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세균은 우리의 친구

「나는 미생물 군단이다」

▶ 우리의 피부를 크게 확대해보면 세균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동그란 구슬형, 소시지 모양의 막대형, 쉼표처럼 생긴 콩형의 세균들이 있는데, 각각의 너비는 1미터의 수백만분의 1에 불과하다. 그들은 크기가 너무 작아서, 숫자가 그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합쳐봤자 무게는 몇 파운드(1파운드 = 0.45킬로그램)밖에 안 된다. 세균을 10열종대로 세워놓아도, 인간 머리칼 여유있게 올라설 수 있다. 핀의 머리 위에서는 100만 마리의 세균들이 군무(群舞)를 출 수 있다.

현미경 없이 미생물을 직접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우리는 미생물로 인해 발생한 결과만을 주목할 뿐인데, 특히 결과가 부정적인 경우에는 난리법석을 떤다. 장염에 걸렸을 때는 고통스러운 경련을 경험하고, 비염에 걸렸을 때는 재채기를 주체할 수 없다. 맨눈으로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을 볼 수 없지만, 결핵 환자의 피가래는 볼 수 있다. 또 다른 세균인 페스트균(Yersinia pestis)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초래하는 페스트의 참상은 너무나 명확하다. 이러한 병원균들은 역사를 통틀어 인간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고, 지워지지 않는 문화적 상처를 남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미생물을 세균으로 간주하고,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꼭 피해야 하는 전염병을 가져다주는 불청객쯤으로 여긴다.

신문에서는 정기적으로 희귀한 스토리를 퍼뜨리는데, 내용인즉 키보드, 휴대폰, 문고리와 같은 일상용품들이 세균에 뒤덮여있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그런 기사를 읽을 때마다 숨이 턱 막히게 된다. 변기 시트 위에 세균이 우글거린다는 기사는 더욱 가관이다. 신문기자들의 의도는 간단하다. ‘그 미생물들은 오염원이며,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곧 오물, 불결함. 임박한 질병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고정관념은 지극히 불공평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미생물들은 병원균이 아니어서, 우리를 병들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균 중에서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종은 100가지 미만인 데 반해, 위장관에 서식하는 수천 가지 종은 대부분 무해하다. 위장관에 서식하는 세균들은 최악의 경우 승객이나 무임승차자이며, 최선의 경우 인체의 귀중한 부분으로서 생명을 빼앗기는커녕 되레 지켜준다. 그들은 비밀장기(hidden organ)처럼 행동하며 위장이나 눈만큼이나 중요하지만, 하나의 통합된 덩어리(unified mass)가 아니라 우글거리는 수조 마리의 개별세포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어떤 익숙한 신체부위들보다 훨씬 더 다재다능하다. 우리의 세포들은 20,000~25,000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지만, 우리 몸속에 있는 미생물들은 그보다 약 500배나 많은 유전자를 갖고 있다. 이런 유전적 풍요로움은 빠른 진화와 맞물려, 미생물을 생화학계의 명장(virtuoso)로 만든다. 그들은 어떤 도전에도 대응할 수 있다. 그들은 음식물의 소화를 도와주고,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영양소를 방출하며, 우리의 식단에 결여된 비타민과 미네랄을 생성한다. 독소와 위험한 화학물질을 분해하며, 항균물질을 직접 분비하여 위험한 미생물들을 쫓아내거나 죽임으로써 우리를 질병에서 보호해준다. 우리가 냄새맡는 방법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을 생성하기도 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필수불가결한 존재여서, 우리는 놀랄 만한 삶의 측면들을 그들에게 맡겨왔다. 마치 외주업체처럼 말이다. 그들은 신체의 구성을 안내하고, 장기의 성장을 조종하는 분자와 신호를 분비한다. 아군과 적군을 구별할 수 있도록 면역계를 교육시키고, 신경계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 우리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그들은 심오하고 광범위한 방법으로 우리의 삶에 기여하며, 우리의 생물학에서 그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분야는 한 군데도 없다. 만약 그들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열쇠구멍을 통해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는 꼴이 된다.

※ 출처: 에드 용, 『나는 미생물 군단이다』(가칭)

양병찬(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포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풍부한 인생경험을 살려 의약학, 생명과학, 경영경제, 스포츠,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을 번역 출간했다. 매주 Nature와 Science에 실리는 특집기사 중에서 바이오와 의약학에 관한 것들을 엄선하여 실시간으로 번역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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