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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야 할 사순절과 그 폐단고기 등을 금식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고 믿는가?
김수경 미국지사장, †he 2nd Life Foundation, 뉴욕퀸즈교회
 사순절이란 초대교회 시절부터 A.D. 3세기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이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한 것으로 로마교회가 부활주일 전날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간을 지키도록 정한 절기이다. 왜 40일을 지키는가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하셨고, 모세도 40일간 금식기도를 했으며, 이스라엘도 40년간 광야 생활을 했다는 것에서 온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영국의 목사인 알렉산더 히슬롭(Alexander Hislop)은 다르게 말한다. 창세기(10:8-9)에 나오는 우상숭배의 창시자 니므롯의 아들 담무스(Tammuz, 겔 8:14)는 멧돼지에게 받혀서 40세에 죽었는데, 그가 살아온 햇수를 날로 바꾸어서 즉 40년을 40일로 해서 담무스를 위해 애곡하려고 따로 정해진 날이라고 말한다. 
 
"고대에는 이 40일 동안 그의 은총을 새로이 얻고자 즉, 그가 지하 세계에서 나와 봄을 시작하도록 자기 스스로를 매질하는 풍습을 지켰고... 이교도들 가운데서 이 사순절이 담무스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연례 대축제의 필수적 전제 조건이 된 것처럼 보였다”고 하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아닌, 우상숭배자이며 우상인 담무스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란 말이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겔 8:14)
 
사순절을 만들어놓고, 교회는 성경적으로 예수님과 모세 등의 40일간 금식한 사건을 갖다 부치고 있으나 사실 억지춘향이 격인 셈이다. 사순절만 되면 술과 고기와 우유를 먹지 못하게 하는데, 그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사순절 전 일주일간 사육제(카니발 Carnival)가 열린다. 카톨릭 나라에서는 사순절 전에 카니발 축제가 열리는데, 이때에는 사람들이 술과 향락 등 온갖 더러운 짓을 해도 이 기간만큼은 모든 죄에 대하여 고해성사만 하면 되기 때문에 마음껏 타락의 도가니에 빠진다.
 
카니발의 뜻은 '육식이여 안녕~'(farewell to meat)이라는 뜻이다. 독일에서는 '악마가 놓임을 받았다(der Teufel ist los)'라는 표현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마귀의 분장을 한다. 너무나 유명한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Rio de Janeiro)에서 열리는 리오카니발(Canival in Rio)은 사순절 전에 실컷 먹고 마시고 춤추고 즐기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완전히 상업화가 되어서 해마다 6만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다. 특히 브라질 당국이 이때만 되면 에이즈를 예방하기 위하여 수천만개의 콘돔을 무료로 나누어주고 있다. 이때만 되면 수백명이 죽고 수많은 사람이 광란의 도시에서 섹스와 폭력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다. 
카니발이 끝난 다음날에는 카톨릭 성당 앞에 수많은 간음 죄인들이 고해성사를 하기위해 몰려든다. 고기를 못 먹고 육체의 정욕을 죽이는 사순절을 지키기 위해 행해지는 이러한 광란의 카니발이 있는 사순절을 우리는 왜 지켜야 한단 말인가?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롬 6:1-2, 12-15)
 
예전에 뉴욕의 어느 교회에서 해마다 뮤지컬을 하는데, 한번은 필자가 전도사 시절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런데 커튼콜(curtain call)을 연습하는데, 20대 여자 안무가는 완전 락뮤직으로 만들어놓은 "예수 사랑하심은"을 틀어놓고 "거룩하신 말일세"라는 부분에서는 히프를 야하게 흔들어대게 했다. 중학생부터 권사님들까지 함께 있는 상황에서 중고등 학생들은 너무나 신이 났다. 평소에 교회에서는 경건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교회에 와서 나이트클럽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가사만 찬송일 뿐)을 틀어놓고, 그런 곳에서 추는 춤을 가르쳐주며 추라고 하니 얼마나 재미가 있겠는가? 결국 어른 몇 사람은 혀를 차며 그만두었다. 
 
너무나 기가막혀서 필자는 담임목사에게 보고를 했다. 그랬더니 그 목사는 남미에서 살다가 온 사람이라서 "거룩이란 단어가 나올 때마다 히프를 흔드는데, 목사님께서 이 기회에 안무하는 여학생이나 다른 학생들에게 거룩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시면 어떠실지..."라는 말에 "전도사님은 꽤 보수적인가봐요? 브라질에 가보세요. 거기 카니발에 가면 모두다 홀딱 벗고, 그 정도는 춤도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대화가 되질 않았다. 
 
물론 그 교회는 사순절만 되면 '특새'를 한다. 평소에는 담임목사가 월요일만 새벽기도회에 나오고 다른 날은 나오지 않다가 사순절에만 특별새벽기도회를 만들어놓고 한다. 평소에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지 않다가 갑자기 하려니 40일간인데도 그것도 힘들어한다. 그래서 본인이 힘들면 20일을 하다가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쉬었다가 다시 20일을 한다. 물론 다시 할 때까지 담임목사는 새벽기도회에 나오지 않는다. 정말 하나님은 온데 간데 없이 모두가 담임목사 위주이다. 이것이 오늘날 사순절을 지킨다고 하는 한국교회의 현주소이다. 예배부터 모든 것에서 그리스도와 성령없이 하려니 힘이 든다. 
 
성령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목회를 하고, 그리스도가 주인이 아닌데 주인으로 모시는 척 하며 살려니 마치 소가 푸주간에 끌려가는 것처럼 모든 것이 억지로 힘들게 끌려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아닌데 그리스도인인 척하며 목사를 직업으로 생각하고 돈벌이를 하려니 사람들 앞에서 형식적인 무언가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이 사순절과 같은 기간을 만들어놓고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그것을 강요당하는 사람은 자신들이 힘들기 때문에 그 힘든 일을 시키는 사람을 자기보다 경건한 사람처럼 보게 되므로 더욱 이러한 행사에 열을 올린다. 
물론 전통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사순절에 대해 의심해보지 않고 교회력에 따라 하는 목사나 교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알면서도 인본주의적으로 교회가 그 동안 사순절을 지켜왔기 때문에 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어보이거나 또는 지적 당하는 것이 싫어서 또는 교인들이 목회자를 이상하게 보는 경우도 있어서 할 수 없이 하는 교회도 있다. 사순절을 지키지 않으면 예수를 믿지 않는 거라고 매우 급진적으로 믿고 생각하는, 견고한 진이 너무나 단단해서 부술 수 없는 교인들이 상상외로 너무나 많다.
 
또한 사순절에 특새를 하는 교회들 중에 성경보다 양서를 갖고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이 <목적이 이끄는 삶>이다. 이러한 것이 벌써 과녘에서 빗나간 것이다. 어떻게 성경을 버리고 사람이 만든 책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말인가!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의 말씀을 버리고 인간이 쓴 것을 계시의 말씀인냥 채택한단 말인가! 성경을 기본으로 하고 양서의 내용을 인용하는 것은 괜찮지만, 양서 안에 하나님에 대한 말이 있다는 구실로 성경보다 그것을 더 선호한 결과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 책의 저자의 문제점을 온 세상에 드러나게 하심으로 질투의 하나님께서 분노하심을 보여주지 않으셨는가!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7)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29-30)
 
우리도 하나님보다 우리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의를 구하며 우리가 선을 행할 수 있을 것처럼 사순절과 같은 절기를 만들어서 지켜온 것을 회개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도 않으면서 마치 사순절만 지키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서 성경에도 없는 절기를 지키며 예수님의 고난에 충분히 동참했다고 스스로 위로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허물도 드러내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결코 어떠한 선도 행할 수 없으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 be illogical)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항상 겸손하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로마 카톨릭에서 만들어낸 사순절과 카니발... 개신교에서는 사순절만 받아들여서 지키고 있으나, 성경에도 없는 절기를 만들어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성경을 정말로 모르고 하는 말이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삶 속에서 고난과 핍박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기간을 만들어놓고 그 기간에 고기와 우유를 먹지 않고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고 즐거워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절제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유대의 장로들이 장로의 유전을 만들어놓고 지키라고 했던 율법주의와 다를 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칼빈과 쯔빙글리 등 종교개혁자들은 사순절을 폐지하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왜냐하면 사순절을 지키는 모습이 미신을 믿는 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으며 또한 금식이나 고기와 우유를 먹지 않는 것을 자신들의 공로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부유한 이들이나 고관들은 버터 식용 허가증을 받아서 다른 이들이 금식하고 있는 기간에도 계란과 버터와 우유 등을 먹을 수 있었고 종합 면제권을 받았다. 그리고 고기를 먹지 않는 대신에 더욱 달고 맛있는 것들을 먹었다. 지금의 교인들도 고기만 먹지 않을 뿐, 고기 이외의 모든 달콤한 것들은 다 먹고있지 않는가?
 
로마 카톨릭은 사순절 기간동안 고기를 먹지 못하기 때문에 사육제를 만들어서 그 기간동안 고기를 많이 먹게 한 뒤에 점점 고기의 양을 줄여서 사순절 기간에는 고기를 먹지 않게 했다. 어떻게 고기를 먹지않는 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채식주의자들은 매일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란 말인가? 일주일간 고기로 배를 잔뜩 채운 뒤에 40일간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고난이 아니라 너무나 쉬운 일이다. 고기가 질리면 한달 간은 보고 싶지도 않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 그것이 어떻게 고난인가?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로마 카톨릭의 보속, 고해성사, 연옥과 면죄부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뭔가 부족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자신이 거기에 뭔가를 덧붙이고자 해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긍휼이 아닌 다른 곳에 어떤 성인의 품격을 세우는 자는 하나님과 그의 그리스도를 모욕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이 때, 과거 종교개혁자들이 로마 카톨릭의 고행과 금욕의 행위들을 없애고 500년이 지난 지금, 교회가 다시 그 행위들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신 것으로 우리의 죄가 사하여졌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대로 주님과 동행하며 매일을 기쁘게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초대교회에서 했던 것처럼 예수께서 정말로 고난을 당하신 고난주간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의 금욕적인 행위와 어떠한 고행도 우리를 결코 의롭게 할 수 없다. 우리가 행위로 의롭게 되고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돼지와 같은 크리스천이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겉은 굽이 갈라져서 크리스천의 외모를 하고 있으나 새김질을 하지 않는 가짜 크리스천!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돼지를 그렇게 미워하셨던 것이며 거룩한 성도는 속과 겉이 다른 부정한 돼지를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던 것이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0-22)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케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를 따라 돼지 고기와 가증한 음식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66:17)
 
우리는 성경에 있는 말씀도 다 지킬 수 없는 죄인이다. 성경에 있는 것도 "신약에 와서는... 요즘은..."하면서 합리화시키고 율법화시켜서 지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죄인들이다. 성경에 있는 것도 지키지 못하면서, 아니 지키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다른 것을 더 만들어 지키려고 하는 우리의 '자기 의'를 이제는 버려야 한다. 
 
율법은 우리가 모든 것을 지킬 수 없음을 깨닫고 그 결과 우리는 율법을 지켜서 의인이 될 수 없으며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예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율법을 지켰다고 간주해주시며 의인으로 칭해주시는 것이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 10:2-3)
 
주 안에서 금식하지 않고 즐거워한다고 정죄하는 자들이 바로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같은 자들이다. 그렇다고 금식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은 사순절에 관해서만 말하는 것이므로 오해가 없어야 한다. 주께서 구원할 자들을 심방하실 때에는 금식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즐겁게 식사를 하신 것처럼, 우리도 주의 일을 할 때에는 열심히 먹고 힘을 얻어서 기쁨으로 사역을 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것처럼, 현대의 바리새인들이 만들어놓은 것들을 성경말씀보다 더 열심히 지키려는 그 욕망을 버려야 한다. 열심히 지켜서 자신의 공로를 쌓고, 자기 의를 높이려는 그 교만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죄인들을 찾아가서 그들과 함께 먹고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마 11:18-19)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09문은 성경에 없는 것을 만들어 지키는 것이 십계명의 제2계명을 범하는 죄라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제2계명에서 금지된 죄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지 않으신 어떤 종교적 예배를 고안하고, 의논하며, 명령하고, 사용하고, 어떤 모양으로 인정하는 것들이며, 거짓 종교를 용납하는 것과 하나님의 삼위(三位)나 그 중 어느 한 위의 형상이라도 내적으로 우리 마음속에 가지든지, 외적으로 피조물의 어떤 형상이나 모양으로 만든 것(그림, 조각상, 영상화)이며, 이 형상이나 혹은 이 형상 안에서 이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일이며, 거짓 신들의 형상을 만들고, 그들을 예배하거나 또는 그것들에 속한 것을 섬기는 것이며, 우리 자신들이 발명하고 취하든지, 전통을 따라서 사람들로부터 받았든지, 옛 제도, 풍속, 경건, 선한 의도, 혹은 다른 어떤 구실의 명목으로 예배에 추가하거나 삭감하여 하나님의 예배를 부패케 하는 미신적 고안, 성직 매매, 신성 모독, 하나님이 정하신 예배와 규례들에 대한 모든 태만과 경멸, 방해, 반대하는 것입니다.” 

김수경목사  kimsoogy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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