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죽 최복이 대표의 무릎경영 이야기 (2)

기차 안에서 “주님, 저에게 재정을 주세요. 우리가 잘되면 나눠 주고 꾸어 주고 베풀며 살겠습니다”하던 눈물의 기도가 응답되었던 것일까? 주님은 예상치 못한 때와 방법으로 응답해 주셨다.

하는 일마다 마이너스의 손을 증명하던 그녀의 남편(김철호 본죽 회장)이 드디어 마이더스의 손으로 변신하게 된 때가 찾아온 것이다. 30대 초반 무렵 순식물성 수입화장품 대리점 ‘바디&뷰티하우스’가 큰 히트를 친 것이다. 대리점을 400개나 거느린 촉망받는 기업인으로 변모하는 것은 일순간이었다. 강남의 멋진 사무실과 좋은 집 그리고 카폰이 달린 고급 자가용까지 굴리게 되니 ‘잘되면 나눠 주고 꾸어주고 베풀며 살겠습니다’하며 서원하던 기도를 잊어버린 것이다. 잘살게 되었는데도 만족 못하고 더 큰 부자가 되려는 욕심은 갑작스러운 IMF에 순식간 꺼져버린 물거품이 된 것이다.

남편이 망하자 그녀도 덩달아 죄인이 되었다. ‘세금 체납자, 신용불량자의 아내, 많은 대리점을 망하게 한 장본인’이라는 붉은 딱지가 최복이 대표의 마음을 짖눌렀다. 특히 연쇄 부도의 일파만파로 거래처 직원들과 그 가정들까지 고통을 당하게 한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

욕설과 원망의 쓰나미 뒤에 불면증과 실어증이 찾아왔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두려웠고 날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으며, ‘동반자살’ 하는 사람들의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노숙인 행색으로 도망 다니기 바빴다. 하지만 무책임하기는 싫었다. 그렇게 4년 가까이 남은 빚을 꾸준히 갚아나간 것이다.

하지만 최복이 대표의 심리는 더욱 불안해졌다. 결국 최 대표의 남편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녀를 집사님 차에 태우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떨어뜨렸다. 의사들이 찾아와 이것저것 묻더니 갑자기 두 팔과 발을 침대에 묶고는 어디론가 옮겨갔다. 그곳은 바로 ‘정신병동’이었던 것이다.

병실에서는 먹고, 자고, 목욕하는 세 가지 일상이 반복되었다. 며칠이 지난 저녁부터 간호사가 불을 끄고 나가면 그녀는 수면제를 먹는 대신 기도했다. “주님, 애들이 너무 보고 싶어요. 저 이제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 가서 예배드리게 해 주세요”

한 달여의 정신병동 입원 치료는 굉장히 큰 상처이자 낙인효과였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돼버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수면제만 의지하며 살 수 없었다. “하나님, 오늘은 제가 약 안먹고 자볼께요” 몇 번을 다짐해도 여지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모습 속에 사실 주님은 더 가까이하셨다. 그렇게 수면제도 점점 줄어들게 하시고 단잠도 주시었다. 돌아보면 최복이 대표에게 그 시간들과 환경은 최 대표를 새롭게 만드는 하나님의 작업대였다. 하나님은 그녀의 자아를 깎아내고 새롭게 빚어가고 계신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조심스레 물었다. “여보, 우리 호떡 장사해볼래? 내가 종로에서 기술도 사사하고 자리도 좀 알아봤는데 부지런하면 괜찮겠어.” 처음엔 너무 부끄럽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숙대 근처 건물 앞에 포장마차를 갖다 놓고 준비 완료했지만, 남편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 3, 4일나 걸릴 정도였다.

최 대표도 호떡장수의 아내로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하루 이틀 손님들을 대하며 부끄러워할 시간도 사라지고, 단 돈 500원짜리 호떡이라도 어떻게 손님들에게 다르게 보일 수 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더 큰 왕호떡, 단 것을 싫어하는 손님들을 위한 야채호떡, 식용유 대신 더 고소한 식감의 마가린까지 점점 그녀의 생업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날 새벽에 일어나 준비한 반죽을 포장마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하지만 포장마차가 보이지 않았다. 노점 단속반에게 빼앗긴 것이다. 이후에도 용업 업체가 갑자기 들이닥쳐 포장마차를 빼앗기 일쑤였다. 그렇게 매일 쫓고 쫓기는 시간이 이어질 무렵, 그녀의 가정이 어려웠던 시절 기도와 권면으로 큰 힘이 되었던 김영희 구역장님이 위암 말기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여유로울 때 은혜 갚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교차되었다. 최 대표가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나 김 집사님 꼭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100만 원 정도 드리고 싶어요” 짜내고 쪼개 기름 묻은 돈을 모아 한 달 여 뒤에 찾아간 병실에서 가쁜 숨을 쉬며 고통스러워하는 김 집사님의 손을 잡고 울며 서로를 위해 기도했다. 김 집사님은 평안한 얼굴로 그녀를 축복하며 말했다. “지혜 엄마 힘내! 다 잘 될 거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그리고 몇 달 뒤 천국으로 옮겨 가셨다.

1년의 호떡장사도 접어야 할 무렵. 남편의 친구 한 분이 종로에 외식컨설팅 회사를 차리면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했다. 최 대표가 하는 일은 주방보조였다. 말이 ‘최 대리’지 설거지, 청소, 냉장고 정리, 행주 삶기, 재료 사 오기 등을 하느라 존재감도 사라졌다. 또다시 깊은 절망감이 찾아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교회에 가도 목사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다. ‘내게 하나님이 계시기는 할까?’

그 무렵 송봉모 예수회 신부님이 쓴 ⌜고통 그 인간적인 것⌟, ⌜광야에 선 인간⌟이라는 두 권의 책을 닳도록 읽고 또 읽었다. 책을 통해 ‘인생의 광야는 기회의 시험장이고 하나님이 숨겨 둔 보물을 찾는 보물찾기 놀이터’라는 사실을 알았다. 진주조개에서 진주가 만들어지는 진리처럼 상처는 최 대표 안에서 하나씩 하나씩 진주 알갱이로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또 당시 최 대표는 아침마다 ARS 전화를 통해 듣는 조용기 목사님의 ‘3분 설교’가 큰 힘이 되었고, 조용기 목사님의 책 ⌜4차원의 영성⌟을 읽으며 묵상하게 된 민수기 14장 28절의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시행하리니”라는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부정적이고 불평불만 원망과 걱정의 언어들을 입에서 걷어내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그녀에게 복을 주시기 전에 이 두 가지 훈련을 통해 ‘고난의 축복’과 ‘언어의 축복’을 준비하게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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