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토콘드리아는 본래 미생물이었다.

우리 인간의 세포 속 신진대사 발전소인 세미토콘드리아는 본래 미생물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간혹 세포 밖으로 유출되면, '나쁜 미생물'의 본색을 드러내기도 한다.

▶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의 필수적인 소기관인 동시에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공생세균으로서, 모든 동물의 세포 내에 존재하는 발전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토콘드리아가 번짓수가 틀리는 곳으로 이동하여 조직을 손상시킬 수도 있다. 예컨대, 당신이 칼에 베이거나 타박상을 입을 경우, 세포의 일부가 파열되어 미토콘드리아 조각이 혈류 속으로 누출될 수 있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는 아직도 고대 세균의 성질을 일부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당신의 면역계가 미토콘드리아를 발견하면, ‘감염이 진행되고 있나 보다’라고 착각하고 강력한 방어행동을 시작한다. 만약 손상이 심각할 경우 더욱 많은 미코콘드리아가 방출되므로, 전신에 염증이 일어나 전신염증반응증후군 systemic inflammatory response syndrome(SIRS)라는 치명적 질병으로 발전한다.

SIRS는 원래의 상처나 손상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인체가 20억 년 이상 길들여진 미생물(미토콘드리아)에게 실수로 과잉반응을 보이다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모든 미생물이 마찬가지다. 잡초도 자리만 잘 잡으면 화초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장내미생물들도 장기 속에 있을 때는 필수불가결하지만 다른 장소로 이동하면 위험할 수 있다. 본래 미생물이었던 미토콘드리아도 세포 속에 있을 때는 필수적이지만, 세포 밖으로 나가면 치명적일 수 있다.

산호 생물학자인 포리스트 로워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면역력이 잠시 동안 약화되면, 미생물들이 당신을 죽일 것이다. 당신이 죽으면, 그들이 당신을 먹어치울 것이다. 그들은 아무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과 우리는 무조건 사이좋게 지내는 게 아니라, 단지 생물학적 원리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좋은 세균'과 '나쁜 세균'은 없다. 조건과 상황이 중요하다.


▶ ‘미생물과 함께 산다는 것’의 혜택을 논하는 책에서, 이상야릇하지만 매우 중요한 감정을 건드려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좋은 미생물’과 ‘나쁜 미생물’에 관한 감정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이 세상에 ‘좋은 미생물’이나 ‘나쁜 미생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용어는 어린이들 동화책에나 나오는 것이며, 자연계에 존재하는 복잡하고 괴팍하고 맥락적인 관계를 기술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현실에서, 모든 세균들은 ‘나쁜 기생자’와 ‘좋은 상리공생자’라는 극단적 생활방식 사이의 어디쯤엔가 존재한다. 이를테면 월바키아는 균주와 숙주에 따라 기생자-상리공생자 스펙트럼의 양극단 사이를 오간다. 그러나 많은 세균들은 동시에 양극단에 존재한다. 예컨대 위장에 사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위궤양과 위암을 초래하지만, 식도암을 예방해 주기도 한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악과 선을 행하는 세균이 동일하다. 어떤 세균들은 동일한 숙주 안에서 상황에 따라 역할을 바꿀 수도 있다. 이런 사실들로 미뤄볼 때, 상리공생자, 편리공생자, 병원균, 기생자와 같은 꼬리표는 고정된 정체를 알려주는 명찰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 state of being(배고픔, 살아있음, 깨어있음)나 행동(협동, 투쟁)을 지칭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런 것들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나 동사에 가까우며,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두 파트너 간의 관계를 기술할 뿐이다.

니콜 브로데릭은 바실러스 투린기엔시스 Bacillus thuringiensis(Bt)라는 토양미생물을 연구하다 대단한 사례를 발견했다. Bt는 독소를 생성하는데, 그것은 위장관에 구멍을 뚫음으로써 곤충을 살해한다. 농부들은 1920년대 이후 이 능력을 이용하기 위해, Bt를 산 채로 농작물에 살포해 왔다. 심지어 유기농 농민들도 이런 방법을 이용한다. Bt의 효과는 부정할 수 없지만, 과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Bt가 곤충을 살해하는 방법’을 잘못 이해해 왔다. 그들은 독소가 너무 많은 손상을 입히기 때문에 곤충들이 굶어죽는다고 가정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스토리의 전부가 아니다. 유충들이 굶어죽는 데는 일주일 이상이 소요되는데, Bt는 그들을 3~4일 내에 살해하기 때문이다.

브로데릭은 우연한 기회에 실상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장내미생물이 곤충의 유충들을 Bt의 독소에서 보호함으로써 생명을 연장해줄 거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항생제로 처리한 후 Bt에 노출시켰다. 미생물이 사라졌으니, 유충들은 훨씬 더 빨리 죽을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유충들이 전부 살아남은 것이다. 면밀히 분석해본 결과, 놀라운 비밀이 밝혀졌다. 장내미생물은 유충을 보호하는 우군이 아니라, 되레 Bt와 내통하여 유충을 죽이는 반란군이었다. 그들은 위장관에 머무는 동안에는 유충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지만, Bt의 독소가 위장관에 구멍을 뚫은 후에는 행동이 돌변했다. 장내미생물이 그 구멍을 통해 혈류로 침투하자, 이를 감지한 면역계가 흥분했다. 그 결과 유충의 전신에서 면역반응이 일어나, 장기를 손상시키고 혈액순환을 가로막았다. 이것은 패혈증sepsis의 전형적 증상인데, 유충이 그렇게 빨리 사망한 건 Bt의 독소 때문이 아니라 장내미생물이 일으킨 패혈증 때문이었다.

인간의 경우에도, 매년 수백만 명이 이와 비슷한 현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도 위장관에 구멍을 뚫는 세균에 감염되는데, 평소에 위장관에 머물던 장내미생물이 혈류로 침투하면 우리도 패혈증에 걸리게 된다. 앞에서 설명한 곤충 유충의 경우처럼, 동일한 미생물이 위장관에서는 ‘좋은 미생물’이지만, 혈류 속에서는 ’나쁜 미생물’로 행동할 수 있다. 그들이 상리공생자 행세하는 것은 그들 자체의 속성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서식처 때문이다. 소위 기회성 세균 opportunistic bacteria의 경우에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인체 내에 서식하는 그들은 평소에는 무해하지만, 면역계가 약화된 사람들의 경우에는 치명적 감염을 초래할 수 있다.
 

※ 출처: 에드 용, 『나는 미생물 군단이다』(가칭)

양병찬(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포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풍부한 인생경험을 살려 의약학, 생명과학, 경영경제, 스포츠,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을 번역 출간했다. 매주 Nature와 Science에 실리는 특집기사 중에서 바이오와 의약학에 관한 것들을 엄선하여 실시간으로 번역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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