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변호사의 편지】

지난 3월 6일부터 11일까지 두바이를 여행하였다. 오래전에 정해진 일정이었는데 업무 사정상 갈까 말까를 하루 전까지 고민하다가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Doing 법칙에 따라 두바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두바이는 약 10년 전인 2007년 12월 5일부터 9일까지 공무로 여행한 적이 있다. 당시 사법연수원 부원장 시절 사법연수원생들의 연수기관 및 프로그램을 개척하기 위해 UAE, 카타르, 터키를 방문하는 일정 중에 두바이를 들렀다. 

이번 여행을 위해 당시 일기를 꺼내어 읽어보니 이런 대목들이 있었다.

"밤 12시 두바이 공항 입국대 문을 모두 열었지만 동시에 밀어닥친 입국객들로 줄은 한정 없이 길고 입국 수속은 더디기 짝이 없다. 이 시각에 이 많은 사람들이 왜 이 사막의 도시를 찾아오고 있는 것일까. 관광객일까. 이곳에서 일하는 근로자일까. 아니면 투자 등 각종 비즈니스로 찾은 사람들일까. 이야기로만 듣던 두바이의 열풍은 현실에서는 훨씬 강력하였다." 

"점심을 먹으러 마디낫 주메이라 쇼핑몰에 있는 전통시장을 찾았다. 이 쇼핑몰은 전통적인 물건을 파는 시장으로 전통 건축물 양식으로 설계하여 최신 공법으로 지었단다. 식당으로 내려서자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건물 사이로 호수가 있고 그곳을 배가 관광객을 싣고 다니고 있었다. 한 폭의 그림이었다." 

"에미레이츠 몰에 도착하였다. 사막에 스키장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이곳. 스키 두바이. 기상천외한 발상을 하여 사막 내 도시 쇼핑몰 한쪽 유리창 너머에서 사람들이 스키를 타고 있었다. 슬로프 길이 400미터. 이곳에서 스키를 탄다는 자체가 관광객의 시선을 잡기 충분하였다. 1시간 반 쇼핑을 하였는데 딱히 살 것이 없어 책 1권을 샀다."

2007년 두바이는 사막에 수많은 고층 빌딩을 지어 놀라운 도시를 연출하였지만 사실 그 속살로 들어가 보면 사람과 건물 이외에 관광할 것이 별로 없는 도시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2008년 금융위기가 있어 두바이도 국가부도 위기까지 갈 정도로 휘청하였다. 나는 10년간 두바이가 얼마나 변해 있을까 궁금하였다. 내 추측으로는 금융위기의 위험을 잘 극복하고 그럭저럭 지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그러나 일주일간의 두바이 여행은 저의 그런 선입견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내 느낌으로는 두바이는 면적으로만 몇 배 커진 것 같았다.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는지 도처에 사람들로 붐볐고 새로운 건물을 계속 짓고 있었다. 

스키장이 있는 에미레이츠몰은 새로 지은 두바이몰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었다. 인터넷 통계를 보니 에미레이츠몰은 22만 제곱미터이고 두바이몰은 50만 제곱미터였다. 축구장의 70배 규모이다.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내가 두바이를 다녀온 다음해인 2008년 5월 8일 오픈하였다. 관광객수는 매년 증가하여 2015년 기준으로 9,200만 명이 방문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인구 두 배 정도 규모가 방문한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두바이몰을 두번 방문하였는데 그때마다 인파에 밀려 제대로 걷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아마 이곳 두바이몰만 돌아도 며칠은 충분히 관광이 가능할 것 같았다.

두바이몰에 붙어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버즈 칼리파의 전망대에 올랐다. 2007년 방문 시에도 한참 건축 중이던 건물이 2010년 완공되어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지상 163층, 지하 2층. 최고 높이는 829.8미터로 현재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다. 전망대는 124층에 있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두바이는 사막 한가운데 만들어진 빌딩 숲이었다. 

이 건물의 건축 당시 명칭은 버즈 두바이였는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자금이 부족해진 두바이가 형님 토후국인 아부다비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여 그 자금으로 이 건물을 완공하게 되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 건물 개막식에 아부다비의 통치자 [칼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가 초청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두바이의 통치자 [무하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이 "이 프로젝트는 위대한 인물의 이름을 붙여 버즈 칼리파로 한다."고 선언하여 버즈 칼리파가 되었다.

2007년 두바이를 방문하였을 때 아부다비도 가보게 되었는데 두 나라의 모습이 매우 달랐다. 두바이에는 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데 반해 아부다비에는 나무가 숲을 이루었다. 사막에서 나무를 키우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일일이 호스를 통해 물을 공급하지 않으면 금방 말라 죽기 때문이다. 아부다비는 오래전부터 조림 사업을 하였던 것 같다. 그에 비해 갑자기 도시를 조성한 두바이는 조림을 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두바이 전역이 푸른 숲으로 바뀌고 있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두바이도 조림 프로젝트로 전 도시를 푸르게 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길가의 꽃밭을 자세히 보니 가느다란 호스가 몇 가닥씩 이어져 있고 그 호스를 따라 꽃이 일렬로 심어져 있었다. 그 정성이 대단하였다.

불가능이란 없어 보였다. 사막 한가운데 도시를 건설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짓고 그것도 모라자 도시를 숲으로 뒤덮는 나라. 지도자의 비전이 나라를 바꾸고 지도를 바꾸고 있다.

2007년에는 관광이라고는 사막투어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보니 관광 거리가 넘쳐났다. 시간이 부족하여 다 보지 못할 정도였다.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일정상 포기하였다. 

2007년 두바이 여행일기의 한 대목이다.

"우리는 두바이에서 더 볼 것이 없어 아부다비로 향했다. 아부다비 에미레이츠 팔레스 호텔 1층 한쪽에서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는 아부다비 역사를 전시한 것인가 싶어 들어갔다가 정말 굉장한 광경을 목격하였다. 아부다비의 향후 20년 프로젝트. 문화도시 건설 계획에 대한 전시회였다. '사디야트'라는 섬에 여러개의 문화 시설을 세우는데 그 독창성과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의 성공을 본 따 빌바오 구겐하임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가 아부다비 구겐하임을 설계하고 운영은 구겐하임이 맡기로 하였단다. 그다음으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계약을 맺어 이름과 운영해주는 조건으로 거액을 주고 아부다비 루브르를 만들기로 하였는데 그 설계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이 맡았다고 한다. 각종 공연장이 들어서는 아트센터는 자하 하디드가 설계를 맡았는데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설계에 5년, 건축에 15년이 걸리는 이 프로젝트는 두바이가 건설로 투자 수익을 올리고 관광객을 끌어모았다면 아부다비는 문화로 관광객을 끌어모을 국가 프로젝트를 구상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상상력은 왜 이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일까. 뉴욕 메트로 폴리탄 서울 뮤지엄 같은 것은 왜 상상하지 못하나. 도시 하나를 건설하더라도 왜 그 자체가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부다비는 이 프로젝트 발표회를 뉴욕에서 하였단다. 단순히 돈만의 문제는 아닌듯싶다. 이 아부다비 프로젝트를 보고 받은 충격은 두바이의 충격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사디야트 섬을 꼭 가보고 싶었는데 사정상 가지 못하였다. 뉴스에 의하면 이 프로젝트는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두바이나 아부다비 식의 프로젝트가 대한민국에 어울리는지 아닌지는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난 10년 동안 이들은 엄청난 것을 이룩하였고 계속 이룩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였나 자성하게 된다. 

국가만이 아니라 저 자신이 10년 동안 어떤 발전을 이루었는지 곰곰이 생각하며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앞으로도 10년이 두바이, 아부다비, 대한민국 그리고 조근호 앞에 똑같이 주어질 것이다. 그동안 무엇을 할지는 그 구성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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