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익 목사 / 벧샬롬교회 담임목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을 졸업하고 GP선교회 한국대표, 인도네시아 주재 선교사, 죠이선교교회 (미국) 담임목사를 역임했다. 생명의말씀사 간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했다>의 저자.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옛 주인인 죄와 불의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과 의의 종이 되었는지를 설명했다(롬6장).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더 죄를 지어도 상관 없을 뿐 아니라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치니까, 도리어 죄를 짓는 것이 더 낫겠다는 억지 주장을 하였다. 이에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믿음의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하나님과 의의 종이 된그리스도인에게 율법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다루는 것이 로마서 7장이다. 

먼저 바울 사도는 율법과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부부관계에 비추어 설명한다(1~6절). 부부로 사는 동안에 만일 다른 사람을 사랑하여 합하는 것은 간음이다. 하지만 부부 중 한 편이 죽었다면 부부의 관계와 의무도 종결되고 자유롭게 된다. 모든 인간은 부부관계처럼 율법에 매여 사는 존재였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신자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에율법은 더 이상 신자에게 아무 권한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율법에 대해서 죽은 신자는 비로소 율법에서 벗어나 자유를얻고 그리스도께 시집가게 된다.즉 율법과의 결혼관계를 청산하지 않고는 그리스도께 시집갈 수 없으며신자의 열매(자녀)는 이렇게 그리스도와의 정상적인 결혼관계를 통해서만 맺어질 수 있는 것이다. 누구도 율법과 그리스도를 동시에 취할 수 없다.

그러면 율법이 문제이고 죄인가? 그럴 수 없다(7절). 문제는 율법이 아니라 우리 육신에 있는 죄다(7~13절). 언젠가 바울은 율법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게 된 순간이 있었는데 그 때 죄가 살아나고 자기는 죽었다고 말한다(9절).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고통은 죄를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 성경이 가르치는 죄의 본질을 알게 될 때 죄인은 비로소 자기 영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구주를 찾게 된다. 죄가 죄로 드러나지 않으면 자아는 살아 있게 되지만, 죄가 죄로 드러나면 자아는 죽는다. 죄는 율법 조차도 이용하여 더욱 죄를 짓게 할만큼 기만적이고 무서운 것이다(8,11절).

7장의 남은 부분에서(14~25절) 바울 사도가 말하는 ‘나’는 거듭난 신자인가, 아니면 불신자인가? 이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다수의 개혁주의적 해석은 거듭난 신자로, 감리교(알미니안)는 불신자의 고백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헤르만 리델보스나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 사람을 율법을 깨달아 자기 죄의 진상을 보았으나 아직 그리스도께 나아와 복음의 자유를 얻지 못한 사람으로본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절망적 탄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능히 구원하실 주 예수님께 인도하시기 위해서 먼저 율법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은혜의 고백이라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율법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탄식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율법을 깨달아 죄의 진상을 보고 자신의 영혼에 대한 고통스러운 탄식을 느낄 겨를도 없이 영접 기도를 하고 소위 ‘신자’가 된다. 율법이 없는 복음이 만연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는 감격적 선언도 빛을 잃고 말았다(8:1).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율법 조차도 이용하여 자기의를 세우려 하는 죄성의 기만을 보게 하시고, 율법 없는 복음, 값싼 은혜 안에서 살지 않게 하옵시며, 율법으로 죄를 깨닫고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참 자유함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고 감격하는 인생을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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