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체(個體)란 무엇인가? 6. 우리는 모두 섬, 아니 군도(群島)다.

※ 그림 설명: 동물의 위장관, 구강, 피부 등에 존재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은 동물의 다양한 장기와 신호를 교환한다. Credit: Margaret McFall-Ngai, et al. ©2013 PNAS

5.개체(個體)란 무엇인가?

미생물과 동떨어진 개체의 독립성, 자유의지, 정체성은 존재하는가?

▶ 미생물이라는 렌즈를 통해 동물계를 들여다보면, 가장 익숙한 삶의 부분일지라도 경이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이에나가 자신의 취선臭腺을 풀잎에 비빌 때, 냄새에 포함된 미생물이 자서전을 기록함으로써 다른 하이에나들로 하여금 그것을 읽게 해준다. 미어캣의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먹일 때, 새끼의 위장관 속에는 하나의 세상이 형성된다. 아르마딜로가 개미 한 입을 후루룩 들이마실 때, 그는 수십조 마리의 미생물 집단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미생물 집단은 답례로 아르마딜로에게 에너지를 공급한다. 랑구르나 인간이 병에 걸리면, 망가진 생태계(조류algae로 뒤덮인 호수, 잡초로 뒤덮인 초원)와 비슷한 문제를 겪게 된다.

우리의 삶은 체내에 주둔하는 외부세력external force의 영향력 하에 놓여있는데, 그들은 수십 조 마리의 미생물로 구성된 군단으로서, 우리와 별개의 세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에서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 체취, 건강, 소화, 발육, 그리고 수십여 가지의 특성에 이르기까지, 외견상 개인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이 사실은 숙주와 미생물 간의 복잡한 타협의 산물이다.

이쯤 됐으면 존재론의 문제로 넘어가기로 하자. 미생물의 존재를 감안한다면, 하나의 개체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첫 번째로 해부학적 관점에서 보면, 개체란 ‘특정한 신체의 소유자’를 뜻한다. 그러나 미생물은 숙주와 똑 같은 장소를 점유하는 공동 거주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두 번째로 발생학적 관점에서 보면, 개체란 ‘하나의 수정란에서 생겨난 모든 것’을 뜻한다. 그러나 오징어에서부터 쥐, 제브라피시에 이르기까지, 많은 동물들은 유전자와 미생물이 공동으로 코딩한 암호를 이용하여 신체를 구성하며, 무균배양기 속에서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세 번째로 생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개체는 (전체의 이익을 위해 협동하는) 여러 부분(조직과 장기)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세균과 숙주의 효소가 협동하여 필수영양소를 생성하는 곤충을 생각해보라. 그 경우 미생물은 전체의 한 부분이며, 필수불가결한 부분임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유전학적 관점에서 보면, 개체는 동일한 유전체를 공유하는 세포들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우리는 발생학이나 생리학과 똑 같은 문제점에 직면한다. 모든 동물은 자신만의 유전체를 보유하고 있지만, 많은 세균의 유전체들도 덤으로 보유하고 있어서 삶과 발육에 영향을 받는다. 미생물의 유전자가 숙주의 유전체에 영구적으로 침투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 숙주를 미생물과 독립된 개체로 간주할 수 있을까?

핑곗거리가 다 떨어졌다면, 면역계에 눈을 돌려보자. 면역계란 우리의 세포를 침입자의 세포와 구별하기 위해 존재하니 말이다. 이걸 유식한 말로, “자기self와 비자기non-self를 구별한다”고 부른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우리 몸에 상주하는 미생물들이 면역계의 확립을 도와주며, 면역계는 미생물에게 관용을 베푸는 법을 배운다. 어떤 구실을 들이대더라도, 미생물이 우리의 개체관념notion of individuality을 송두리째 뒤집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미생물도 개체를 형성하는 게 분명하다. 당신의 유전체는 나의 유전체와 대체로 비슷하지만, 마이크로바이옴과 바이롬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그러니 ‘내가 미생물 군단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하기보다는, ‘나 자체가 미생물 군단이다’라고 말하는 게 더 옳다.

이런 개념들은 우리를 매우 불안하게 만든다. 독립성, 자유의지, 정체성은 우리 삶의 핵심 주제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의 선구자인 데이비드 렐먼은 언젠가 이렇게 지적한 적이 있다. “’자아정체감 상실’, ‘자아정체성에 관한 망상’, ‘외부의 힘에 조종당한 경험’은 모두 정신병의 잠재적 징후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니 최근 발표된 공생에 관한 연구결과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래지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런 연구들은 생물학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킨다. 인간은 사회적 생물로서, 다른 생물체와의 관련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공생은 ‘협동을 통한 성공’의 궁극적 사례이며, ‘친근한 관계’의 강력한 혜택이다.”

 6. 우리는 모두 섬, 아니 군도(群島)다.

▶ 다윈, 월리스, 그밖의 동료들은 특히 섬에 매혹되었는데,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섬은 원하면 언제든 갈 수 있으며, 그곳에서는 토종생물들이 가장 특이한 모양, 가장 야한 색깔, 가장 양호한 상태로 존재한다. 섬은 고립되고, 경계가 분명하고, 크기가 제한되어 있어 생물의 진화를 가능케 한다. 광대하고 인접된 본토에 비해, 섬의 생물학적 패턴은 집중적 분석이 용이하다.

그러나 섬이 반드시 ‘물에 둘러싸인 땅’일 필요는 없다. 섬을 ‘빈 공간으로 둘러싸인 세계’로 정의한다면, 미생물의 경우에는 모든 숙주들이 곧 섬인 셈이다.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앞으로 내밀어 바바를 건드렸던 나의 손은 바다를 건너는 뗏목 한 조각에 비유될 수 있다.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섬을 떠나 천산갑(pangolin) 비슷하게 생긴 섬으로 항해하는 뗏목 말이다. 콜레라에게 유린당한 성인成人은 외계의 뱀에게 침입당한 괌Guam에 비유할 수 있다. 인간과 섬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천만의 말씀. 세균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 인간들은 모두 섬인 것이다.

사실 모든 개인들은 하나의 섬보다는 군도群島에 더 가깝다. 신체의 각 부분들은 각자 독특한 미생물상microbial fauna을 갖고 있다. 마치 갈라파고스 제도의 다양한 섬들이 각각 특별한 거북과 핀치를 갖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피부는 프로피오니박테륨Propionibacterium, 코리네박테륨Corynebacterium, 포도상구균Staphylococcus의 영토인데 반해, 위장관을 지배하는 것은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이고, 여성의 질膣을 지배하는 것은 유산균Lactobacillus이고, 구강을 지배하는 것은 연쇄상구균Streptococcus다. 게다가 모든 장기organ들 역시 다양해서, 소장小腸의 초입에 서식하는 미생물은 직장rectum에 서식하는 미생물과 매우 다르다.

치태dental plaque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경우, 잇몸선gumline 위에 사는 것과 아래에 사는 것이 다르다. 피부의 경우, (기름기가 많은 얼굴과 가슴의) 기름호수에 서식하는 미생물은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의) 열대우림에 사는 미생물이나 (앞팔과 손바닥의) 사막에 사는 미생물과 다르다. 손바닥은 또 어떤가? 오른손은 왼손과 1/6의 미생물종을 공유할 뿐이다. ‘신체부위에 존재하는 미생물의 다양성’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미생물의 다양성’을 초라하게 만든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의 앞팔에 서식하는 미생물’은 ‘당신의 구강에 서식하는 미생물’보다 ‘내 앞팔에 서식하는 미생물’에 더욱 가깝다.

※ 출처: 에드 용, 『나는 미생물 군단이다』(가칭)

양병찬(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포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풍부한 인생경험을 살려 의약학, 생명과학, 경영경제, 스포츠,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을 번역 출간했다. 매주 Nature와 Science에 실리는 특집기사 중에서 바이오와 의약학에 관한 것들을 엄선하여 실시간으로 번역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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