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가는 길-까미노

이대희 목사는 안식년을 맞아 아내 천미경 사모와 중학교 2학년 아들 세빈이와 함께 2012년 8월 24일부터 9월 27일까지 스페인의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찾아 800Km에 이르는 도보 순례길을 걸었다. 이대희 목사는 산티아고 영성의 여정에서 그가 입은 은총을 본헤럴드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이대희 목사는 감신대 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영성 전공) 중에 있다. 강원도 진부감리교회에서 시무중이다. <편집자주>

 

나헤라에서 산토도밍고 데 칼사다까지 가는 길

까미노 위의 두 마음

 

 

지난밤에 아내는 한 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복통과 메스꺼움, 어지러움 등으로 급하게 화장실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질 증세였다. 8월 20일 월요일 새벽 5시. 한 쪽 하늘이 시뻘개지고 있다. 아내와 아들 세빈, 나는 먼 길을 가야한다. 동쪽 창밖, 비구름 가득한 하늘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새로운 하루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곳저곳에 비를 뿌리던 구름이 하늘에 이리 저리 흩어져 있다. 그 구름 위를 비추는 동녘의 붉은 태양빛은 자못 위압적이기까지 하다. 매일 매일이 귀하지만, 새벽 붉은 빛이 감싸는 아침 하늘이 이토록 싱그럽고 가슴 뛰듯 몽글몽글한 적은 없었다.

 

순례길 떠나는 날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빛에 물든 장엄한 새벽하늘

누군가는 잘 알고 있고, 어떤 이는 들어본 적도 없는 길, 수많은 순례자들을 천년 넘도록 받아 준 ‘까미노 데 산티아고-프랑스길’, 그 800킬로미터를 가려고 한다. 그 곳은 서쪽의 끝, 땅끝이다. 과연 동쪽의 끝이라할만한 이 곳 강릉에서 서쪽의 끝으로 가는 것이다.

 

순례 여덟 번째 날, 로그로뇨에서 나헤라 가는 여정 중 나바례타 마을이 보이는 자작나무 동행 길

그런데 아내가 그처럼 고통스러운 밤을 보낸 것이다. 아내의 고통을 지켜만 봐야 하는 무력함이 가득한 밤이었다. 인천으로 나서는 공항버스편도 그렇고,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를 들러 바르셀로나까지 가는 여정이 아내에게 얼마나 큰 어려움일까를 생각해보니, 괜시리 마음 한 구석에서 어디를 향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원망이 일어난다. 못된 구석이 발동한 것이다.

 

‘두 마음’이 수도 없이 교차한다. 까미노의 길을 가는 순례자의 영적인 거룩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작위감 하나와, 여정의 처음 순간부터 무언가 고통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대한 불편함 하나가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나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강한 경향을 드러내곤 했다. 그것이 가정에서 더욱 그랬다. 가끔 아내는 나를 강력히 탄핵한다. ‘당신은 이중적이예요.’ 목사로서 성도와 이웃을 대하는 태도는 광명한 천사의 얼굴을 하지만, 남편이나 아버지로서 아내와 자녀들을 대하는 모습은 때로 ‘네로’와 같이,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과 같은 폭군이 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질타하는 것이다.

 

아내의 복통으로 불면의 밤을 지난 새벽, 순례길 출발하기 전 채비한 흔들리는 배낭

바울 사도가 고백한 것에 감히 비유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 것을 알지만 딱히 표현할 길이 없다.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나에게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 내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에 복종하고 있습니다.’(로마서 7:18-19, 25)

 

카스트로헤리즈에서 프로미스타 여정 중, 메세타 평원 지대, 멀리 오른쪽에 전형적인 메세타 지형이 보인다.

까미노를 출발하는 첫 날 마음은 그러한 것이었다. 두 마음이 서로 부딪혀 불편해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조금 더 이야기하면, 까미노를 걷고 난 이후에 무언가 변화하고, 진보하고, 성숙하고, 새로워진 존재를 기대하는가 하면, 까미노를 순례한들 본질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자조가 내적으로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내가 복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순간에 이러한 마음을 분명하게 확인하고 만 것이다. 이 두 마음은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본질이요 나의 실존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순례 출발 전 날,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의 프랑스마을 생장피드포르의 순례자협회사무실 근처의 조가비와 호리병, 지팡이 문양 장식

그래도 약속한 ‘길camino’은 가야한다. 미룰 수가 없다. 버스시간과 비행기 출발 시간에 매여 있든 매여 있지 않든 우리는 어디론가 가게 되어 있다. 꼬박 밤을 지새운 아내가 새벽 5시가 되니,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안정이 되는 듯하다. 새벽이 밝아오는 것과 같이, 아내의 고통의 어두움도 물러가고 있는 것이다.

 

강릉버스터미널에서 인천공항행 리무진 6시 차를 타야한다. 순례자요, 나그네가 되기 위한 채비를 이제 짊어진다. 삶의 무게가 뭉툭하게 어깨에 얹혀 진다. 동시에 신선함이 다가와 배낭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받쳐준다. 우리 삶의 여정에 파격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일어나면 배낭을 짊어지고 떠나라!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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