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받을 만한 성경속 인물

김에스더 목사 - The Second Life Foundation 대표, 뉴욕퀸즈교회 담임, 뉴욕사모합창단 및 미주여성목회자합창단 지휘

(1) 브리스가(Πρίσκαν, Prisca), 브리스길라(Πρίσκιλλα, Priscilla)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ἀκριβέστερον, more perfectly) 풀어 이르더라" (행 18:24-26)

<정확하게 알 때까지 온유함과 인내로 가르쳐라>

성경에서 바울과 함께 사역했던 인물 중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나오는데, 브리스길라의 태도를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 당시에 학문에 뛰어나고 성경에 능통한 최고의 목회자로 명성을 날리던 아볼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요한의 세례만 알고 복음에 대하여 부족한 모습을 보며 여성 사역자인 브리스길라는 남편 아굴라와 함께 그를 초청해서 그에게 부족한 부분을 자세히(more perfectly, accurately) 가르쳐 주었다.

여기에서 '더 자세히'라는 헬라어 ἀκριβέστερον(아크리베스테론)은 '더 자세히' 라는 뜻도 있지만, '더 정확히' 또는 '더 명확히(완전하게, 옳게, 제대로)'라는 뜻을 갖고 있다.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것 중의 하나가 남자보다 여자들이 좀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세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큰 일을 하는 반면에 여자들은 그러한 머리 아래에서 구체적인 일들을 한다. 즉 이사를 가야겠다는 것을 남자인 머리가 결정을 하면, 여자는 어떤 집으로 가야할지 그리고 어떻게 집안을 꾸며야 할지 구체적이고 자세한 부분을 맡아서 한다는 것이다.

남자는 에덴동산에서 떠난 이후로 가족을 부양해야 하므로 사냥감이 나타나는 즉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본능적으로 사냥을 해왔다. 먹고사는 문제는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부여하신 문제이므로 여자는 사냥감이 나타나더라도 당장에 그것을 잡아서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사냥감을 보는 순간, 남자는 본능적으로 단순히 그것을 사냥하려는 것에만 집중하여 움직이지만, 여자는 그것을 잡으면 어느 부위를 어떤 방법으로 요리를 하는 것이 좋은지, 그리고 그것을 잡았을 때 저장할 공간이 있는지, 그것을 누구와 함께 나누어 먹을지 등을 생각하느라 상황 판단이 남자보다 좀 느리다.
그러나 이러한 복합적인 것들이 감정적인 부분과 지적인 부분과 경험적인 부분까지 결합되어 최종적으로 결론에 도달했을 때에는, 시작은 남자보다 느린 것 같아도 결과적으로는 더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이 여자의 장점이다.

오래전에 유럽의 어느 다큐에서 여러 부부를 상대로 연구한 것을 보여주는데, 같은 장소에서 같은 말을 들어도 남자보다 여자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재미있는 것은... 남자들은 그런 말을 했었느냐며 아예 들은 기억조차 없었다). 그리고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남자보다 여자들은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더 잘 했다. 물론 이것은 보편적이며 예외는 항상 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남자보다 여자를 좀더 세밀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꼼꼼한 사람이 구체적으로 도와줄 수 있지만, 대강 넘어가고 신경이 둔한 사람은 돕는 베필로는 실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자는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그 세밀함으로 남자들이 간과하고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것들을 보면서 그것을 보지 못하는 남자를 무시하거나 잔소리로 힘들게 하며 잘난 척하는 것이 아니라 브리스길라처럼 자세하고 정확하게 그가 완전히 알 때까지 인내를 갖고 설명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것이 돕는 베필로 만드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여성의 복종'이다.

'복종'이라는 말은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라는 것이 아니다. 남편이건 목회자이건 그의 부족한 것을 온전하게 채워주기 위하여 애쓰는 것이 진정한 복종이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의 여자의 복종은 남자처럼 강하고 지배자와 같은 태도를 버리고, 여성 특유의 부드럽고 온유한 태도로 자세하고 명확하게 가르치라는 말이다.

만약 둔한 사람을 가르치려면, 둔한 사람이나 가르치려는 센스티브한 사람이나 피차간에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 경우에 인내심이 더 필요한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이다. 어차피 둔한 사람은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귀찮아하며 금방 포기하려고 한다. 듣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한 사람에게 어떻게 도와야하는지(말해야 하는지)에 대해 성경은 끝까지 인내하라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인내의 결과가 구원이기 때문이다.

딤후 2:24-26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찌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이 말씀은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할 때 즉 권면하려고 할 때의 자세는 "온유함"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의 종이라면 종답게 주님의 말씀대로 따라야 한다. 따라서 여성들이 돕는 베필로서 갖추어야 할 성품 중의 하나가 "온유"이다. 이는 예수님의 성품이기도 하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 11:29)

온유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 잘 참는다. 그리고 잘 참는 사람이 온유하다. 고린도전서 13장4절에 보면 "사랑은 오래참고"라며 참는다는 것으로 사랑이 시작되며 7절에서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로 사랑의 결론을 맺는다. 즉 사랑이라는 것은 참는 것으로 시작해서 참는 것으로 마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사랑은 참는 희생이 있어야만 진정한 사랑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오래 참고(is patient)'라는 헬라어 μακροθυμεῖ(마크로쑤메이)는 화를 내기 전에 참는 것(그래서 화를 내지 않는 것)을 말하며 성미가 급한 것과 반대되는 말이다. 이 말은 '오래'를 뜻하는 μακρος(마크로스)와 '참다'라는 θυμος(쑤모스)가 합쳐진 말이다.

즉 누군가를 도와주려면 화가 날 때가 있는데, 그가 도움을 받고싶어하지 않더라도 그를 구원하기 위하여 화를 내거나 다투지말고 오래 참아야 한다. 정말로 그를 사랑한다면, 시작도 참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까지 견디어야 한다. 남편이나 또는 남자들이 대강 넘어가려고 할 때 또는 그들을 돕는 과정에서 화가 나더라도 짜증을 내면서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인내심을 갖고 온유한 말과 태도로 그러나 정확하게 그들을 설득시켜야 한다.

사도바울은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자기를 도왔던 브리스길라부부를 매우 칭찬했다. 그러면서 "여성이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라고 했던 것은, 하와처럼 남편에게 엉뚱한 것을 먹여서 죽게 하거나, 신전의 여사제들처럼 남자들 위에 군림해서 주관하려는 태도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는, 남편이 없는 젊은 과부들이, 시간이 많다보니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필요없는 간섭을 하고 교회 안에서도 말을 만들어내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교회나 또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가르친다고 간섭하지 말고, 시집가서 자녀를 낳아 집안이나 먼저 잘 다스리라는 뜻이 포함된 말이다.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 다니고 게으를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딤전 5:13-14)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려라>

아굴라는 본도에서 출생한 유대인이었고(행18:2) 브리스길라는 로마인이었다.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성경에는 6번 나오는데, 3번은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에 그리고 3번은 사도바울이 기록한 로마서 16장3절과 고린도전서 16장19절, 디모데후서 4장19절에 나온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기록한 3군데에서는 모두 브리스길라를 '브리스가'(Πρίσκαν, Prisca)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당시 로마 귀족 중에는 브리스가라는 명문 가문이 있었기 때문에 브리스길라는 로마 귀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도바울은 그녀의 이름을 정식 이름인 '브리스가'로 기록했고,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브리스가의 애칭인 브리스길라로 기록했다(참고. 바울: 실루아노(고후 1:19, 살전후 1:1), 누가: 실라(행 15:27, 16:25)).

보통 사회적으로 더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먼저 쓰는 경우가 있었는데, 브리스가의 이름을 남편 아굴라보다 앞에 쓴 것을 보더라도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로마의 귀족 출신 여자가 로마의 속국 출신 남자와 결혼하기까지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정을 이룬 것만 보더라도 브리스길라는 이생의 자랑을 버릴만큼 아굴라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마의 4번째 황제인 글라우디오가 A.D.49년에 로마에 있는 유대인 추방령을 내리는 바람에 유대인과 결혼한 브리스길라는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된 것이다.

고린도는 운동 경기를 비롯한 상업이 매우 활발한 항구도시여서 성적으로도 매우 문란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데미여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었으며 신전의 여사제들의 활동은 과히 남자들을 지배하기에 충분했다. 즉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완전히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도시가 고린도였다. 그곳에서부터 브리스가는 아굴라와 함께 사도바울을 도와 사역을 함께 했으며 사도바울과 동고동락을 했다.

남편을 위하여 고향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와서 자리를 잡았는데, 이제는 바울을 만남으로 인해 바울의 사역을 돕기 위하여 삶의 터전인 고린도를 또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브리스가는 머뭇거리지 않고 사도바울과 남편과 함께 고린도를 떠났다. 사도바울이 이들 부부에 대하여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롬 16:4)라고 표현할 정도로 사랑하는 남편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했던 브리스가는 사랑하는 동역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던 것이다.

<사역자를 세워주라>

브리스가는 먼저 사도바울을 따라다니며 최선을 다하여 남편과 함께 사도바울의 사역을 도와주었다. 사도바울을 세워주기 위하여 그들의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그 과정 속에서 아볼로를 만났다. 아볼로는 유대인이며 성경에 능통한 자인데, 그러한 사람을 로마인 즉 이방인이었던 브리스가가 복음에 대하여 자세히 가르쳐주었다는 것은, 얼마나 그녀가 성경을 열심히 공부했는 지를 알 수 있다. 그녀의 노력의 결과를 사도행전 18장 27-28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저(아볼로)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우리는 여기에서 브리스가가 아볼로보다 성경을 더 정확히 알고있다는 사실에 놀랄 일이 아니라, 이방인이며 여자인 브리스가가 그 당시에 성경에 능통한 유대인 학자보다 더 성경을 자세하고도 정확히 알고 있었으나 그녀는 그것을 자랑하지 않고, 그 당시에 유명한 아볼로라는 사람을 제대로 세우는 데 힘을 썼다는 사실에 놀라야 할 것이다.

오늘날 소위 똑똑한 여성들이 잘 나가는 남성들을 밟고 올라서서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지혜로운 일이 아니다. 참된 지혜는 겸손이며 섬김이다. 그래서 여성은 똑똑한 것보다 지혜로와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똑똑한 사람을 이기지만, 똑똑하기만 한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을 결코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잘 나가는 사람을 밟고 올라서려고 하지 않고, 그가 제대로 잘 나가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이다.

훌륭한 사람 뒤에는 반드시 그를 위해 희생한 부모나 배우자나 멘토 등 누군가가 있다. 아볼로가 유대인들과의 논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브리스가의 세밀한 가르침의 결과였다. 여기에서 브리스가는 섬김과 가르치는 은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브리스가는 자신의 은사를 활용하여 아볼로를 말씀으로 무장시켜 주었다. 자신의 달란트를 십분 사용하여 다른 이의 은사를 더욱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름다운 복종의 미덕이 브리스가 뿐만이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모든 여성들에게도 나타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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