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선 목사 (가마산장로교회 담임, 교회를 위한 개혁주의연구회 회원)

로마가톨릭은 교회의 통상 직원인 “사제”(priest)와 비상 직원인 “사도”(Apostle)를 직접적으로 연계하여서, 교회의 모든 기능과 역할을 사제들에게 한정하는 사제주의(sacerdotalism)를 형성했다. 그리하여 소위 “평신도”(layman)와 구별될 뿐 아니라, 평신도와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제직의 필연성을 강조하게 됐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정신은 “오직 믿음”(Sola Fide)의 원리에 근거하는 “만인제사장주의”(Priesthood of All Believers)를 주창함으로써 사제에 의해 독점된 중보적 역할을 폐기해 버렸다. 그로인해 개신교 신자들은 누구라도 사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로 하여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신자들이 제사장이요 사제인 것이다.

이러한 개신교 신앙의 독특성은 제2 스위스 신앙고백(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1566) 제18장에 잘 정리되어 있는데, 거기에서는 이르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사제(제사장)라 부른다.”(The apostles of Christ do term all those which believe in Christ priests)고 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가운데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이 제사장적임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제2 스위스 신앙고백 제18장은 곧장 덧붙여 명시하기를, “그러나 그들의 직분에 관련해서가 아니라, 모든 믿음으로 왕과 사제들이 되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영적 희생(제사)를 올릴 수 있기 때문”(but not in regard of their ministry, but because all the faithful, being made kings and priests, may through Christ, offer up spiritual sacrifices unto God)이라고 했다. 즉,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가운데서 영적 제사를 드리지만, 그것은 사제로서의 직분적인 언급이 아니라 영적 신분으로서의 “제사장” 됨을 일컫는 것이다.

실제로 출 19:6절 말씀을 따라 신약성경 벧전 2:9절과 계 1:6절에서는 공히, 신자들을 신약성경의 직분인 “사도”나 “장로” 등으로 부른 것이 아니라 “제사장”(Priests)이라고 했다. 즉 실제적인 제사를 드리는 직분으로서의 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제사와 관련하여서 제사장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제2 스위스 신앙고백 제18장은 계속해서 고백하기를, “(교회의) 직분과 사제직(제사장직)은 분명히 다르다”(The ministry, then, and the priesthood are things far different one from the other)고 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교황제의 사제직(priesthood)을 취하지 않을 뿐이지 교회의 직분(ministry)을 취하지 않는 것은 아니”(And we have not taken away the ministry of the church because we have thrust the popish priesthood out of the church of Christ)라고 했다.

그런데 스위스의 개신교 진영 가운데 지나치게 한 쪽으로 치우쳤었던 재세례파의 경우에는 만인제사장주의에서의 이러한 구별(교회의 직분과 사제직에 대한 구별)을 하지 못하여, 교회조직의 모든 직분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마찬가지로 회중주의(Congregationalism)에서도 이러한 독특한 구별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교회의 직분에 대한 오해를 부르게 되었는데, 특별히 잉글랜드의 국교주의(Church of England)에 강하게 반대했던 분리주의자들(Brownist)에게까지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있다.

한편, 국교회 내에서 개혁을 도모하는 비분리파 청교도 가운데 대표적 인물인 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 1576-1633)가 쓴 『신학의 정수(The Marrow of Theology, 1623)』는, 제35장에서 “통상 직원들과 그들의 설교직에 관하여”(Of ordinary Ministers, and their Office in Preaching) 진술하는 가운데 통상직(Ordinary Ministry)을 두 가지로 분류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에 대해 행할 일들을 행할 것”(That in the name of God, he does those things which are to be done with the people)과 “사람들의 이름으로, 그들과 함께 하나님께 대해 행할 것”(That in the name of the people, he does those things with God which are to be done with him)을 각각 언급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통상직원인 목사는 그 직무 가운데서 사람들(회중)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과, 하나님을 향하여 사람들이 행할 일들을 수행하는 두 가지의 통상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직분인 것이다.

그러나 그처럼 두 가지로 분류되는 통상직에 관해서는 윌리엄 구지(William Gouge, 1578-1653)의 교리문답(The Sabbaths Sanctification, 1641) 제9문에서 더욱 명료하게 드러나는데, “(경건의 공적인 의무들이) 누구에 의해 행해지는가?”(By whom are they performed?)라는 질문에 답하기를 “1. 직분자(목사)에 의해, 2. 사람들(회중)에 의해, 3. 모두가 다함께.”라고 말한다.

그런데 구지는 제9문의 대답 가운데서 부연하여 설명하기를, “목사는 그가 선 예배당에서 사람들(회중)을 향한 하나님의 입이다.……목사는 또한 하나님께 대한 사람들(회중)의 입이다.”(The Minister is the mouth of God, in whose roome he stands, to the people……A Minister is also the peoples mouth unto God)라고 하여, 에임스와 유사한 언급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로 보건데 목사가 하나님의 입으로서 설교하며, 회중들의 입으로서 기도하는 일이 당시 예배와 관련한 일반적인 목사의 직무로 이해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 공적인 예배에서 목사가 기도하는 것이 전체 회중을 대표하는 성격(입의 성격)이라는 사실이다. 회중들의 경우에는 가정에서나 사적으로 드리는 예배 외에, 예배당에서 공적으로 드리는 예배에서 직접 기도하는 자가 아니라 “읽고 설교된 말씀을 집중하여 듣고(Attending to the Word read and preached), 찬양과 기도에 동의하며(Assenting to the prayers and praises), 성례에 참여하고(Partaking of the Sacraments), 듣는 모든 것들에, “아멘”으로 답하는(Saying AMEN, audibly to all)” 자로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그러한 성도들(회중)의 반응(듣고, 동의하며, 참여하고, 답하는)은 예배에 있어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중요한 부분이다. 때문에 구지는 끝으로 언급하기를 “그 하나(성도들의 동의)가 다른 것(목사의 선포)과 더불어 필수적”(For the one is as requisite as the other)이라고 했다. 즉, 목사의 설교와 회중의 동의가 함께 예배의 필수적인 부분이니, 마찬가지 방식으로 목사의 기도와 회중의 “아멘”으로서의 동의가 함께 예배를 구성하는 것이다.

바로 그처럼 예배에서의 목사와 회중의 유기적인 조화(연합)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배에서 시편을 노래하는 것(Singing Psalmes)이다. 성가대에 의한 특송의 방식이 아니라 시편을 목사와 회중이 함께 부르는 것은, 목사와 회중 모두에 의해 행해지는 경건의 의무로서의 독특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적 장로교회의 예배에 있어 목사의 경건과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로마가톨릭의 경우처럼 유일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이니, 그것은 이 직분이 “지배하는 직분이 아니라 봉사하는 직분”(a service than a dominion)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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