의 대성당(Dom) 내에 청동문 부조와 청동주물 기둥을 신자들의 신앙교육을 목적으로 세운다.

3. 베른바르트의 문, 세부, 하와의 아담에게로의 인도, 1015년, 대성당, 힐데스하임

베른바르트의 문(Bernwards Tür, 1015)으로 불리는 청동문에는 좌우 양쪽에 각각 8개씩 모두 16개의 패널(Panel)에 인간창조와 타락, 낙원추방, 카인과 아벨(창 2-4장),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생애 장면을 담은 부조가 신구약 성경의 유형론적 해석(Typological Interpretation) 원리에 근거해 새겨져 있다.

예를 들어 왼쪽 세 번째 패널의 인간의 타락은 오른쪽 열네 번째(아래로부터 번호매김) 패널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에 대응함으로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대속됨을 나타낸다. 좌우 대응 만이 아니라 왼쪽 상단 첫 번째 패널의 인간 창조는 오른쪽 아래 아홉 번째 패널의 수태고지 장면으로 대각선 방향으로도 대응한다.

각각의 패널은 개별적으로 만들어서 붙인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문자체에 고부조를 새겨 넣는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두 쪽 여닫이로 된 청동문의 크기는 세로 4,72m, 가로 1,2m 이다. 특별히 왼쪽 문 네 번째 패널에는 원죄를 지적하는 하나님의 손길에 대해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하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책임을 회피하는 아담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하와 역시 뱀을 가리키며 변명을 하고 있다. 결국 그 아래 다섯 번째 패널에서 아담과 하와의 변명하는 ‘손가락’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쫓는 그룹의 ‘손가락’으로 귀결된다. 추방될 때 뒤돌아 보는 하와의 시선과 낙원의 '닫힌 문'을 붙잡는 아담의 손은 미련과 아쉬움, 회복에 대한 갈망을 나타낸다.

4. 베른바르트의 문, 1015년, 청동, 세로 4,72m, 가로 1,2m, 대성당, 독일 힐데스하임

베른바르트의 문에 새겨진 이 청동부조상은 오토왕조 미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등장인물의 모습이 미적으로 비례에 어긋난다 할지라도 인간 내면의 죄와 책임을 회피하는 죄인의 모습을 묘사한 불후의 명작이다.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을 찾으실 때 우리 선조들은 만남과 대화를 회피하고 참회가 아닌 변명으로 일관한다.

5. 베른바르트의 문, 도상학적 해설(Iconograpy)

두 번째 패널 아담과 하와의 만남에서의 생동감 있는 몸짓, 표정과 달리 네 번째 패널 변명에서는 오그라들듯 몸을 움츠리고 있다.

화면에 등장하는 식물도 인물의 감정과 분위기를 반영해 둘째 패널과 넷째 패널의 식물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셋째 패널 타락에서 식물에 달린 일곱 개의 열매는 교만에서 비롯된 일곱 가지 죄를 의미한다.

인간의 죄에 대한 주제가 분명히 표현되고 있어서 인물과 식물의 모습이 자연적으로 묘사되지 않았음에도 메시지의 분명한 전달이 이루어지고 있다.

6. 베른바르트의 기념주(Bernwards Säule, 1020년 경), 대성당, 독일 힐데스하임

독일 로마네스크 조각의 특징인 표현주의적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 책이 하는 역할을 그림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 해 준다’는 6세기 말 그레고리 대교황(Gregor der Große)의 가르침(Pictura est laicorum scriptura)을 조각 분야에서 완벽하게 구현한 예이다.

베른바르트 주교는 교회의 문을 신학적인 메시지를 담은 부조로 장식함으로 이 문이 단순히 내외 공간을 연결하는 물리적인 문이 아니라, 신자들이 교회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죄와 불신앙, 이기심과 책임회피를 회개케 함으로 구원의 문, 좁은 문, 천국의 문이 되게 하였다.

7. 힐데스하임 대성당(Dom), 852-872년/960년 경/1000년 경, 독일

대성당 내의 베른바르트의 기념주(Bernwards Säule)는 고대 로마제국의 트라야누스황제의 전승 기념주(Trajanssäule)를 본떠서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록한 기념주이다. 이제 황제의 공적을 칭송하는 대신 그리스도의 구원의 이야기가 찬양된다.

3. 해설 : 카롤루스 대제(Carolus Magnus, 742-814)가 구상하였던 기독교제국의 이상은 오토대제(Otto I. der Große, 912-973)가 주후 962년 신성로마제국(Heiliges Römisches Reich Deutscher Nation, 962-1806)을 수립하고 서구 기독교세계의 새로운 구원자로 황제에 즉위함으로 지속되었다.

8. 힐데스하임 대성당(Dom), 내부

10세기 중엽부터 11세기 초 오토왕조(Ottonian dynasty, 919-1024)는 카롤링거왕조 붕괴 후의 정치적 혼란기를 극복하고 서유럽의 문화를 주도하였는데 이 시기에 발생한 미술양식을 오토왕조의 미술(Ottonian Art)이라고 부른다.

오토왕조의 미술은 초기에는 카롤링거 양식의 미술 전통을 부활시키는데 주력하였지만 동시대의 비잔틴 양식을 수용함으로 새롭고 독창적인 양식을 형성한다.

9. 성 미카엘교회(St. Michaelis), 1110-1133년, 독일 힐데스하임

이 시기의 미술은 본격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이 형성하기 전 로마네스크를 예비하였다는 의미에서 ‘전기 로마네스크양식'(Pre-Romanesque Style/VorromanischerStil)으로 분류한다.

힐데스하임(Hildesheim)의 베른바르트주교(Bischof Bernward)는 세 살의 나이에 재위에 오른 오토 3세의 스승이자 재상으로서 성직자 관료국가인 오토왕조 내 권력의 핵심이었다.

그가 행한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제국의 이념을 표현하는 미술행위는 고전 그리스·로마의 정신과 연결되는 것으로 서로마제국 멸망(476년) 이후 진정한 의미에서 야만의 시대가 종식되었음을 의미한다.

10. 성 미카엘교회(St. Michaelis) 내부, 종교개혁이후 개신교 예배당으로 사용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 미카엘교회(St. Michaelis)와 대성당(Dom)의 청동문 부조, 청동주물 기념주는 당대의 시대정신을 이끈 교회의 신학을 기독교미술을 통해 표현한 그의 작업의 산물이다.

오토왕조시대에 제작된 기념비적인 미술작품들은 기독교가 유럽문화의 토대가 된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임재훈 목사- 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미술연구소장

임재훈 목사  webmaster@bonh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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