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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속에 위태한 시국과 그리스도인의 자세바벨론 포로민의 아픔과 일제 수탈의 아픔을 거울삼아
  • 윤홍식 웹본부장
  • 승인 2017.03.08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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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이 글은 최원영 목사(본푸른교회 담임, 본헤럴드 발행인)의 지난 3월 5일 주일 설교의 일부를 편집한 것이다. 이 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헌재의 판결과 열강의 이해속에 얽힌 대한민국의 현 시국속에서 기독교인의 바른 자세를 발견할 수 있어 글을 올린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박사. 본국제신학교 학장. 본국제기독학교 이사장. 본헤럴드 신문 발행인, 새길과 새일(사) 부이사장, 본월드미션(재)이사. 저서: 충성된 일꾼되어가기. 베자세우기 영적순례(1,2권), 주기도문연구. 등

서울 중랑구 망우동 망우리공원묘지에는 해관 오긍선(1878~1963) 선생의 묘역이 있다. 오긍선은 의사이며 교육자이다. 연세대 전신인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최초 한국인 최초의 교장이며 현대의학 도입과 발전에 기여한 분이다. 사회사업에도 공헌을 하였다.

해관 오긍선 선생이 루이빌 의과 대학에서 공부하던 때의 일이다. 유학 중에 나라가 일본에 의해 외교권까지 빼앗긴 상태에서 1906년 6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했던 이준 열사가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더욱이 일제는 고종황제가 만국평화회의에 대표를 보냈다는 이유로 고종 황제를 강제로 물러나게 했고, 한국군이 해산을 당했다는 침통한 소식을 들었다. 찢어질 듯 아픈 마음을 안고 루이빌 시내를 거닐다가 길에서 구걸하는 거지를 보고 말하기를 “당신은 거지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는 나라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냐...”라고 하며 길거리에서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나라를 잃었던 36년의 아픔과 고통과 슬픔을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겠는가?

시편 137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와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나라는 바벨론에 의해 빼앗기고 긴긴 포로 생활을 하면서 그들이 경험한 슬픔의 노래가 시편 137편이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 137:1) 이것이 나라를 잃어버린 백성들의 아픔이다. 바벨론 강변에 앉아서 시온(예루살렘의 수도)을 기억하며 울었다. 그들에게 예루살렘은 소중하고 기쁨의 장소이다. 그 곳에는 하나님이 임재하는 성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이 수달당하고 이제 바벨론 강변으로 끌려와 가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고향 땅이기에 기억하며 울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가슴 아픈 질곡의 역사였다. 슬픔의 역사였다. 고난의 역사였다. 일본에 의해 주권과 땅을 강탈당했다. 그 아픔의 사건들을 살펴보면, ①을사조약(1905.11.17)체결로 외교권 박탈과 통감부 설치가 되며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⓶1906년 고종의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이 실패로 끝나고 이준이 자결을 한다. ⓷간도협약으로 철도 부설권과 광산 개발권을 얻어낸 일본이 조선인이 살고 있는 땅을 청나라에 넘긴다. ⓸조선총독부 설치(1910)로 일제가 세운 총독이 입법, 행정, 군사, 사법 등 식민 통치의 모든 권한을 강탈해 간다. ⓹무단통치를 실시한다. 이후 조선은 헌병경찰제로 조선인을 즉결처분하는 초법권을 부여한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는 박탈 당하고 한국인의 정치활동금지 된다. 식민지 교육이 실시된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일제의 식민지를 36년 동안 아픔을 경험했다. 그 아픔과 슬픔과 원한의 깊이가 큰 상처로 지금까지 남아 근현대사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근현대사의 고통과 환란을 몸소 겪었다. 언어를 빼앗기고, 창씨개명을 당하고, 땅을 빼앗기고, 손수 땀을 흘리고 얻은 농수산물을 강탈당하고, 우리의 자녀들을 성노예로, 광산 노예로, 공장노예로,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군수물자를 나르는 노무원으로 끌려갔다. 예배의 자유, 집회의 자유,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빼앗겼다. 이것이 나라를 빼앗긴 나라의 슬픔이다.

애석하게도 오늘날 대한민국의 상황은 구한말과 같이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얽혀 우겨쌈을 당하고 있다. 헌재의 판결(2017년 3월 10일)을 앞두고 태극기과 촛불을 앞세워 세(勢)로 힘을 과시하며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결국 이 싸움은 민(民)과 민(民)의 싸움이다. 결국에는 분열밖에 없다. 아마도 열국은 그것을 노릴 것이다. 바로 이 때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대한민국 통합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첫째로 헌재의 결정을 수용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이다. 자유민주주의 근간은 법이다. 법은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 한다. 그래야 질서가 세워진다. 법을 지키지 아니하면 무정부상태가 된다. 자신의 정치적 이념이 달라도 헌재의 결정에 따라야한다.

둘째로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 기도해야한다. 느헤미야도 에스더도 기도하고 왕 앞에 나갔다.

셋째로 좋은 정치 지도자를 뽑아 국정을 잘 이끌 수 있도록 믿어주고 감시의 기능을 보완해서 권력을 사유화할 수 없도록 시민운동이 정착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시편137편의 말씀을 통해 또 다른 슬픔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벨론 사람들이 흥을 돋우기 위해 유다인들에게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하라고 한다. 그런데 그 노래가 바벨론의 노래가 아니고 시온의 노래 네 조국 예루살렘에서 부르는 노래를 하라고 한다. 얼마나 치욕인가?(시137:2~3)시온의 노래는 예배 때 사용하는 찬양이다. 찬양을 이방인들의 술자리에서 부르라는 것이다. 얼마나 고통스런 아픔인가? 이것이 나라를 잃어버리면 당하는 슬픔이다.

유대인들은 구약에서의 바벨론에 의한 패망과 신약에서의 로마에 의한 패망을 통해, 패망의 원인을 자기들이 자녀들에게 말씀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 후 유대 민족은 나라가 없이 떠도는 가운데도 말씀 교육에 생명을 걸었다. 그러자 비록 나라를 빼앗겼지만 다시 회복되고 세계를 주도하는 민족이 되었다.

오늘날 교회의 사명은 자녀들에게 바른 교육을 가르치는 것이다. 예배의 뒷받침은 교육이다. 교회는 자녀들의 영적, 정신적 가치관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오늘날 학교를 중심을 한 공교육이 무너지는 현실속에 오늘날 교회는 바른 교육을 세우는 일을 해야 한다.

다시금 강조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 정치, 외교는 위태롭기만 하다. 이 때 한국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첫째 기독교인들이 기도해야 한다. 둘째 법을 준수하고 헌재의 결정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셋째 교회가 교육에 힘써야 한다.

윤홍식 웹본부장  jesuspoin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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