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록펠러(Jay Rockefeller)가 국제유대자본 황제에 등극?

미국을 대표하는 자선재단을 이끄는 록펠러가(家)의 3세대로 이 가문의 '수장'인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efeller) 전 JP모건체이스 회장이 지난 3월 20일(현지시간) 숨졌다. 향년 102세.

록펠러재단은 데이비드 록펠러가 뉴욕주 포칸티코 힐즈에 있는 자택에서 이날 아침 잠을 자던 중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록펠러재단은 “미국의 자선과 금융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미국의 마지막 남은 국제사업 정치인”으로 생각했다고 그를 추모했다.

고인은 미국의 첫 번째 억만장자였던 '석유왕' 존 D. 록펠러(1839∼1937년)의 손자이고, 그의 외아들인 존 D. 록펠러 주니어(1874∼1960) 슬하의 여섯 남매 가운데 막내아들이다. 현재 록펠러 가문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세 번째 세대 중에서는 유일하게 생존해 있던 인물이었다. 1915년 뉴욕에서 출생한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efeller)는 1936년에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후, 1940년에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영국에 유학하여 영국황실과 영국귀족들과의 관계를 형성한 후, 1961년 체이스맨하탄은행에 입사하였고, 8년 뒤에는 체이스맨하탄은행 회장과 CEO로 활동했다.

"사람들은, 록펠러는 미국의 이익에 역행하여 일하는 비밀 조직의 일원이고 록펠러의 가족들을 세계 정치와 경제를 통합하려는 세계단일정부(New World Order) 글로벌리스트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게 고소감이라면 나는 유죄고 자랑스럽다." - 빌더버그 회장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efeller)-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efeller)는 1973년부터 세계를 움직이는 빌더버그회의 대표였다. <빌더버그회의>는 1940년부터 국제유대자본의 황제였던 빅터 로스차일드가 영국왕실ㆍ영국귀족ㆍ프리메이슨들이 지배했던 <300인 위원회>를 견제하기 위하여 만든 비밀결사였다. 194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세계의 황제 노릇을 했던 '커튼 뒤의 남자' 빅터 로스차일드는 전 세계를 통째로 지배했음에도 역사책에는 단 한줄의 기록도 남겨져 있지 않은 미스테리한 인물이다. 그런데 1970년 빅터 로스차일드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데이비드 록펠러는 1973년 빌더버그를 견제하는 비밀결사체인 삼각위원회(삼극위원회, The Trilateral Commission)를 만든다. 

데이비드 록펠러의 전략사령관으로 47년을 함께 일해 온 헨리 키신저

흔히 국제비밀회의로 불리는 이 삼각위원회는 최근 2015년 4월24일 2박3일간 일정으로 서울 콘래드호텔에서 개최되었다. 이 삼각위원회는 아시아·태평양, 북미, 유럽 3개 지역의 경제계·학계·관계 인사 390명으로 구성돼 있다. 주요 회원으로는 미국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커트 캠벨 전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등을 비롯해 고바야시 에이조 이토추 그룹 회장, 마키하라 미노루 미쓰비시상사 고문, 리자오싱 전 중국 외교부장 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아시아·태평양그룹장은 야츠시카 하세가와(일본 다케다제약 회장)이 맡고있다. 

삼각위원회 비밀회의는 2003년에도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렸는데, 그때 열린 삼각위원회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해 기조연설을 했다. 그런데 2015년 4월 삼각위원회가 서울에서 열린 기간에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남미순방을 나갔다. 대신 정의화 국회의장이 참석하여 기조연설을 하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달리 " 북핵 및 한반도의 정치ㆍ경제문제"를 주제로 다룬 이 삼각위원회 비밀회의에 초대받지 못한 것이다. 2015년 서울에서 열린 삼각위원회에 초대받지 못한 것과 그 이후의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하고, 결국 최근에 탄핵을 당한 일과 무관한지 모르겠다. 이 회의에 박 전대통령은 왜 초대받지 못했을까?  

1973년 이후 로스차일드 계열의 기업들인 로열더치 셸, 로스차일드 은행, BBC 등의 위상이 한결 축소되고, 록펠러 계열의 기업들인 엑슨모빌, 시티은행, 뉴욕타임즈 등의 위상이 한결 격상되었다. 세계를 지배하는 방식도, 그간의 금기반 달러결재 시스템(금태환) 중심의 중앙집권 체제(공영화)에서, 석유기반 달러결제 시스템 중심의 신자유주의 체제(민영화)로 전환되었다. 금기간 결제 시스템에서 석유기반 결제 시스템으로 전환은 곧 금을 가장 많이 보유한 로스차일드의 실권을 의미한다. 그 결과로 영국보다 미국의 힘이 강해지게 되었고, 미국의 금융 규제는 완화된 반면 유럽의 금융 규제는 반대로 강화되었다. 전 세계에 유통되는 금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로스차일드 힘이었다면, 이 석유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록펠러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 기반에서 석유 기반으로 간다는 것은 권력이 빅터 로스차일드와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데이비드 록펠러와 록펠러 가문으로 이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 세계 국가들이 이러한 흐름을 타서,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이행하게 된 것도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세계를 항시적인 불안 상태로 몰아넣으며 지배를 하는 방식도 미묘하게 변화하였다. 과거 로스차일드가는 냉전을 통해 군수산업을 확장했다면, 록펠러가는 '테러리즘과의 전쟁'이라는 거짓 선동술로 군수산업을 확장해왔다. 이러한 일대 전환점이 록펠러가가 아랍권 국가들과 '짜고 치는 고스톱' 이었던 1973년의 석유파동 사건이었다.

사실 유대국제자본의 권력이 록펠러가(家)로 넘어온 이후에도 내부 분쟁은 있었다.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efeller)의 형이었던 넬슨 올드리치 록펠러(Nelson Aldrich Rockefeller, 1908~1979)는 계속해서 미국의 공화당을 장악해 왔었는데, 형제간의 권력투쟁의 결과로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efeller)는 미국의 민주당에서부터 권력장악을 시도하였다. 1974년 포드 대통령의 지명으로 미국 부통령으로 재직했던 친형 넬슨 록펠러가 1979년 사망하자,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efeller)는 록펠러가(家)의 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뿌리를 내린 민주당의 지미 카터를 대통령으로 내세워 미국을 통해 세계를 지배했다.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efeller)가 미국의 실권자로 떠오르면서 처음 지배하게 된 당이 지미 카터가 속한 '민주당'이었는데, 형인 넬슨 록펠러가 사망하자 공화당으로 자신의 거점을 바꾸고 로널드 레이건을 대통령으로 내세운다. 무명의 조지아 주지사에서 브레진스키에 의해 선발되어 대통령에 당선된 카터나, 배우에서 시작해 정계에 입문하여 마침내 대통령에 오른 레이건이나 모두 록펠러의 후광으로 대통령이 되었다고 보면 된다.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efeller)가 미국의 정치체제를 지배하게 된 이후, 공화당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전쟁수행 역할을 맡는 '네오콘'들을 꼭두각시로 앉혔다. 록펠러는 '테러리즘 위기'를 고조시킴으로써 군수산업체를 통해 돈을 벌어왔다. 그 이전에 냉전 위기를 통해 돈을 벌어오던 로스차일드가(家)와 비슷한 양상이었다. 로스차일드가 만든 세계지배체제가 UN체제라고 한다면, 데이비드 록펠러가 만든 지배체제는 G3, G5, G7 그 다음에 최근까지 이어진 G20이다. 

세계정부의 황제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efeller)는 1915년생, 그 책사들인 헨리 키신저는 1923년생, 지미 카터는 1924년생, 조지 허버트 부시는 1924년생,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1928년생이다. 그리고 억만장자 '석유왕' 존 D. 록펠러(1839∼1937년)의 증손자 록펠러 4세인 제이 록펠러(미하원의장 역임, 현재 CFR : 미국외교협회 고문)는 1937년생으로 데이비드 록펠러를 이어 유대국제자본 세계정부의 황제를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efeller)의 아들 리차드 록펠러(Richard Rockefeller)가 2014년 6월 14일 뉴욕에서 이륙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사망당시 65세였던 리차드 록펠러는 아버지 데이비드 록펠러의 99번째 생일을 축하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