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숙 집사

나노봇(Nanobot)은 특정한 기능을 하도록 만든 분자 크기의 로봇이다. 나노봇은 전자회로를 가진 로봇이 아니라, 우리 몸 안의 효소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과학자들이 연구중인 이 나노 크기의 로봇은 향후 몇십 년 안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노봇(Nanobot)은 처음 제작할 때 움직임을 예상해서 설계하지만 일단 몸 안에 들어가면 나로봇 개체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는 없다고 한다. 나노세계는 일반 물리의 지배도 받지만 양자역학의 지배도 동시에 받는 세계이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즉 나노봇이 병을 찾아내고 고치기도 하는 좋은 역할도 하지만, 예상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다른 한편 어떤 프로그램을 의도적으로 심으면 나노봇이 사람의 영혼을 지배할수도 있는 심각한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노봇을 인체에 심고 프로그램을 작동하면, 교회에 앉아 있으면서도 프로그램에 의해서 천국을 실제로 볼 수가 있고, 그 곳에 있다고 착각할 수도있다는 것이다. 또한 종이를 씹으면서도 고기를 먹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실제로 고기맛으로 인식할 수도 있고, 더러운 곳에 가도 그곳이 정말 깨끗한 곳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생명과학의 발달로 유익한 점이 많지만, 인간의 교만에 의한 신의 영역을 넘어서는 지나친 과학의 발달은 결국 인간의 파멸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또한 한가지의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과학보다 더 영리하고 교묘한 사단의 계략으로 인해 인간의 영혼에 나로봇 같은 장치가 심어진다면, 정신세계가 통제를 받고 입신이나 환상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적인 사람이 보면 이상하지만 본인은 분명히 환상을 보고 입신도 하고 음성도 들으니 그것들을 주님이 주시는 것으로 오해할 만하다. 하나님은 분명히 성경 66권을 통해서 계시하시고, 우리의 삶의 전반을 통하여 지정의로 역사하신다. 그럼에도 인간은 신비한 역사나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영혼세계로 깊이 들어가서 뭔가를 확인하고 싶고 특별한 체험을 하고 싶은 열망이 있다.  

분명 허상의 세계이지만 당사자는 그 세계가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그러므로 토마스 주남 여사도 있고 펄시콜레도 있는 것이다. 주님을 잘 믿는것은 생활 자체가 신앙인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 중생한 사람답게 주님을 닮아가기를 갈망하면 된다. 결국 하늘나라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상주시려고 판단하시는 관점은 얼마나 그리스도인 답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기독교는 종교(religion)가 아니고 하나님과의 관계(relationship)에서 생기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자녀된 나의 관계적 삶이 신앙의 핵심이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to do)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 그 자체(to be)가 용납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했다. 죄의 고백과 거듭남을 떠나서 무슨 신령한 주술을 부리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아 넘어가지 말고, 그런 사람들에게 전혀 신경쓰지 말자.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환상과 꿈 속에서 주님을 만나는 일들이 전혀 없을지라도, 우리는 말씀 속에서 성령과 함께 살아감을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평강으로 응답받고 있고, 주님을 항상 의식하고 느끼면서 살아가는 자체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자기 몸을 버리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편지인 말씀 안에서 정답을 찾으며 살아가자. 신비하고 몽롱한 가운데에 살지 않아도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응답을 늘 주신다.

주님이 언제 오시든지 종말론적 신앙으로 살아가야 하며, 지구종말과 상관없이 내 자신이 언제 주님나라에 갈지 모르지만, 주어진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살기를 주님이 바라실거라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주님을 닮아가는 진실된 그리스도인은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능력도 수시로 체험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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