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4:1-8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고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3 그 때에 저희의 노가 우리를 대하여 맹렬하여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며 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엄몰하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잠갔을 것이며
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잠갔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6 우리를 저희 이에 주어 씹히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 우리 혼이 새가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남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1) 여호와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다윗은 "만약 ~이 아니었다면"이라는 가정법을 사용하여, 현재 구원받은 기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너무나 악한 원수들의 공격이나 함정에 빠져본 적이 있습니까?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 씌우기도 하고, 잘하기 때문에 질투의 화신들에 의해 수모와 공격을 당하기도 하며 그들의 올무에 빠졌을 때에,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편에 계시지 않으셨다면, 현재의 우리는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면"이라는 말은, 우리 인간의 무능력함과 아울러 토기와 같이 연약함과 흙(먼지)으로 만들어진 아무 쓸모가 없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 묵상하게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힘으로 무언가 하려고 애를 쓰다가 인간의 한계에 도달해서 더이상 어쩔 수 없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태에서 좌절하고 낙망한 적이 있습니까? 만약 있다면, 그때 여러분의 심정은 어떠했습니까?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아직까지 피조물로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처절한 인간의 실체에 대해 느껴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절대절망의 상태에 빠져본 사람만이 진정으로 인간의 존재(피조물)와 하나님의 존재(창조주)에 대한 깨달음을 가질 수 있르며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여러분은 원수 마귀가 얼마나 악랄하고 잔인하고 교묘하고 끈질기고 더럽고 지겹고 사람의 진을 빼며 미치게 하는지 경험해 보셨습니까? 그러한 원수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안 계셨다면... 아마 지금도 지옥과 같은 삶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며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2) 우리의 상황

"정녕히 알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필경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수 23:13)

인생이란 행복하기만 하지도 않고 불행하기만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인생길에서 우리가 겪어야 하는 것 중의 가장 힘든 고통은 사람들을 통해서 겪는 고통입니다. 다윗은 부모 형제로부터 무시를 당하며 자랐으며, 골리앗을 죽이고 나라에 큰 공을 세워서 사울왕의 사위가 되었지만 장인의 질투로 인해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도망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 적국에 가서 살기 위하여 침을 질질 흘리면서 정신병자 행세를 하며 살았습니다. 

그가 왕이 된 후에는 그의 아들 암논이 이복 동생을 강간하여 아들들 간에 죽고 죽이는 일을 경험하게 되었고, 또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또다시 살기 위하여 도망자의 삶을 살았고 결국 반역한 아들이 죽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의 첫번째 아내 미갈은, 처음에는 그를 사랑했지만 후에는 그를 무시했습니다. 심지어 사울 족속 중의 시므이라는 사람은 그를 신복들과 백성들 앞에서 저주했습니다. 그의 노년은 평안했지만, 그의 인생은 끊임없는 전쟁을 겪으며 사람들로부터 배신과 음모와 무시를 당하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왕의 자리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을 건설했던 다윗이었지만, 그의 인생은 우리가 결코 겪고싶지 않은 일들로 꾸며졌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닮고싶어하는 다윗... 그러나 그러한 다윗의 인생은 정말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한 다윗을 보며 우리도 우리의 인생을 결코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인생길에는 수많은 올무와 통채로 삼키려고 입을 벌리고 달려오는 적들과 틈만 나면 가십거리를 만들어내서 씹으려고 하는 자들에 둘러싸여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① 동물의 세계

동물의 세계는 긍휼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힘센 자가 약한 자를 잡아 먹거나 쫓아내는 것이 동물의 세계입니다. 여기에서는 부모도 자식도 형제도 없습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족들과도 싸워서 이겨야만 내 위치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이후 아담 때문에 모든 세계가 죄로 물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모든 세계가 저주를 받게 되었고, 동물의 세계는 죄로 인한 죄의 본능만이 존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도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을 때에는 죄의 본능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은 두 부류로 갈라져서 가인의 후손들은 동물의 세계와 같은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법칙대로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고 짓밟고 올라가려고 하는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산채로 삼켜서 죽이거나 서로가 서로를 씹으며 가십거리를 만들어내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며 섬겨주며 자신을 부인하며 살아가라고 말씀하시지만, 하나님이 없는 세계에서는 자기를 피알(PR: public relations, 홍보)하여 다른 사람보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더 뛰어난 사람인지를 자랑하게 하며 그것을 잘 하는 사람을 유능한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선거유세를 할 때 보면, 자기 자랑을 하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상대방의 단점을 어떻게 해서든 찾아내서 그것을 헐뜯고 그를 짓밟아서라도 자기가 올라서려고 하는 것을 이제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직장이나 학교나 어느 곳에서든 윗 사람에게 인정받고 올라가기 위해서 온갖 보이지 않는 싸움을 치열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없는 죄인들의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② 자연 재해

자연의 재해는 매우 무섭습니다. 우리는 일본의 쓰나미를 비롯하여 여기 저기에서 일어나고있는 자연 재해를 보며 망연자실(茫然自失)하여 바라보기만 합니다. 큰 물이 갑자기 덮쳐올 때에 그것을 막을 힘이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그저 손놓고 당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의 재해는 갑자기 닥칩니다. 물론 일기예보에 의해 어느 정도 알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위험지역은 빨리 피하라고 뉴스를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항상 맞는 것이 아닙니다. 예상보다 더 일찍 재해가 덮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맞는다고 할지라도 뉴스를 듣지 못했거나, 뉴스를 들었어도 모든 상황이 도망할 수 없는 경우이거나 또는 자기의 지식과 경험을 믿는 교만한 이들은 뉴스를 들어도 피하지 않다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연 재해처럼 언제 어떠한 위험이 닥칠 지 모르는 것이 우리의 인생길입니다. 

또 홍수가 갑자기 덮치듯, 교만이 우리의 영혼을 덮치는 순간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생겼을 때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입이 근질근질해서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번 자랑하기 시작하면, 거기에 이것 저것을 덧붙여서 과장까지 하며 아주 근사하게 포장하기까지 하게 됩니다. 그렇게 스스로 자랑을 하면서 어느새 자기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며 어깨가 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교만이라는 것은 큰 물이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덮는 것처럼, 자기도 모르는 순간에 갑자기 우리의 영혼을 덮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합니다.

③ 교만이라는 마귀의 올무

사람이 가장 벗어나기 힘든 것이 '교만'이라고 하는 올무입니다. 사냥꾼이 새나 동물을 잡기 위하여 덫이나 올무를 놓는 것처럼 우리의 원수 마귀는 우리의 영혼을 사냥하기 위하여 '교만'이라는 올무를 우리의 생각 속에 집어넣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불행하게도 그 속에 담겨있는 그럴듯한 먹이에 관심이 있어서 올무인 줄도 모르고 그 속에 스스로 들어갑니다. 

올무나 덫은 항상 눈치채지 못하도록 잘 숨겨져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항상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덫에 걸리게 될 지 모르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리고 일단 덫에 걸리면 결코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치면 칠 수록 더욱 덫이 몸을 조여들게 하므로 몸을 더욱 상하게 할 뿐입니다. 이처럼 일단 교만해지면, 그 교만은 우리의 영혼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생활과 환경까지 엉망 진창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리고 그것을 느끼는 순간, 다시 잘 살고싶은 마음에 스스로 겸손히 섬기려고 하거나 사랑하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그것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며 깊은 좌절감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좌절감으로 인해 우울증과 피해망상, 자기연민, 낮은 자존감, 의기소침, 대인기피증 등에 빠지고 그것이 깊어지면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 목숨까지 끊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덫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을 허용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절망감을 통하여 오직 구원은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가능한 것임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러한 절대절망감 속에서 우리는 흙 먼지로 만들어진 피조물임을 인식하게 되며 또한 그러한 보잘것없는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시는 것이며, 마귀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창조주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며 살아가도록 우리를 부추깁니다.

(3)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여호와

인간의 구원은 인간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원수 마귀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우리 스스로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교만을 심어줍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과 지식과 능력으로 세상을 살아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게 마귀에게 속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문명을 발달시키고,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만 계시면, 문명이나 도시의 발전이 필요가 없습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어떻습니까? 일주일에 5-6일을 열심히 일하며 살다가 가끔 휴가를 내어서 자연이 있는 곳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일년 내내 쉬는 날도 없이 일만 하다가 생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도시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창세기를 보면, 도시는 하나님을 떠난 가인의 후예가 만들었습니다. 가인의 후예가 만들고 발달시킨 도시에 갇혀서 사는 사람들은 도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간신히 휴가를 얻어서 자연을 찾아 떠납니다.

우리는 도시가 발달되지 않고 미개한 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만들어주신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자연의 섭리를 매일 보며 느끼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햇빛과 비를 주셔서 곡식들을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느끼며, 공해가 없는 자연 식품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TV를 보면, 건강이 나빠져서 자연에 들어가서 건강을 회복하여 계속해서 자연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를 자주 보게 되는데, 결국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는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놓은 도시와 문명이 결코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육간의 구원은 오직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그분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인간의 어떠한 노력으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만들어놓은 그 어떠한 것도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 줄 수 있고 우리를 영생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지식이나 경험이나 재능이나 힘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앞에 내려놓고 두 손을 들고 완전히 항복할 때에 그때에 비로소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양을 할 때에 두 손을 들고 완전히 항복한 상태로 찬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모두 주님 앞에 두 손을 들고 완전히 항복할 때에 비로소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되며 인생의 바른 목표를 설정하여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생활 속에서 예배자의 자세가 아닌 자세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 편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도 겸손히 티끌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라는 것 즉 주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겸손히 주님 앞에 모든 견고한 진을 내려놓고 주님만 바라보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삶의 적용]
하나님께서 내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다면 어떤 일이 있었을 것이며, 함께 계심으로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살펴보자.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시기를 원하는 만큼, 나는 항상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며 행동하는가?
아니면, 가끔 또는 자주 사람들이나 나의 기분을 생각하며 하나님보다 사람(내) 편에 서는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마귀의 유혹에 자주 넘어가는 부분은 어떤 것들인가?
(예: 가족, 건강, 공부, 직장 등 핑계 거리가 자꾸생긴다)

나를 교만하게 이끄는 것들은 어떤 것들인가?
내가 자랑하고 싶은 것들은 어떤 것들인가?
내가 스스로 잘먹고 잘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그것들이 한 순간에 홍수가 덮쳐서 다 쓸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나라의 위기 앞에서 나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주님밖에 해결하실 분이 없으심을 인정하며 엎드려 회개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앞에 나서는 것인가?
갑자기 자연 재해처럼 환난이 닥쳤을 때, 어떻게 행동했으며 행동하고 있는가?
우울증에 빠져서 하나님과 사람을 원망하였는가?
문제를 일으킨 환경과 사람들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처럼 하나님을 찬송하며 고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는가?
내가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올라가려고 했던 적은 없는가?
내가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질투심으로 가십거리를 만들어서 씹었던 적은 없는가?
내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잘 하는 것을 보며, 그 사람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적은 없는가?
그 질투심과 이간질은 마귀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 동안 내가 하나님 편에 서지 않은 것들은 어떤 것들인지 생각해보자.
생각나는 것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지 말고, 생각나는대로 바로 회개하고 해결받자.
하나님과의 관계가 빨리 회복 될수록 하나님께서 속히 내 편이 되어주심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항상 하나님의 편에 서도록 날마다 주님 안에 거하자.
나의 도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시인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을 증명할만한 삶을 살라.

예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삶 속에서 나오도록 주님을 따르는 '증인(μάρτυς : witness(증인), martyr(순교자))의 삶'이기 때문이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기 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더라면 저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였을지를 생각하니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인생길에서 주님의 도움없이 단 한 순간도 살지 않을 때가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도움이 있었기에, 또 주님이 저희 편에서 도와주시고 인도하셨기에 이렇게 살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서 제 편에 서시길 원하면서도, 저는 하나님편에 서지 못할 때가 너무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편이 되셔서 저를 도와주시기를 원하면서도, 저는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 동안 제 생각대로 살아왔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사오니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이제부터는 저의 모든 생각과 생활을 온전히 주께서만 주장하여 주옵소서. 언제나 아주 조그마한 것까지도 일일이 간섭하시며 도우시는 하나님만을 믿고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성령 안에서 저를 넘어뜨리려고 달려드는 모든 악한 세력들을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를 인생의 모든 환난 속에서 항상 구원해주셨고 또 구원해주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지 않는 삶을 많이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저의 삶을 통하여서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께서 저를 만드신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저에게 성령 충만하게 하시며 저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지금 이 순간에도 원수의 올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저의 구원과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저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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