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생길 만큼 생겼습니다 
생긴 것 가지고 울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산과 강에게 미안하고 
들에서 일만 하는 어른들에게 죄스러울 뿐 
먼저 간 그 사람에게 그저 송구할 뿐입니다

 

남아있는 열정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에 대한 조그만 예의라고 할까요 
다시는 외면하지 않고 
다시는 무릎 꿇지 않으렵니다 
가는 길은 그가 가셨던 길 따라가는 것이고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던 그곳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그곳에 우리 꽃이 필 것이기에 
벌써 그 사람은 우리 동네 너머 산자락에서 웃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 때문도 아닙니다 
산 자는 모두 그에게 갚아야 할 빚이 
남산보다 높고 
서울 빌딩의 파도보다 거셉니다 
그래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손을 드는 것입니다 
슬픔은 더 이상 웅크리지 않고 
아파한 만큼 합창으로 터집니다 
오늘도 이렇게 절실한 것은 
지금도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시고 
허연 뼈로만 남아 하늘 바라 바람에 울고 계신 
어른들 그 마지막 노랫소리가 쟁쟁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동네는 아침이 오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는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람은 기억 속에 살아 
뼛속에 살아 핏줄을 튀기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고 
바다처럼 넘실대고 있습니다 
새벽 우리 동네 골목을 휘돌고 있습니다

 

죽은 그 사람이 오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 속에 그 사람이 오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