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춘 목사, 본헤럴드 객원기자, 춘천성시화운동본부장

하나님께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셨다. 먼저 남자를 만드시고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지으셨다. 하나님께서 이 여자를 남자에게 데려올 때, "이는 나의 살중의 살이요 뼈중의 뼈"라 하셨다. 그리고 이 둘을 에덴으로 이끌어 그의 나라를 이루며 통치하게 하셨다. 성경 창세기의 주요 메시지이다.

하나님께선 혼자있는 것이 좋지 못하다하시며 둘을 만드셨고, 서로에게 돕는 배필이 되게 하셨다. 이 둘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계시하시고, 생육 번성 충만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오복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하시며 에덴으로 이끌어 그의 나라를 이루게하셨다.

이를 우리시대에 적용한다면 어떤 그림이 될까? 지금 서초동과 광화문에는 촛불과 태극기가 다시 경쟁하듯 숫자싸움을 하고 있다. 어디가 더 많이 모였는가? 어디가 진짜 민심인가?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뒷편으로 숨어서 자기들 대신 국민들이 나서서 싸워주길 바라고 있다. 정치실종이요 나라가 좌우로 나눠지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지난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건을 통해 한국사회는 대단한 격동을 경험했다. 부연할바 없이 촛불시위의 엄청난 인파와 나중에 일어나 모두를 놀라게 한 태극기 집회가 바로 그것이다. 어찌보면 첨예한 대립의 양극화를 보여주는 시대의 서로 다른 해석이요, 양극적인 모습들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런데 실상 속을 들여다보면 두 진영은 모두 똑같은 생각과 염려가 있다. 

그것은 나라의 미래와 건강한 나라를 향한 애국의 마음에 대한 열정이었다. 촛불은 대통령의 불통과 권력남용에 대한 분노를, 태극기는 대통령 탄핵으로 무너지는 국가기강과 좌익세력의 부활을 염려했다. 처음엔 촛불이 격렬했다면 나중엔 태극기 집회도 만만치않았다. 같은 나라 안에 첨예한 다른 의견을 가진 두 세력. 그들의 열정은 솔직이 두렵기까지했다.

그러나 성경으로 돌아가보면 하나님께선 결코 남자 하나를 만드시고 만족하지 않으셨고 여자를 만드셨다. 둘은 서로에 대해서 전혀 달랐다. 오죽하면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라는, 즉 남자가 하늘이라면 여자는 땅이라는 반대적 개념을 가진 존재로 표현했을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결코 혼자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였던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는 배필로 여길 때, 하나님께선 이둘을 하나로 에덴으로 이끄셔서 그의 나라를 세우게 하셨다.

실상을 본다면 우리에게 촛불은 꼭 필요했다. 그러나 촛불 만으론 완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태극기 세력이 염려가 되어 일어났던 것이다. 서로 양극화 되었고 서로 다른 생각이었지만 나라사랑의 열정에 대해선 같은 마음이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극렬한 주장과 함께 할 서로를 향한 사랑이 정말 있어야한다. 나의 부족을 채워줄 돕는 배필로서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소통과 공감의 마음과 사랑의 회복이다. 이제 겨울은 지났다. 새봄의 기운이 일어날 때이다. 바위 틈 낭떠러지에 있는 나의 숨어있는 비둘기를 찾아야한다. 서로 손에 손을 잡고 에덴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촛불과 태극기의 열정을 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야 할 때이다.

다름에 대한 비난과 서로에 대한 원망을 접고, 절대 서로 무시하거나 조롱하면 안된다. 서로 정말 필요하고 부족한 부분들이 있음을 고백할 때가 왔다고 본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되 "그대는 내 살중의 살이요 뼈중의 뼈"라는 고백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사랑을 바탕으로 에덴동산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을 잡아내야 할 때라고 본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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