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미생물과 질병 간의 관련성 증명: 파스퇴르와 코흐

▶ 오늘날 미생물은 흔히 먼지나 질병과 연관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므로, 만약 당신이 누군가에게 “당신의 입 속에 미생물 군단이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준다면, 그 사람은 역겨워하며 펄쩍 뛸 것이다. 하지만 레이우엔후크는 그런 혐오감을 전혀 품고 있지 않았다. “수천 마리의 미생물이 있다고? 내가 마시는 물 속에? 내 입 속에? 모든 사람의 입 속에?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설사 미생물이 질병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더라도, 그는 자신의 저술에서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의 저술은 추측을 남발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자제력을 발휘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1762년 빈Wien의 의사 마르쿠스 플렌치즈는 “미생물이 인체 내에서 증식함으로써 질병을 일으키고, 공기를 통해 전염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선견지명을 발휘하여 “모든 질병들은 각자 고유의 미생물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유감스럽게도 증거를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외견상 하찮아 보이는 미생물들이 사실은 중요하다”고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한 비평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처럼 어처구니 없는 가설에 반박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겠소.”

19세기 중반에 들어와, 자만심에 가득 차 대립을 일삼던 프랑스의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 덕분에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세균이 술을 식초로 만들고 고기를 썩게 만든다’는 사실을 연달아 증명한 후 이렇게 주장했다. “만약 발효와 부패의 주범이 세균이라면, 질병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배종설germ theory은 오랫동안 이어져내려온 자연발생설spontaneous gemeration에 반박하는 이론으로서 플렌치즈 등에 의해 옹호되었지만, 아직 논란이 많았다. 사람들은 흔히 “썩어가는 물질이 내뿜는 나쁜 공기, 즉 독기miasma가 질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1865년 파스퇴르는 사람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그는 ‘미생물이 프랑스의 누에에게 두 가지 질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는 감염된 알을 분리함으로써 질병이 전염되는 것을 막아 잠사업silk industry을 위기에서 구했다.

한편 독일에서는 로버트 코흐라는 내과의사가 (지역의 농장에서 사육하는 동물을 휩쓸던) 탄저병을 연구하고 있었다. 다른 과학자들은 동물의 시체에서 탄저균Bacillus anthracis 을 발견했다. 1876년 코흐는 이 미생물을 쥐에게 주입해 보고, 그 쥐가 죽은 것을 확인했다. 그는 이 암울한 과정을 20세대에 걸쳐 집요하게 반복하여, 번번이 똑 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내 코흐는 세균이 탄저병을 일으킨다는 결론을 내렸다. 배종설이 옳았던 것이다.

 

★ (나는 미생물 군단이다)

7. 미생물생태학 성립, 공생 개념 탄생

"공생이라는 개념은 불행한 시기에 탄생했다. 생물학자들은 다윈주의의 그늘에서 적자생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연의 이빨과 발톱은 시뻘겋게 묘사되었고, 다윈의 불독인 토머스 헉슬리는 동물계를 ‘검투쇼’에 비유했다. 협동과 팀워크를 주제로 하는 공생 개념은 갈등과 경쟁이라는 프레임 안에 거북하게 놓여 있었으며, 미생물을 악당으로 간주하는 생각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 배종설(germ theory)을 옹호하는 학자들이 치명적인 병원체를 하나씩 확인하며 세상에서 각광받고 있을 때, 어떤 생물학자들은 미생물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며 묵묵히 구슬땀을 흘렸다.

네덜란드의 마르티뉘스 베이예링크는 미생물의 지구적 중요성을 처음으로 증명한 생물학자들 중 한 명이었다. 은둔적이고 무뚝뚝하고 인기가 없던 그는 (절친한 동료 몇 명만 빼고)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의료미생물학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질병은 그의 관심 밖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딱 하나, 미생물을 천연 서식지(예: 토양, 물, 식물의 뿌리)에 있는 그대로 연구하는 것이었다.

 

1888년 베이예링크는 공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사용할 수 있는) 암모니아로 전환시키는 세균을 발견했고, 나중에는 황sulphur이 토양과 대기를 순환하도록 도와주는 종種을 분리했다. 그의 연구를 계기로 하여, 그가 살던 델프트에서는 미생물학이 부활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델프트로 말하자면, 2세기 전 레이우엔후크가 미생물을 처음으로 들여다봤던 유서깊은 도시였다. 새로 탄생한 델프트 학파는 자신들의 지적知的 소울메이트인 러시아의 세르게이 비노그라드스키와 함께 자칭 미생물생태학자microbial ecologist라고 불렀다. 그들은 “미생물이 인류를 위협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세상의 주요 구성요소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전환점에서, 미생물학자들은 “많은 미생물들이 동물, 식물, 기타 가시적인 생물들과 신체를 공유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들은 담벼락, 바위, 나무껍질, 통나무에서 드문드문 자라는 울긋불긋한 지의류lichen가 복합생물composite organism임을 알게 되었다. 즉, 지의류는 미세한 조류algae와 균류의 공생체로서, 조류는 진균에게서 미네랄과 수분을 공급받는 대신 영양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말미잘이나 편형동물의 세포에도 조류가 있고, 왕개미의 세포에도 살아있는 세균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나무 뿌리에서 자라는 균류는 오랫동안 기생충으로 생각됐었지만, 탄수화물을 공급받는 대가로 질소를 제공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동반자 관계는 공생symbiosis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얻었는데, symbiosis는 ‘함께’와 ‘삶’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를 합쳐 만든 것이다. 공생이라는 개념은 불행한 시기에 탄생했다. 생물학자들은 다윈주의의 그늘에서 적자생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연의 이빨과 발톱은 시뻘겋게 묘사되었고, 다윈의 불독인 토머스 헉슬리는 동물계를 ‘검투쇼’에 비유했다. 협동과 팀워크를 주제로 하는 공생 개념은 갈등과 경쟁이라는 프레임 안에 거북하게 놓여 있었으며, 미생물을 악당으로 간주하는 생각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파스퇴르 이후 미생물의 존재는 질병의 징후가 되었고, 미생물의 부재不在는 건강한 조직의 결정적 특징이 되었다.

1884년 프리드리히 블로흐만이 왕개미의 세균을 처음으로 관찰했을 때, 무해한 상주미생물harmless resident microbe은 직관에 너무나 어긋나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실 그대로 기술하기’를 회피하기 위해 말장난을 했다. 그는 왕개미의 세포에 존재하는 세균을 형질막대plasma rodlet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알egg의 형질이 매우 독특한 섬유 모양으로 분화했음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는 몇 년 동안 엄밀한 연구를 수행한 끝에, 1887년 입장을 분명히 하기로 마음먹고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이 조그만 막대 모양의 물체들을 세균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 출처: 에드 용, 『나는 미생물 군단이다』(가칭)

양병찬(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포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풍부한 인생경험을 살려 의약학, 생명과학, 경영경제, 스포츠,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을 번역 출간했다. 매주 Nature와 Science에 실리는 특집기사 중에서 바이오와 의약학에 관한 것들을 엄선하여 실시간으로 번역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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