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언약의 실현이다.

창세기 15:8~21
8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3년된 암소와 3년된 암염소와 3년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4 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 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우리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과 횃불언약을 하셨던 하나님을 묵상할 때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횃불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언약을 하시기 위하여 그에게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언약의 행위를 친히 수행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언약을 보장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3년된 암소와 암염소와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준비하고 비둘기들을 제외한 모든 동물들을 반으로 쪼개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제물이 3년된 것들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3년된 제물들을 모두 절반씩 쪼개어서 두 줄로 정렬했습니다. 비둘기들은 부피가 작기 때문에 반으로 쪼개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 중동지역에서 특별히 중요한 약속을 할 때에는 이렇게 동물을 죽여 반으로 쪼갠 뒤에 언약을 체결하는 두 사람이 그 사이를 지나갔다고 합니다. 이는 둘 중의 한 사람이라도 그 언약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는 반으로 쪼개어진 동물처럼 그 사람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앞장인 창세기 14장을 보면, 아브람의 조카 롯이 그돌라오멜과 동맹한 동맹군에게 잡혀갔을 때 아브람은 그의 사병 318명을 데리고 쫓아가서 롯과 모든 것을 구했던 사건이 나옵니다. 전쟁에 승리한 후 아브람은 살렘왕 멜기세댁에게 십일조를 바치고 전리품을 하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아브람이 전리품을 취하도록 소돔왕이 허락했으나, 그는 물질의 유혹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후에 15장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라고 말씀하시며 이어서 본문에 나오는 횃불언약을 하십니다.

하나님 자녀의 첫 호칭은 "내 군대"

아브람이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물질을 돌처럼 여기고 취하지 않았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전쟁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방패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여기에 쓰인 '방패'는 군대 용어로서 '보호자' 또는 '공급자'라는 뜻입니다. 아브람이 전리품을 취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완전한 전리품이시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육체에 속한 사람은 눈에 보이는 물질을 갖고 싶어하지만, 영의 사람은 그들을 승리로 이끄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물질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며 십일조를 바친 아브람처럼 오히려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부터 하나님 자신을 주실 때에 전쟁을 승리로 이끄신 뒤에 전리품으로 하나님을 주십니다. 아담이 범죄한 뒤에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전쟁을 할 것이며,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여 승리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뱀의 머리를 박살내기 위하여 이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 원수의 머리 곧 그 죄과에 항상 행하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치시리로다"(시 68:21)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위하여 먼저 아브람을 선택하셨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본문 13절과 14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4백년동안 이방에서 객이 되어 고생할 것이며, 그 후에 그들이 큰 재물을 이끌고 그곳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라는 하나님의 시나리오를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 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제일 처음으로 호칭한 것이 "내 군대"였습니다.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 내 군대(mine armies),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찌라"(출 7:4)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와 가나안의 후손들인 뱀의 자녀들과의 전쟁을 통하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가장 먼저 그분으로부터 듣는 호칭은 "내 군대"이어야만 합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영적 전쟁터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전쟁터에서 군사로서 훈련되지 못한 사람은 전쟁의 포로가 되던가 적군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을 먼저 풀무불에 넣어서 연단을 시키십니다. 훈련되지 않은 군사는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들과 종의 비교

영적 전쟁터에 태어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하여 여호와의 군대에 입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각 군사들은 종이 아닌 아들이어야만 합니다. 종은 시키는 것만 하지만, 아들은 시키지 않아도 주인의식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에 대하여 아브람과 하나님과의 대화를 살펴보면, 하나님은 아들을 말씀하시고 아브람은 종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말씀하시는데, 아브람은 행위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말씀하시는데, 아브람은 율법을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말씀하시는데, 아브람은 종교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영의 세계를 말씀하시고, 아브람은 육의 사람이므로 육의 세계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육체에 속했기 때문에 그는 인간이 갖고있는 한계 속에서 생각에 제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밖으로 이끌고 나가셔서 하늘의 별을 세어보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그 별을 다 셀 수 없다는 사실을 아브람이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된 아브람은, 상속자는 아들이어야 하며 종이 결코 상속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굴복합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죽었을 때에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롭다고 칭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롬 4:13-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롬 8:14-15, 17)

종은 율법을 말하며, 종교행위를 말합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 항상 어떠한 행위를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종교는 종의 상태입니다. 더나아가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도 믿음이 없이 종교생활만 하는 이들은 천국을 상속받지 못하는 종들입니다. 

돼지처럼 외견상 굽이 갈라져서 교회를 다니며 모든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봉사하며 율법을 지키느라 애를 쓰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아서 즉 거듭나지 않아서 그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므로 거룩과 관계없는 어떠한 것들도 마구 먹어대는 분별력이 없는 종들입니다. 그래서 종들은 그들의 행위에 따라 주인에게 심판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레 11:7-8)

그러나 아들은 은혜를 말하며, 아버지와의 관계를 말합니다. 항상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아무런 수고없이 아버지가 베푸는 것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의식주에 대해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보고 배운 것이 그것이기에 저절로 아버지처럼 말하고 아버지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아무리 잘못해도 용서를 빌면 무조건 용서해주고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

믿음과 의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에서 "믿다"라는 히브리어 '아만'(אָמַן)은 인간의 의지로 믿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또 단순히 마음으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신뢰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아멘'이 유래하였습니다. 따라서 믿는다는 것은 주체와 객체가 연합되어 하나가 된 상태를 말합니다. 
믿음이란, 자녀에게 부모가 자전거를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을 때, 부모님이 언젠가 자전거를 사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라, 자전거를 사주겠다는 부모님의 말대로 꼭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종은 주인과 한 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부모의 피를 물려받아 태어났으므로 부모와 한 지체입니다. 그래서 아들은 부모를 자연스럽게 믿고 신뢰하며 살아가지만, 종은 주인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합니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고 언제 불호령이 내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동체와 하나가 되지 못하고 홀로 떨어져 나와있는 상태를 가리켜 성경은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며 그것이 종의 상태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람은 자기 자신을 믿는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자기 생각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러한 인간적인 한계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아브람 자신이 부인되어 죽고 없어질 때에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친밀함'이 없이는 신뢰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며 가장 친밀한 관계는 부부 또는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인 가족 관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만드시고 가장 기본이 되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하여 그들의 자녀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서로 신뢰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될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부부관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배우며, 부모와 자녀관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배우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그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말씀합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만이 정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행위가 '죄'인지 아닌지는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아브람을 의인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에 긍정적으로 반응한 아브람을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 '의'는 법정에서 죄인을 의롭다고 선포해주는 법적인 '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를 말합니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계약의 성취

본문에서 아브람과 하나님과의 계약은 목숨을 걸고 이루어졌습니다. 최초의 언약이었던 선악과를 먹지말라는 것도 지키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과 목숨을 걸고 계약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선악과 사건이후 전적으로 무능력해져서 절대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약속인 결혼만 보더라도, 결혼할 때에 서약한대로 검은 머리가 팥뿌리가 될 때까지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배우자를 변합없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마 19:5-6)

특히 이혼한다는 것은, 부부는 한 몸이므로 몸을 쪼개는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이혼하자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쪼개려는 살인자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크리스천들 가운데에서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기의 몸을 쪼개면서도 죽은 줄 모르고 살아갑니까?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가정을 이루는 결혼 서약도 지키지 못하고 자기 몸을 쪼개는 죄인들을 위하여 예수께서 대신 자신의 몸을 쪼개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편과 아내를 만드시고 가정을 만드신 것은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고난을 겪더라도 결코 남편과 아내는 서로 섬겨주며 사랑하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핍박과 고난을 받지만 결국은 신랑되신 예수님과 함께 영광스런 천국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을 소망하도록 고난과 환난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기 때문에, 참지 못하고 각방을 쓰고 별거를 하고 이혼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3, 4, 6, 8)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엡 5:25, 28)

남편된 이들은 예수님처럼 살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고 계십니다. 아내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아내를 돌보아주지 않고 각방을 쓰며 혼자 내버려두면, 그 아내는 남편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됩니다. 머리 따로 몸 따로 즉 장애인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

예수께서는 신부인 교회가 순종을 잘 해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죽으라고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너무나 연약하기 때문에 죽어주신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대신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최선을 다해 은혜를 갚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죽었을 때에 사랑스러운 하와가 태어났고, 마지막 아담인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에 교회가 탄생된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라는 말이 나옵니다. 성경에서 대부분 잠을 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깊이 잠든"이라는 히브리어 '타르데마'(תַּרְדֵּמָה)는 '깊은 잠' 또는 '(최면 상태와 같은)가수 상태(trance)'라는 여성 명사로, 이 단어는 창세기 2장21절에서도 쓰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하나님께서 중요한 일을 하실 때에는 의도적으로 인간을 깊은 잠 속에 빠뜨리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머리와 손과 발이 쉴 때에 비로소 큰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도 죄인들은 자기들이 무언가를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지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영광은 너무 무거워서 감히 인간이 어떠한 행위로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담을 깊은 잠 속에 즉 죽이신 뒤에 그를 위하여 그의 옆구리를 찢고 피를 흘려 갈비뼈를 뽑아 베필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옆구리를 창에 찔려 물과 피를 다 쏟아 죽으시고 신부인 교회를 만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의 경우는 그를 깊이 재우시고, 아브람없이 하나님께서 동물을 쪼개놓은 그곳을 홀로 지나가셨습니다. 이는 언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 하나님께서 죽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동물을 죽여서 반으로 쪼갠 것처럼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단어가 신약 마태복음 24장51절에서 한글 성경은 "엄히 때리고"라고 해석되었으나 헬라어로는 "두 조각을 내다"라는 뜻의 '딕호토메오(διχοτομέω)'로 같은 뜻으로 쓰였습니다.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διχοτομέω, And shall cut him asunder)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4:50-51)

즉 그 부분만 직역한다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고 주님이 늦게 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친구들을 때리며 술 친구들과 술을 먹고 마시는 종은,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주께서 재림하셔서 그를 반으로 쪼갤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하신 이 말씀을 들을귀 있는 자는 흘려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언약을 하셨으나, 인간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결코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약속 불이행으로 말미암아 몸이 찢어지는 심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심판을 죄인들이 받지않고, 죄인들 대신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 아브람에게 약속하신대로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찢어졌던 것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동물을 죽여 가죽 옷을 입혀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시고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죄인인 우리에게도 입혀주셨습니다. 죄를 짓기 전의 인간의 몸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름다왔으나, 죄를 지은 인간의 몸은 가려야만 되는 수치스럽고 저주받은 흙덩어리가 된 것입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창 3:7)

그래서 인간은 죄로 인한 수치를 가리기 위하여 율법의 온갖 행위를 하며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이 만든 것 즉 율법의 행위로는 그들의 죄 된 몸을 가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어떠한 행위로도 구원받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피를 흘려 만드신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어야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하나님께서 뱀에게 저주하셨던 것은 평생 흙을 먹게 하신 것인데, 뱀은 흙을 먹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흙은 흙으로 만들어져서 아직 생기가 없는 인간을 말합니다. 따라서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는 이렇게 흙덩어리에 불과하므로 뱀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창 3:14)
"...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그런데 뱀에게 먹히지 않기 위하여 아무리 무화과 나뭇잎으로 멋진 옷을 해입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피가 없이는 어떠한 선한 행위나 종교행위도 인간의 수치스러운 육체를 가릴 수 없습니다. 뱀의 밥이 될만한 인간의 육체를 가리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가죽 옷밖에 없습니다. 속죄소에서 대속의 피를 뿌려야만 됩니다. 그래서 그 피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수치를 속죄소에서 가려주시는 것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레 16:15)

아브람에게 모든 동물들을 3년된 것으로 하라고 하신 것은, 3은 완전 수이므로 온전한 제물을 준비하라는 것이며 또한 예수께서 3년간의 공생애를 하신 뒤에 제물이 되어 온 몸이 찢어져 죽을 것을 예표해줍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미 계시록에서 새하늘과 새땅을 다시 만드실 작정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어야만 했으며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뱀이 출현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은 원수지간이 되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치열한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라고 하시며 태초부터 전쟁을 선포하셨고 그 전쟁에서 승리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전쟁이건 이미 주께서 승리하신 전쟁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올해를 전쟁의 해로 선포하셨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작년부터 촛불과 태극기가 전쟁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전쟁이 쉴새 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남북이 대치된 상황 속에서 헌법을 무시하고 일개의 판사가 대통령을 몰아내는 것도 부족하여 감옥에까지 보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그의 후손들이 4백년 동안 이방의 객이 되어 이방인들을 섬길 것이며, 이방인들은 그들을 괴롭힐 것이라고 애굽에서 겪게될 일들을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역사(History)를 쓰시고 주관하시기 때문에 4백년 뒤의 일을 아브람에게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지금 한국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를 매우 힘들게 하며 고민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의 백성이 수없는 이방의 침략을 받아 고통을 당했습니다. 현대에 와서 세계 1, 2차 대전을 비롯하여 끊임없는 테러와의 전쟁 등을 보며 망연자실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이들과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 안에서 믿음의 자녀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하나님의 전쟁의 계획을 이루어가기 위해 세운 언약 백성의 조상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무고한 인명이 죽어가는 소식을 접하면서 이 모든 일들이 진정 하나님의 시나리오에 의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하며, 지금도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당신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정말로 믿습니까? 머릿속으로 동의하는 것과 정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고 다스린다는 사실을 믿고 그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당신은 나라와 교회의 미래와 우리 가정과 자녀들의 인생 모두가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믿습니까? 이런 믿음은 우리의 기도의 내용과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당신은 올 해, 불확실한 미래를 시작하면서 그런 믿음으로 시작했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믿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본문 초기의 아브람처럼 제한된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스스로 한계선을 그어놓고 그러나 기적을 바라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두 마음을 품고 하는 기도는 응답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면 바로왕과 바로의 군대를 다 동원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그분의 선택한 이에게 알려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바로왕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결국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바로와 그 군대를 어떻게 멸망시키는지 보여주실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를 괴롭히는 모든 악한 무리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일이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우리의 정과 욕심을 완전히 못을 박아 죽이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아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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