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피조된 인격체라는 사실은 신학적 주제에서 균형잡힌 관점을 갖게한다.

교회를 위한 신학포럼 대표 / 한우리교회 담임목사 Senior Pastor /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 / 동아대학교 환경공학과에서 대기오염 수질오염 전공

지난 시간에 인간은 스스로 진화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지어진 피조물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체임을 살펴보았습니다. 피조물이기에 하나님을 의존해야만 하며 동시에 인격적이기에 도덕적 책임이 부여된 존재, 이것이 성경이 설명하는 인간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인간에 대한 이런 이해가 중요한 이유는 신학적으로 여러 극단적인 적용을 피하고 균형 잡힌 관점을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1.죄의 기원과 연관해서

왜 사람이 죄를 지었는가 하는 문제는 영구적 미스테리로 남아 있겠지만, 우리는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을 곧 그가 선택권을 가진 인격체라는 사실로부터 접근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죄를 지은 그 힘마저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힘을 사탄을 위해 썼다는 점에서 사람의 죄는 그 심도가 더욱 크고 깊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와 죄지은 자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죄가 하나님의 주권 밖의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사람의 첫 번째 죄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허락된 의지”(permissive will)라는 말을 쓰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입니다.

2.구속의 문제

사람이 피조물이라는 사실은 그가 타락한 후에도 하나님의 주권적 간섭을 통해서만 죄에서 구원되고 구속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사람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은혜를 통해서만, 즉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에 의지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은 인격체이기 때문에 구속의 과정에서 컴퓨터로 입력을 받은 로봇처럼 구원 받는 것이 아니요 한 인격체로로 구원 받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격체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들의 구속과정에서 성령의 힘을 입어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을 비롯해서 어떤 사람들은 믿음조차도 사람의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계속 하나님과 교제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생활을 지속해야 합니다. 죄인 된 인간의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사실이 우리의 인격적 반응을 배제시키고 인간적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3.중생과 믿음

거듭남이란 성령께서 말씀의 선포를 통해 한 인격체를 주님과 연합된 삶으로 인도하며 그의 마음을 변화시켜 영적으로 죽었던 그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대적인 변화는 사람의 행위가 아니요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가(엡2:5) 어떻게 스스로를 살릴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입니다(요1:13). 그러나 거듭남의 도구가 물과 성령, 곧 말씀이므로 거듭남은 반드시 복음에 대한 믿음의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하신 중생의 사역은 반드시 주님을 받아들이려는 의지적이고 인격적인 믿음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과 믿음은 분리될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함께 다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신 후에(요3:3) 곧바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도 그러한 두 요소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요3:16). 그러나 논리적인 구원의 서정은 믿음이 중생에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이 믿음에 우선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인간은 믿어야 합니다.

4.성화와의 관계

성화란 사람의 책임 있는 참여와 관련하여 사람의 성품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하는 성령의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생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역이지만 앞에서 다룬 믿음의 문제와 더불어 성화도 하나님의 사역인 동시에 사람의 과업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을 성화시켜야만 하며 동시에 인격체인 인간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룸으로써”(고후7:1) 성화의 과정에 책임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빌립보서2:12-13에 나타난 바울의 놀라운 선언을 들어보십시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인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기 하시느니라.” 여기서 “이루라”(카테르가제스데)로 번역된 헬라어는 초대교회 시대에 통용되던 파피루스 문서에 의하면 농부가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는 모습을 묘사하는데 사용된 단어입니다. 즉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을 너희가 성령의 은혜 가운데 “가꾸라”라는 말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왜냐하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는 말처럼 우리 안에서 성화 전체의 과정을 이루시는 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성화를 통해서도 우리를 인격체인 동시에 피조물로 대하고 계십니다.

5.성도의 견인과의 관계

사람의 피조성과 인격성의 관계는 성도의 견인 교리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구원의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며 자기를 향하여 우리를 참되게 하셔야만 합니다. 이 점에 관해 성경은 분명한 어조로 가르치고 있습니다(요10:27-28, 롬8:38-39, 히7:25, 벧전1:3-5, 유24). 그러나 이것에만 의지하여 이 역설의 뒷면에 숨겨진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즉 신자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는 믿음 안에서 인내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마10:22, 고전16:13, 히3:14, 눅3:11). 이것은 하나님의 보호냐 혹은 인간의 인내냐 하는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피조물이기에 하나님의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것 없이는 타락할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우리가 인격체이기에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인내케 하셔서 우리를 보존하는 것입니다.

6.언약과의 관계

“피조성-인격성”의 상관관계론은 신학 전반에 많은 의미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와의 언약관계 안에서 구원하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언약관계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동시에 인격체이므로 이 언약에 대해 책임을 지니고 있으며 그에게 부여된 언약의 의무조항들을 실행하여야 합니다. 이처럼 은혜언약은 그 완성이란 측면에 있어서 상호적입니다. 더 나아가서, 인간을 피조 된 인격체로 이해하는 것은 은혜언약이 조건적이냐 무조건적이냐 하는 분분한 논쟁을 해결해 줍니다.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은 그 기원에 있어서 무조건적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은 인격체이므로 하나님을 그의 백성들에게 그의 언약의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몇몇 조건들을 실행하도록 요구하십니다. 하지만 사람은 이 조건들을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만 완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언약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과 인간의 중요한 의무가 동시에 주목됩니다. 성경은 언약의 약속과 언약의 위협을 동시에 다 포함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 두 가지 측면을 다 드러내야 합니다.

7.하나님의 형상과의 관계

마지막으로 또 다른 중요한 신학적 개념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교리입니다. 다음에 다룰 것이지만 인간은 죄로 인한 타락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잃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를 일컬어 협의적 의미의 상실 혹은 기능상의 상실이라고 부르죠. 하나님을 위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대신에 그분을 외면하고 반항자의 위치에 서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롭게도 이런 인간을 구속하시어 그의 형상을 사람 안에서 재생시키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과 신실함과 다른 사람을 향한 봉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닮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역시 인격체이므로 이 회복에 참여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 점에 대해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을 닮으라.”고 권고합니다(엡5:1).

인간이 피조된 인격체라는 사실은 이상과 같이 여러 신학적인 주제에서 균형잡힌 관점을 유지하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우리처럼 개혁주의 내지 칼빈주의적 전통에 서있는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인간의 피조성(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의존성)만을 강조해왔으며 따라서 인간 삶의 모든 면에서와 특히 죄로 부터의 구원사역에 관한 하나님의 궁극적 주권성만을 강조해온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알미니안적 사람들은 인간의 인격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의 구속과정에서의 인간의 자발적 결단과 그 후 하나님을 향한 끊임없는 신실성만을 중요시 해왔죠. 그러나 인간이 피조물인 동시에 인격체라는 역설적 사실을 기억하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반응을 동시에 잘 드러나게 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개혁주의 전통을 따르는 사람들은 인간의 책임성을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될 것이며 알미니안 계통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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