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은 예수의 성육신(成肉身, the incarnation)하신 날이며, 초막절이 진짜 성탄절

오늘날 크리스마스로 지키는 12월25일이 예수님께서 오신 날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리고 그날이 태양신을 섬기던 날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그날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많은 이들이 주장을 한다. 그래서 필자는 성경을 보며 연구를 해보았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태어나신 때를 정확히 기록하지 않지만, 대강 추정해 볼 수 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탄생은 6개월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언제 태어났는지를 조사해보면 쉽게 문제가 해결된다.

"이 후에 그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고...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눅 1:24, 26, 27)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이었다. 역대상 24장에 보면 유대의 제사장은 약 2만명 정도가 되고, 아론의 후손들을 24반열로 나누어서 순번에 따라 일주일씩(안식일에서 안식일까지) 성전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하도록 했다. 모든 반열이 모두 함께 봉사하는 기간이 1년에 4주가 있는데(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그것을 제외하면 각 반열이 1년에 두번 성전 직무를 수행했다(24반열+2번+4번=52주).


사가랴가 속해있던 아비야 반열은 8번째 차례로, 성경에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첫째 달(니산월) 초부터 계산하면 제10주째 차례가 돌아온다. 그 사이에 유월절과 칠칠절(오순절)에 모든 반열이 성전에서 직무했다. 따라서 이때가 셋째 달(시반월) 둘째 주가 된다. 그 시기에 성전 직무를 마치고 사가랴가 집에 돌아온 후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임신을 하게 된다. 따라서 세례요한은 셋째 달(시반월) 셋째 주 경에 잉태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6개월 뒤인 아홉째 달(키슬레브 월- 태양력으로 12월)말에 잉태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정상 임신기간인 280일이 지나면, 유대력으로 일곱째 달(티쉬리 월) 중순이 된다. 그 달 15일이 바로 초막절(장막절, 수장절)이 시작되는 날이다. 이 날에 예수께서 탄생하셨을 것이라고 우리는 가정할 수 있다(단 이것은 사가랴가 성전 직무를 봄에 수행한 이후라는 전제하에 추측할 수 있다).

만약 사가랴의 첫번째가 아닌 두번째 성전직무때 이루어졌다면, 약 34-36주째 쯤에 해당되며, 그럴 경우에 아홉째 달(키슬레브 월) 첫째나 둘째 주 경에 요한이 잉태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셋째 달(시반 월)에 잉태된 것이고 그럴 경우 12번째 달(아달월) 중순이나 말경에 탄생하셨을 것이다.  

유대인의 아달월은 태양력의 2-3월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양떼를 치는 시기는 4월에서 11월까지이다. 12월부터 3월까지는 비가 오는 '우기'이며 추워서 바깥에서 양을 치지 않는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태어날 당시에 목자들이 밖에서 양을 치고 있었으므로 추운 2-3월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카톨릭에서는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잉태한 날을 3월25일로 정하고 기념하는데(성모수태고지일), 이것은 12월 25일과 정확히 9개월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기를 지키기 위해 정해주신 첫째 달(니산 월)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력으로 봄 즉 3-4월이 된다. 따라서 일곱 번째 달은 태양력의 9-10월경이 된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날, 베들레헴 들판에 아직 목자들이 양을 치고 있었던 것도 예수님이 유대 지방의 우기인 겨울에 태어나시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따라서 12월25일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날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반면에  앞에서 언급한 계산이 맞는다면,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던 때가 바로 아홉 번째 달인 키슬레브 월(태양력 12월)말이다. 이때가 바로 유다 마카비가 시리아 팔레스틴 왕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헬라인들이 우상과 돼지와 돼지피로 더럽혔던 성전을 다시 정결케하여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수전절인 하누카(חנוכה:봉헌 Hanukkah)이다. 이 날을 "빛의 절기"라고도 부른다.


"빛의 절기"인 하누카는 키슬레브 월 25일부터 8일간 축제를 갖는다. 이를 태양력으로 하면 12월 하순으로 크리스마스와 거의 비슷한 시기이다. 특히 올 2016년에는 하누카가 12월25일에 시작된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지키고 있는 성탄절은 예수께서 탄생하신 날이 아니라 예수께서 잉태되신 날을 축하하는 셈이다.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것이 바로 이세상에 오신 날이다. 한국 사람들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도 나이로 계수해서 태어나자마자 1살로 계산하는 것처럼, 예수께서 탄생하신 날이 아닌, 예수께서 이 세상에 성령으로 마리아의 태 안에 첫 발을 디디신 날이 우리가 지키는 성탄절이다(앞의 계산이 맞는다면...).
하누카는 빛의 축제일인데, 이 세상에 참빛으로 오신 예수께서 빛의 축제의 날에 잉태되셨다는 것이 우연일까?

예수께서 하누카에 잉태되셨다면, 이세상에 태어나신 날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초막절(수장절)이다. 그렇다면 참 빛이신 예수님은 ‘빛의 축제날’인 하누카에 잉태되어 ‘마지막 심판날’을 의미하는 ‘초막절’에 태어나심으로 애굽을 상징하는 마귀로부터 구원하는 구원주로, 그리고 마지막 추수때 심판하실 심판 주로 이세상에 오셨음을 확실히 보여주신 것이다(초막절은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구원하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돌보심을 감사하는 절기이며, 또한 수장절이라고도 해서 곡식을 추수하여 저장하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이다).


초막절(장막절)의 특별한 점은 8일간을 초막절로 지키면서 첫날과 마지막 8일에 거룩한 성회를 열고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안식일처럼 지킨다는 것이다. 이때는 이스라엘의 기후가 바뀌는 때였다. 이른 비가 와서 씨를 뿌리고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만약 몇 주간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다음 해에 심각한 가뭄에 들 수 있다. 그래서 장막절 7일째 날에는 “비를 구하는 기도"를 하면서 물을 붓는 행사를 하는데, 이 기도는 1년 중 최고의 행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알맞게 주셔야 그들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장막절의 6일간은 은나팔을 3번만 불지만, 마지막날은 3번씩 7번을 분다. 또 첫 6일간은 제사장들이 제단을 한 번 돌지만, 마지막날은 제단 주위를 일곱번 돈다. 이들은 제단을 돌면서 시편 118편25절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를 부른다. 그러면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든다. 그래서 이 날을 호산나 라바(Hosanah Rabah) 또는 그레이트 호산나(Great Hosanah)라고 부른다. 시편 118편은 메시야적 시편으로 메시야를 강조하는 축제때 쓰여진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에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든 것을 볼 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가 될 것이다(마 21:8-9, 눅 19:38, 요 12:13, 계 7:9-10).

그런데 요한복음 7장 37-38절을 보면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라고 하셨다. 이것은 초막절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비를 구하는 기도”를 하며 물을 붓는 그들에게 예수께서 "내가 너희들이 기도하며 그렇게 갈망하는 메시야이며, 너희를 구원할 생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복음 7장과 8장을 보면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기 위해 장막절 마지막 날에 감람산에 오신 장면이 나온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할 때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며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라고 말씀하셨고, 그 다음날 또 다시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 9:5)라고 말씀하신 뒤 소경의 눈을 고쳐서 빛을 보게 해주셨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이유는 예수께서 참빛이심을 증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나서 '수전절' 즉 '빛의 축제일'인 하누카에 참빛이신 예수께서 그 절기를 지키러 성전에 오셨던 것이다(요 10:22).

그러므로 우리가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은, 키슬레브 월(12월) 25일인 '빛의 축제일'이 예수께서 이땅에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신 날이며, 마지막 심판날을 상징하는 '장막절'에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심으로(초림) 예수님께서 재림때 심판주로 이땅에 오실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 아닐까한다.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을 하러 갔을 때, 방이 없었던 이유를 우리는 또한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해마다 3번(유월절, 칠칠절, 장막절)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예물을 갖고 와서 하나님을 만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세 절기에는 수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에 모여든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유월절에 약 2백만명이 모였다고 했다. 이러한 것을 감안할 때에 정치가라면 인구조사를 할 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기를 선택할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태어난 때가 유월절과 오순절이 아니면 장막절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방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탄절의 날짜에 얽매여서 지켜야하느니, 말아야 하느니 하면서 옥신각신할 시간에 예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을 기억하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다시오실 것을 기념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세상과 구별됨이 없이 참빛이 오셨으나 알아보지 못하고 흥청망청 파티속에서 성탄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 빛의 자녀들만 알아보도록 조용히 오신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이 땅에 죽으러 오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예배를 경건하게 행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님을 대신하여 그 자리에 앉아있는 산타클로스를 교회에서 완전히 추방해야 할 것이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고를 때 산타클로스나 루돌프 사슴이 그려진 카드를 결코 사지 말도록 하며, 크리스마스 행사를 할 때에 산타클로스의 모자를 쓰지 말아야 할 것이며, 크리스마스 노래 중에서 산타가 들어간 캐롤은 부르지 못하도록 하며, 카톡으로 산타가 들어간 동영상들을 보내지 말아야 하며 또한 우리 자녀들에게 산타클로스는 거짓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필자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께 선물을 드리는 날이지 우리가 선물을 받는 날이 아니라고 가르쳐왔기 때문에 우리집에서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지 않는다. 그래서 교인들은,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 아이들이 추억거리도 없이 엄마가 너무 현실적이라서 불쌍하다며 선물을 사주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어른들의 거짓말에 속아서 크리스마스만 되면 예수님보다 산타클로스와 그가 가져다주는 선물을 바라게 만드는 부모들의 헛된 가르침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더욱 불쌍하기만 하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1-5)

지금 선택하라. 산타클로스와 그의 일시적인 가짜 선물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와 영생의 선물인가? 진리에서 돌이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그들의 허탄한 이야기를 좇을 것인가, 범사에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오래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면할 것인가? 

어린 자녀들에게 어릴적부터 적그리스도인 산타클로스와 그의 가짜 선물을 소망하도록 거짓을 심어준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종노릇을 한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이땅에 성육신하신 날, 참빛으로 빛의 절기인 하누카에 오신 계절에 마귀는 힘없는 어린 아기 예수가 아닌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기쁨의 선물을 나누어주는 성인 산타클로스를 등장시켜서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세상의 모든 이들을 속이고 있다. 기만의 선수이며 거짓의 아비인 사단의 꼭두각시 노릇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이들이 언제까지 하며 예수님을 분노케 할 것인가?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for Satan himself is transformed into an angel of light"(고후 11:14)

Santa --> Satan,  Satan --> Santa
산타의 n을 제일 뒤로 보내면, 사탄이 된다. 바꾸어 말하면, 사탄의 n을 가운데로 보내면 산타가 된다. 스펠링을 자리만 바꾸어도 그럴듯한 단어가 만들어진다. 이처럼 거짓의 아비 마귀가 가장(transformation)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그래서 마귀는 오늘날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가장(transformation)하는 것을 만화 영화와 장난감을 통해 주입시키고 있다. 그것을 지각이 없는 어른들은 아이들이 원하는대로 가장(transformation)하는 로보트를 만들어 갖고 놀게 한다는 사실을 바라보며 경악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9-12)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빛의 절기인 하누카에 참빛으로 이세상에 성육신(the incarnation)하셨으나, 마귀는 음모를 꾸며서 예수님의 자리에 산타클로스를, 빌라도의 법정에서는 메시야 대신에 살인자 바라바를 소망하게 만들었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나 창조주께서 이땅에 오셨어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분을 핍박하고 죽였다. 왜? 그분을 알아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없어서 마귀의 기만과 가장에 속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소망이 있음은, 그분의 이름을 믿고 그분을 창조주와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는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참빛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나타난 산타클로스를 선택할 것인가? 혹시 성탄절에 교회에서 산타클로스를 등장시킬 계획을 갖고있던 교회가 있다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이때에 그 동안은 몰라서 그랬다는 것을 교인들에게 알려주고 이번 성탄절부터 악한 것이라면 어떠한 형태이건 모두 교회 밖으로 내던졌던 느헤미야처럼 개혁을 해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안에서 제사를 드리겠다는 명목으로 사고파는 모든 행상인들과 동물들을 내어쫓으시며 돈궤를 엎으시며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은 오늘날 성전인 주께서 거하시는 크리스천의 내면에 그리스도의 영이 아닌 다른 것들이 조금이라도 들어와서 탐욕을 부리는 것을 뒤집어 엎으시고 채찍으로 내쫓으시며 우리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Abstain from all appearance of evil." (살전 5:22)

"예루살렘에 이르러서야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방을 갖춘 악한 일을 안지라.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명하여 그 방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의 전의 기명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 놓았느니라"(느 13:7-9)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마 21:13)

예수께서는 아무리 예배를 드리기 위한 좋은 목적을 갖고 하는 것일지라도 교회 안에서 사고파는 모든 행위를 금하신다. 오늘날 선교라는 명목으로 교회안에 들어와있는 바자회를 주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실까? 또 교회안에 카페를 만들어서 영업하는 모습을 보시며 채찍을 만들지는 않으실까? 주께서는 교회가 세상과 같은 모습을 "강도의 굴혈"이라고 말씀하신다. 지금 우리 교회가 세상과 같은 모습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모습이 사라지고 교회의 문턱을 낮추어 전도한다는 구실로 세상의 온갖 더럽고 악한 것들이 들어와있는 것을 보며, 예수께서는 전도하느라 수고한다고 하지 않으신다. 오죽하면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가장 먼저 성전 정화를 하셨을까?

이제 거룩하신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계절에 우리 자신과 가정과 교회 안에서 추방해야할 산타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참빛을 몰라보고 엉뚱한 것을 따라갔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묵상해보자. 우리 구주 예수께서 거룩하게 성육신하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처럼 떠들썩하게 보내지말고, 조용히 그리고 거룩하게 참빛을 발하는 계절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기독교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으면서, 성탄절을 추운 겨울이 아닌 모든 오곡백과가 무르익은 아름다운 추수의 계절에 오신 예수님의 뜻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개혁이라는 reformation의 뜻대로 성경으로 돌아가서 12월25일 하누카 때에는 예수께서도 수전절을 지키신 것처럼 우리도 주께서 성육신하신 날로 빛의 절기이며 성전 봉헌절인 수전절을 지키고, 성탄절을 목자들이 들에서 양을 칠 수 있는 따뜻한 계절이며 마지막 추수때인 나팔절과 속죄일과 초막절이 있는 양력 10월(티쉬리 월)로 옮겨보는 것이 어떨지 고민해보기를 소망해본다. 

점점 재림 때가 가까이 오고 있는 이 때에 우리는 주님께서 초림하신 초막절에 재림하실 것을 알기에, 그러나 그 해는 알 수 없기에 해마다 초막절에 주께서 인간의 몸으로 탄생하신 성탄절로 지킨다면, 대강절이 9월말부터 10월로 옮겨질 것이며, 진정으로 그 시기에 있는 대속죄일(욤키퍼)에 선택된 모든 이들이 회개를 하며 재림주로 오실 주님을 기대하다가 정말로 예수님의 재림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예루살렘에 수전절(the feast of the dedication, ἐγκαίνια)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요 10:22-2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2-3)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살전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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