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과 고난주간의 참된 의미

박성일 목사, 전주예수비전교회 부목사

한 주 뒤에는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지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의 일주일을 묵상하는 고난주간이 시작된다. 해마다 고난주간이 오면 많은 교회들과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에 달리심에 대한 여러 행사들을 하게 된다.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십자가 체험, 십자가 행진 등...
 
그런데 사실 역사적으로 종교개혁 시대때부터 믿음의 선배들이 항상 강조해 오던 것은 형식주의에 대한 비판이었다. 예를들면 로마 카톨릭의 여러 미사와 행사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에서 지키는 여러 절기들도 사실은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본다면 문제가 많다고 말할 수 있다. 

역사적 개혁주의를 따르는 교회들은 오직 주일만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늘의 교회들이 굳이 절기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절기의 정신을 제대로 살리고 기억하며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오늘의 교회의 대부분이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통해 묵상을 하고 강조하는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대한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가 아니라, 수난 그 자체에 관심이 더 높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저 고통스러운 그 예수님의 힘듦, 채찍에 맞으시는 그 고통, 멸시 등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칫 예수님을 어느 순간부터 불쌍한 분으로 생각을 해버린다. 아무 죄도 없는 분이 우리를 위해 고통당하신 불쌍하신 주님으로 동정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슬픔과 울음에 빠져 있는 우리들의 마음과는 다르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 28)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리심에 대해 일부 백성들과 여자들이 무리지어 오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다는 슬픔 때문에 울고 있지만, 정작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바로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그 후에 있을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며 너희 자신들과 가족들의 죄를 돌아보며 회개하라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머지않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서서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A.D. 70년 경에 실제로 예루살렘은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해 함락 당하고 여인들과 자녀들이 많은 죽음을 당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누가복음 23장 28절에서 주님은 “예루살렘의 딸들아”라고 말씀하지만, 이 말씀은 유대민족 전체, 오늘로 말하면 영적 이스라엘이 된 우리 모든 신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그리고 “울음”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클라이에테”는 “클라이오”의 명령형으로서 슬픔을 참고 억제하는 흐느낌이 아니라, 마치 어린아이가 소리내어 울부짖는 듯한 큰 소리를 내는 울음을 가리키는 표현을 말한다. 또한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다음 29절부터 비유를 들어 마지막 심판의 날에 대하여 말씀을 하신다.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이것은 마치 이 민족이 단순하게 한 가지 재앙만 받고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재앙으로 인하여 멸망을 당하고 말 것이기에, 차라리 그 날이 오기 전에 넘어지는 산 밑에 깔려 죽거나 지진에 삼켜 죽음을 당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비유의 말씀인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고난주간을 굳이 지키고 묵상해야 한다면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며 주님에 대한 동정의 눈물이 아니라, 우리의 죄에 대한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심판의 때를 위해 오늘 이 순간을 믿음으로 살아가며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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