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목사의 교회 이야기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끝내지 말라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박사, 본국제기독학교이사장, 본국제신학교학장,, 본헤럴드 발행인, 본월드미션이사(재단법인), 새길과 새일 부이사장(사단법인), 저서: 충성된일꾼되어가기. 다수.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1-3).

갈라디아 교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율법을 지켜야한다는 논리가 앞서면서 교회가 큰 갈등과 시련에 빠졌다. 어리석은 자들이 되고 말았다.

목회란 무엇인가? 성령으로 시작한다. 작은 교회이든, 큰 교회이든 성령으로 시작 한다. 믿음 생활의 시작도 성령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항상 상황과 환경과 삶의 자리는 넉넉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과 갈등과 어려움이 연속적으로 찾아온다. 때로는 대처 불가능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전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사면초가를 당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가? 방법은 하나이다. 항상 상황은 변화한다. 날씨가 늘 일정하지 않듯이 항상 상황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평지가 있고, 시시각각 날씨의 변화처럼 변화무쌍하게 다가온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의 시작이 거룩하게 시작했다면, 믿음으로 시작했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시작했다면, 성령님의 역사로 도전했다면, 그 과정도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어떤 순간에도 오직 믿음으로 반응하고 믿음으로 꿈을 꾸며 그 자리를 믿음으로 지켜야 한다. 이것이 목화자가 걸어가야 할 길이며 영적리더의 삶이다.

얄팍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리더가 아니다. 현실에 따라 재빠르게 행동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목회의 깊은 의미와 맛을 경험할 수 없다. 단지 편안하게 살 수 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에서 믿음의 세계에서 경험한 그 깊은 맛과 향기는 그의 목회에서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성령으로 시작했다면 성령으로 마쳐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목회자들에게 주신 거룩한 길이며 사명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편안한 길, 안전한 길, 쉬운 길, 넓은 길, 넉넉하고 부유함이 있는 길만 좋아한다. 그러나 목회자의 길은 정반대로 걸어가야 한다. 편안한 길보다 불편한길을 걸어가는 것을 더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보장된 안전한 길보다 보장이 되지 않는 불완전한 사역에 자신의 전존재를 던질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넉넉함보다 부족함이 있는 사역의 장소를 더 즐기며 그곳을 향해 서로 갈려고 모여들어야 한다.

어쩌면 예수님이 원하시는 이 시대의 목회자의 상이 아니겠는가? 또한 성도들도 이런 목회자에게 매력을 느낄 것이다. 투박하고, 묵직하고, 견고한 목회자가 그리운 시대이다. 오직 믿음의 길을 위해 자신이 누리고 있던 것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과감하게 전부를 던질 수 있는 목회자가 오늘날 그리워진다.

16년의 개척목회를 하면서 나의 필요보다는 성도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늘 찾아서 그 문제를 붙들고 드림의 시간을 보냈다. 어떤 결정을 할 때, 나의 이익보다는 교회의 유익과 성도들의 삶의 필요가 무엇인지 늘 살피며 살았다. 나의 필요와 이익은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를 개척교회 목회자로 부르신 것도 하나님이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 그 현장에 있는 것도 나의 소중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늘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행동을 해왔다. 책임을 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있고, 자녀들이 있고, 나도 미래에 대한 꿈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겼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개척교회로 보내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현장을 불평하지 않았다. 원망도 하지 않았다. 늘 감사했고, 늘 고마운 성도들이었다. 내가 섬길 수 있는 성도가 있다는 것이 늘 행복했다. 그들을 위해 나의 전부를 드리는 것이 아깝지 않았다. 헌신이란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했다면 일생동안 하나님이 주신 자리를 소중하게 지킬 수 있어야 한다. 평생동안 선택의 자리가 옹색하고 드러나지 않고, 비포장도로 일 수 도 있다. 그러나 그 자리를 믿음으로 묵묵히 지키는 것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해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한결같은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함을 드린다. 신학이란 길을 들어서고 나서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도록 늘 마음에 신선함과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목회 현장이 평탄한 것은 아니다. 늘 어려움의 연속이었고, 갈등의 장소였다. 그러나 그 현장에서 나는 목회자로서 그 자리를 떠나고 싶다고 고민해 본적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헌신의 시간을 드렸다. 그 고난의 자리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께 무릎 끊는 시간은 나를 훈련시키는 하나님의 도구였다. 나를 가장 지혜로운 방식으로 나를 다듬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앞에 반항을 할 수 없었다. 언제나 하나님의 방법은 정답이었다. 그분 앞에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그분 앞에 나의 삶의 자리를 숨기지 않고 보고하고, 나의 왕이신 예수님 앞에 늘 그대로 보여주고, 바라보는 것 그자체가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이었다.

목회자는 삶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리더는 흔들려서는 안된다. 성도들이 리더를 보고 안정감을 느껴야 한다. 리더가 갈등하고 방황하고 마음을 잡지 못하고, 불신앙의 늪에 있으면 성도들도 그대로 느끼게 된다. 이런 리더와 일생을 함께 하고 싶은 성도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성령으로 시작했다면 삶의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끝까지 성령으로 마쳐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목회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며 의무이며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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