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혁장로교회 소속으로 이광호 목사가 담임하는 교회이다.

주일 공 예배 탐방 겸 해서 첫발걸음 했던 실로암 교회당. 넓직한 들판 가운데 이름모를 산을 등진 채 외로운 듯 세워져 있다. 세상에 속하였으면서도, 구별 된 듯한 모습이 이와같지 않을까라는 인상을 지울 길 없다. 오래전에 예배당 이전하고 개최한 첫 세미나(송영찬 목사)에 참석하기도 했었고, 작년 한해 아이들 토요학교를 봄 학기 4회, 가을학기 1회 참석을 해서 낯설기보다는 오히려 정겨운 곳이다. 잠깐 다녀오겠다는 생각으로 발걸음 했지만, 이후로도 계속 자석에 이끌리듯 벌써 3번째 성찬 상을 받았고, 한 번의 공동의회에도 참여했다.

교인들 중에 낯익은 분도 계시고, 장소도 익숙하기는 했지만 공 예배를 참석하기는 처음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그러나 오히려 실로암 교회에서의 공 예배는 기대했던 것 이상의 감동과 배움이 있었다.

[주일 공적 예배 소감문]

1. 공 예배 전체 분위기. 요즘 대부분의 교회(복음주의)는 교파 상관없이 분위기가 개방적이고 산만한 느낌이 없지 않다. 프로그램도 많고, 예배 중간 중간에 기타 순서도 제법 있기도 하다. 반면 여타 개혁주의를 추구한다는 교회들은 예배 순서가 형식적이고, 예배 시작시간이 지나면 출입을 제한한다는 등의 정보를 귀동냥한터라 한국개혁장로교(KRPC)로 개혁주의를 추구하는 실로암 교회도 조금은 경직된 분위기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엄숙한 분위기를 지향하며 어린 자녀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공 예배에 참석하기는 하지만 졸기도 하고, 자유롭게 필기도 하는 등 크게 경직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목사님의 조심스러우면서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크기의 목소리는 모든 교인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기울이게 만들어서 오롯이 말씀에 집중하게 되는 분위기다.

2. 예배 순서. 여타 교회들이 예배시작 전 준비한다는 의미로 찬송을 부르거나 기도를 하는 것과는 달리, 시편 강해부터 시작해서 천상을 주목하게 하고 성도들이 말씀 앞에서 겸비할 수 있게 한 후 공적인 예배가 시작된다. 기존의 예배에로의 부름, 송영 등의 형식적인 선언은 생략하고, 간단한 묵상기도로 시작해서 개역한글의 시편과 일점일획도 다르지 않는 시편찬송을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계시된 성경으로 송영을 돌리며, 장로의 대표기도와 마태복음 봉독, 시편찬송, 성경강해, 성찬(월 1회 매달 둘째 주 시행), 연보, 광고, 축도로 진행된다. 형식주의는 아니면서도 형식을 무시하지는 않으며, 모든 순서가 성경말씀으로 군더더기 없이 진행되는 것이 장점이다. 기록된 말씀을 통한 하나님 중심적인 순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3. 강단선포. 목사는 설교는 ‘설득’이 아니라, ‘선포’라는 개념에 선 입장이다. 본문은 목사가 임의대로 결정하지 않고, 교인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당회에서 결정한 성경을 본문으로 한다. 헬라 철학자들의 웅변스타일 –필자는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시행되는 설교는 서론-본론(1대지, 2대지, 3대지) 결론 및 적용의 웅변 스타일은 사변적이고도 헬라 철학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 같은 형식이 비성경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설교자의 주관이 가미될 소지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이 아니라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일관되게 주해한다. 명확한 적용은 없어도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강하게 남긴다. 청중 스스로가 적용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비평을 지양하면서도 의미론적 해석에는 열려있는 성경강해가 신선하고 인상적이다.

4. 찬송. 시편찬송을 부르되 시편찬송 내용은 개역한글 성경과 일점일획도 다르지 않다. 찬송가 없이 성경을 펼쳐서도 눈치껏 따라 부를 수 있고 이로 인해 공예배의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고 말씀에 집중할 수 있다. 물론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리 성경 중심으로 한다해도 온전한 예배로 나아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체의 재미를 배제하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바라보기 위한 노력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5. 대표기도는 장로가 돌아가며 하는데, 일주일 동안 교회와 노회에 속한 형제교회, 그리고 다음 세대를 염두해 두며 작성한 기도문을 보며 낭독한다. 혹자는 대표 기도자가 기도문을 작성하는 것을 반대하기도 한다. 특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신비주의자들이 특별히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필자도 한 때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생각해서 기도문 없이 평소의 신앙의 내용을 중심으로 대표기도를 했었다. 그러나 허물 많고 연약한 죄인이 하나님 존전에서 회중을 대표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일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대표 기도자가 그런 부담감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회를 묵상하면서 보다 합당한 기도문을 작성하는 것은 모두에게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6. 성찬. 매월 둘째 주에 월1회 시행된다. 목사는 떡과 잔이실재적으로는 천상에서 가져온 것임을 언급한 후 고린도전서의 성찬 본문을 합독한 후 간략하게 설명하고, 십계명을 교인들과 함께 읽으며, 이 성찬은 천상에서의 식사임을 강조한다. 떡(빵)은 모든 교우들이 먹을 수 있을 양을 한 덩어리로 주문 제작해서, 마치 모닝 빵을 여러 개 붙여 놓은 것 같아 보인다. 성찬을 집도하는 목사는 네 명의 장로에게 떡을 배분해서 나누고 장로는 교우들이 앉아있는 곳에 떡을 돌리며, 회중은 목사의 맛보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임을 강조하는 인도에 따라 넉넉하게 먹을 양을 자유롭게 뗀다. 포도주도 역시 목사가 네 명의 장로에게 나눠서 성도들에게 잔을 돌린 후 마시게 하면서 이것이 하나의 떡이며 하나의 포도주라는 것을 시각적으로 확인하게 한다. 배경음악을 깔면서 인위적인 분위기를 만들지 않고, 평소와 다르지 않는 분위기로 차분하게 진행된다.

7. 연보. 실로암 교회는 타 교회에서 헌금, 헌상으로 칭하는 것을 연보라고 한다. 명칭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오랫동안 익숙한 헌금이라는 말 대신 연보라고 칭하는 것이 낯설기는 하다. 연보는 시편찬송을 부르는 가운데 앞에서부터 바구니가 돌려지는데 무기명으로 자유롭게 연보를 한다. 무기명이기에 십일조 연보와 감사연보, 주일 연보로 통칭해서 목사가 연보기도를 한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 중의 일부를 드린다는 것, 가난으로 인해 어렵지 않기를 바라며, 또한 풍부함으로 인해 세상을 탐하는 것을 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다. 연보를 통한 기복 주의적 신앙을 철저히 배제하려고 하는 인상이다.

8. 광고. 교회의 행사나 노회의 소식을 간략하게 전한다. 광고를 예배 순서에 포함하느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실로암 교회는 교회의 광고도 공예배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성령의 교통하심에 따른 성도의 교제라는 주장을 따르는 모양이다.

9. 축도. 팔을 높이 들지 않고, 다소곳한 두 손은 마이크를 잡아 모으고 평소와 똑같이, 그리고 여전히 조용하게 고린도후서 13:13을 읊조리는 정도다. 지나친 형식주의를 배제하고자 하는 노력이 여실히 드러나는데, 축도의 성경본문은 항상 동일하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강복이 가장 잘 드러난 본문이고, 사도된 바울을 통해 계시된 축도 내용이므로 이 본문을 고수하는 것 같다.

10. 주보. 오로지 예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주보를 제작하지 않는다. 또한 교회당 안에서는 누구나 할 것 없이 휴대폰 사용을 자제한다. 요즘 젋은 세대에게는 쉽지 않은 모습인데, 교육이 잘 되어서인지 모르지만 잘 유지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11. 성도의 교제. 교회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다 하여, 재미를 지양하지만, 공 예배 후에는 자유로운 성도의 교제를 통해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재미가 있다. 그러한 교제가 세대를 이어가며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손님으로 참여한 입장에서는 무관심한 듯한 그런 분위기가 어색하고 불편할 수도 있겠다. 새 신자를 담당하는 교역자나 직분 자들이 교회 분위기에 잘 적응하도록 노력하는 여타 교회와 차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식 회원이 되기까지는 청소 등의 봉사활동도 강조하지 않는다 하니, 게으르고 나태한 필자와 같은 사람은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더 편안할 수도 있겠다.

12. 점심식사.(공동식사). 메뉴는 현미가 적절히 섞인 밥과 김치는 주식이고, 1찬은 그날 준비하는 당번에 따라 바뀐다. 너무 거하지 않고 소박한 점이 장점이다. 거창한 식사를 기대한다면 집에서 먹어야 할 것이다. 집사 회에서 돌아가며 봉사하고, 손님들은 당번에서 제외된다.

13. 오후모임. 목사의 설교에 대한 의문사항들뿐만 아니라, 성찬이나 교회 행사나 신학적인 내용에도 자유롭게 질문을 한다. 목사는 교인들의 질문을 귀 기울여 듣고 그에 대해 쉽고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대답하고자 애쓴다. 질의시간이 끝나면 자연스레 ‘구약신학의 구속사적인 이해’(이광호, 깔뱅)를 가지고 성경을 공부한다. 어린 자녀들은 주일학교 교사의 인도에 따라 웨신 소요리 문답을 공부하는 모양이다. 소요리 문답을 암송한다고 하는데 어떤 버전의 해석을 쓰는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아쉬운 점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하나는 예배당이 외진 곳에 있는 관계로 인해 자가용이 없이는 교회에 참석하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예배당이 위치한 곳의 주민들이 교인으로 참석하지 않아서 요즘들어 뜨거운 감자이기도 한 사회참여적인 면에서는 그 점수가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기본으로 한 신앙의 성숙과 더불어 말씀 안에서의 성도의 교제가 안정감이 있다면 이 또한 다른 방향으로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교회 론이고, 실로암 교회는 그렇게 하고 있다는 점을 공동의회를 통해 확인하면서 큰 문제라고는 볼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이는 교회에 대한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평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실로암 교회는 나와 우리 가족들에게는 마치 도피성과 같은 곳이다. 방황할 수밖에 없는 외로운 시기에 따스한 엄마 품을 제공하는 안식처와 같고, 천상에서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공동체이다. 비록 거리는 멀지만 실로암 교회를 통해서 자녀들에게 제시할만한 모범적인 공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오아시스와 같은 귀한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며, 아울러 신천지와 같은 무리로 인해 어지러운 시대에, 부족하고 못난 소자의 가족을 보듬어 주시고 말씀을 통한 천상의 위로를 제공받도록 출석을 허락해 주신 목사님과 당회, 교우들에게 감사하다. 오래된 교인들은 실로암 교회 내부에도 여러 문제가 있고, 갈등이 있다고 토로하기도 하지만 이제 갓 3개월 출석한 소자에게는 별의미가 없는 불만일 뿐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거취는 여전히 고민이다. 거리상의 문제로 인해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은 오가는 길 때문만은 아니다. 가시적 교회는 완벽할 수는 없지만, 철저히 성경을 중심으로 지향하기 위해 애쓰는 교회는 근거리에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뿐만 아니라 어린 자녀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한 신앙 안에서 교제할 수 있는 지체가 근거리에 있는 것이 유익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록 현재의 시간이 좋아서 과감한 결단은 내리지 못하지만, 길어지면 오히려 손해가 될 것 같다.

[공동의회 소감문]

2017년 1월8일 주일오후에는 지난주에 인원이 모자라 연기되었던 공동의회가 진행되었다. 의장(이광호 목사)께서 지난주 인원파악에 착오가 있었다는 점을 밝히고 사과를 하셨다. 총원이 원래 인원보다 더 많이 측정되어서 지난번 인원으로도 충분히 개회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회의 서기를 맡은 장로의 거듭된 사과가 있고, 바로 인원확인에 들어갔다. 인원수가 충족함을 확인하고서는 의장이 공동의회에 관한 헌법을 낭독하고 순서대로 보고를 하고 멤버들의 질의 및 동의, 재청으로 진행되었다.

1. 헌법을 명확하게 낭독해서 노회 헌법을 준수하고자 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헌법에는 공동의회 개회 조건, 참여자의 조건 등이 명시되었고, 논의 방향도 제시되어 있었는데, 금번에는 재정과 기타논의 외에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한다. 이로써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막게 되는 것 같다. 자칫하면 지루하고 오래 진행될 수 있는 점들을 사전에 방지한다는 의미가 크다.

2. 사회자는 의장인 담임목사가 맡는데, 영향력 있는 담임 목사는 공동의회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 상투적인 요즘인데, 실로암 교회에서의 담임 목사는 철저히 사회자 그 이상은 아닌 것이 인상적이다. 필자가 볼 때 회의 진행 중에 얼마든지 끼어들 수 있는 상황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고, 사회자로써 쌓인 연륜만큼 간략하고도 부드럽게 회의를 진행한다. 감정적인 대립으로 진행되는 상황도 있었지만, 재빨리 중재하여 그러한 대립을 무마하는 노련미가 돋보였다.

3. 의회 서기는 장로 중에 1인이 맡았는데, 회의 진행 내용을 빠짐없이 기록하느라 수고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작년 회의록을 낭독해서 동의, 제청 받은 후 곧바로 시작된 회의에서 여러 말들이 오갔지만, 손이 안보일 정도로 수고한 결실을 회의가 마칠 때 드러내어 회중들의 동의와 재청을 요구한다. 미처 받아 적지 못한 부분이나, 오류가 난 것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하고, 녹음 파일을 통해 보충하는 것으로 동의를 요구하고, 회중들은 그렇게 응한다.

4. 회중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했다. 당일의 회의에서는 크게 이슈가 되는 쟁점이 없어서인지 무던하게 넘어가는 것 같다. 작년에는 예산, 특히 예비비 문제로 좀 더 뜨거웠던 눈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진중하게 안건들에 집중한다. 배포된 회의안과 회계보고서를 매의 눈으로 꼼꼼히 들여다 보며 오타나 오류를 꼬집어 내어 수정을 요구한다.

5. 다음 세대인 자녀들이 공동의회 시간에 자리를 지켜 경청하는데 어른들의 성숙한 회의진행 모습이 큰 귀감이 될 것 같다. 사실 필자는 학생회 때 회의를 인도해 본적이 있다. 그러나 그 때는 진중하지도 않고, 엄숙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귀감이 될만한 사례를 배운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실로암 교회의 3개월간의 공 예배와 한 번의 공동의회 참여는 바른 신앙고백과 더불어 성숙한 회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물려받으며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기대를 가지게 한다.

6. 회의를 마친 후 청소당번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하나같이 종종 걸음으로 귀가 길에 오른다. 1시간30분이 소요되는 필자도 바람처럼 사라지려는데, 입구에서 방어하시는 목사님께 저지당하는 바람에 그동안의 공 예배와 공동의회에 대한 소감문을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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