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죽 최복이 대표의 무릎경영 이야기 (6)

‘본죽’이 세계로 확장되며 2020비전이라는 구체적인 꿈과 방향을 향해 나아갈 때도 최복이 대표의 마음에 떠나지 않는 하나의 관심이 있었다. 그것은 노숙자들이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동병상련의 아픔을 통해서 심어주시고 역사하신다.

어느날 본사가 있는 종로에서 최 대표는 평소 좋아하는 국화빵과 붕어빵을 나누고 있었는데, 평소 눈에 자주 띄던 사람들이 인사동 도로 가에 누워 있고 정차된 차들은 빵빵거리는데, 도심 정비 사업의 명목으로 길가의 노점상들과 구청 직원들이 부딪혀 난리가 난 것이다. 생계가 달려 필사의 저항을 하는 그들을 보며 최 대표는 지난날 500원짜리 호떡을 팔며 거리를 전전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순간 숨이 막히며 자신도 모르게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저 사람들 어떡하죠? 몸도 온전치 못한 사람들이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데 어떻게 해요...’

최 대표는 본죽을 처음 시작했을 때 길 건너에서 밥생명공동체가 노숙인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함께 봉사도 하고 밥생명공동체에서 봉사를 하는 분들이 매장에 와서 식사하고 가도록 했다. 그 작은 시작이 본사랑 재단의 시초였다. 차츰 더 많은 노숙인들을 섬겼으며, 본죽에 입사하는 신입사원은 일주일씩 노숙인 식당에서 봉사하게 했다. 먹을 것으로 복을 받았으니 못 먹는 이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갓 피플이 굿 피플이고 갓 파트너가 굿 파트다(God people is Good people, God partner is Good partner)

직영으로 연 종로구 '본죽' 계동점은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다. 매장 수익의 전체를 노숙인을 돕는 D매장(donation, 기부매장)으로 삼았다. 이 후 대학로에서 시작한 점심 봉사를 부평역과 천안역까지 넓혀 주셨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철저히 드리는 마음이 생기면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라”(마 22:21)의 말씀에 순종하는 십일조와 감사헌금에 대한 분명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2007년 초반 최 대표는 신문기사에 소개된 빌 게이츠의 부인 멜린다 게이츠가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세워 폭넓은 선행을 펼친다는 보도에 큰 감동을 받았다. 물론 최 대표는 그 전까지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섬김의 자세로 매장 하나에서 나오는 수익 전체를 노숙인을 위해 돕거나, 회사에 받은 월급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교회를 산발적으로 후원하거나 찾아오는 사람도 도왔다. 하지만 더 큰 섬김과 실천을 위해서 기업 차원에서 본격적인 섬김의 사역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최 대표는 남편(김철호 본죽 회장)에게 신문 기사를 보여줬더니 너무 귀한 사역이고, 남을 위해 퍼주기 좋아하는 최 대표에게 어울리는 일이라며 응원해줬다. 최 대표의 남편은 휴대전화에 ‘멜린다 최’라고 등록하면서 동기 부여를 해줬다.

보건복지부에 재단 설립을 위한 신청서를 냈지만 허가가 쉽지 않았다. 기업에서 운영하는 재단이다 보니 탈세 등 다른 목적이 있지 않을까? 하며 순수한 의도를 의심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3년을 기다리며 최 대표는 기도를 많이 했다. 하지만 일이 진척되지 않아 2009년 초에는 포기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재단의 이름까지 ‘본사랑’으로 주셨다는 것을 철석같이 믿으며 기도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동기에서 설립하는지 그것을 제출하면 허가를 검토하겠다는 조건부 허가 통보가 왔고,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 해 온 몇 가지 일들과 왜 그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제출하니까 최종 허가서가 나왔다.

사단법인 본사랑의 이사장으로 취임식을 하던 날, 남편은 본아이에프 수입의 10%를 (사)본사랑에 기부해 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사단법인 본사랑은 이러한 외조로 지금까지 순항중이다.

"본사랑죽"은 “이 땅에 굶는 아이들이 없게 하라. 내 희망은 아이들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자 세계 곳곳에 전쟁과 기근으로 고통을 받는 아이들을 위한 별도의 죽 제픔이다. 따라서 "본사랑죽"은 유통기한 1년으로 분말로 된 제품이며, 이동과 보관이 용이하다. "본사랑죽"에 뜨거운 물이든 찬물이든 부으면 죽으로 호환되어 떠먹거나 우유처럼 병에 넣어 마실 수 있게 했다.

또한 (사)본사랑은 500명의 본죽 점주, 협력사 그리고 직원과 일반 개인들까지 함께 참여하고 있다. 본사랑죽과 본도시락 지원, 식자재(쌀, 김치, 고기류)지원, 소아암 아동과 장애아동 수술지원, 쪽방촌 문화교실, 새터민과 다문화 가족 지원, 다문화 청소년 글쓰기 대회, 지역사회(반찬, 조손가정, 장애인 축구) 후원과 자원봉사 등 낮고 먼 곳으로 섬김의 지경을 넓히고 있다.

쪽방촌 사람들에게 문화 복지를 누리게 하면, 이분들이 자존감도 되찾고, 재활의지와 삶의 질도 높아 질것이라는 기대에 첫 문화공연을 열었다. 성악가가 나와서 오페라 명곡과 아리아를 불렀는데, 청중과 교감하는 한 시간의 공연은 감동과 눈물과 박수의 바다였다. 공연을 진행하던 최 대표도, 초대받아 공연을 한 성악가도 그리고 13명의 청중 모두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등대교회 문화교실’은 지금까지 40회를 맞이했다.

최 대표는 이후 2012년부터는 장애인 댄스대회를 통해 상금을 후원하였고, 이후 2015년에는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팀을 만나게 된다. 그 축구팀을 위해 차 한 대와 활동비를 지원한 계기로 본사랑 G7 축구단과 인연을 맺으며 돕게 된다.

섬김의 사역은 더욱 확대되어 네팔, 케냐, 인도, 방글라데시 등에서  2380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다. 예산이 없어 공사가 중지된 학교를 다시 짓고, 교회가 운영하는 양로원을 보수하는 등 주님이 맡기신 ‘작은자(小子)’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이후 하나님은 인도차이나 5개국에 신학교 설립 프로젝트에도 헌신하게 하셨다.

지난날 최 대표가 겪은 인생의 고통과 밑바닥 같은 삶은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알아 긍휼의 사역을 하게 하신 놀라운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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