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1-5

김에스더 목사, †he 2nd Life Foundation, 뉴욕퀸즈교회

 

에베소서 2:1-5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이라고 우리의 과거를 회상시키며 동시에 "우리를 살리셨다"라고 현재의 상태를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거를 한번 살펴볼까요? 우리는 과거에 모두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과거에 허물과 죄가 없이 살아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혹시 모태신앙인이기 때문에 죽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하고 싶은 분이 있습니까? 부모님이 크리스천이라서 엄마 뱃속에서부터 엄마와 함께 교회에 가고, 엄마가 기도하며 찬송하는 것을 들으며 살다가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고, 그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적이 없이 영생을 선물로 받고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지요? 만약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을 거짓말장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에 죄인으로 태어나고 의인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그런데 성경과 반대로 세상에서는 맹자(Mencius, 372?~289 B.C.)의 '성선설(性善說, the theory that human nature is fundamentally good)'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사람의 본성은 선하므로 태어날 때부터 선한 마음을 갖고 태어나는데, 이것은 수련을 통해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4덕(四德)'으로 발전해 간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수양훈련을 통하여 결국 성인이 될 수 있는데, 그 수양 방법은 마음을 비우고 모든 욕심을 버리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교에서 말하는 이러한 수련이 정말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러한 수련을 통해 형성된 '덕'이 있다고 인간의 죄가 없어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인간을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을까요? No way!!!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죽음은 세상에서 말하는 죽음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죽음은 단순히 육체의 죽음을 말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는 죽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육체의 죽음이 아닌 영혼의 죽음 즉 영적인 죽음을 말합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마 12:43-45)

인간이 아무리 덕을 쌓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욕심을 버린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마음을 비웠을 때에 마귀는 전보다 더 악한 귀신을 더 많이 데리고 비운 마음 속에 데리고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크리스천인 우리는 결코 마음을 비우면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질 때에 우리는 악한 세대 속에서 세상과 전혀 다를 바없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마음을 비우면, 마귀는 교만이라는 영을 집어넣는데 그것은 이세상에서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것이며, 인간을 파멸로 이끌어가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한 마귀의 미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어떠한 행위나 노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며 그것이 믿음의 출발점입니다.

(1) 허물과 죄의 의미

"허물"(trespass)이라는 말은 '과실, 실수'(fault), '범죄'(offense, sin), 그리고 '넘어짐'(fall) 등의 뜻으로 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쓰였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trespass)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trespass)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5).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fault)한 일이 드러나거든"(갈 6:1). 
"이러므로 너희 죄(fault)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약 5:16). 
"예수는 우리 범죄함(offense)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롬 4:25).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offense)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롬 5:20).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sin)사함을 받았으니"(엡 1:7). 
"허물(sin)로 죽은 우리를"(엡 2:5). "또 너희의 범죄(sin)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trespass)를 사하시고"(골 2:13). 
"저희의 넘어짐(fall)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롬 11:12).

"허물"(παράπτωμα 파랍토마, trespass)이라는 말은 "무단 침입" 또는 "위반"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 땅에 금을 그어놓고, 금을 밟으면 죽는 게임을 대부분 해보았을 것입니다. '피구'를 할 때 공을 피하느라 실수로 금을 밟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 공을 맞지는 않았지만, 금을 밟으면 죽습니다. 이렇게 실수로 금을 밟는 것이 허물입니다. 또 어릴 때에는 책상에 금을 그어놓고 짝꿍이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심술궂은 아이들은 일부러 금을 넘어가서 화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도 허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도둑이 남의 집에 허락받지 않고 들어가는 것 역시 허물입니다. 어느 집에 갔을 때, 그집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물건을 쓰는 것도 허물입니다. 즉 실수로 했건 의도적으로 했건 다른 사람의 구역을 침범하는 것, 다른 사람의 권리를 빼앗는 것, 하지말아야 할 것을 한 것이 허물입니다.

"죄"(ἁμαρτία 하마르티아, sin)는 "과녘에서 빗나갔다"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정확하게 맞추지 못한 모든 것을 '죄'라고 합니다. 과녘에서 조금 빗나갔건 많이 빗나갔건 일단 빗나간 것은 모두 죄입니다. 살인을 한 사람이나 누구를 미워하기만 한 사람이나 똑같은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2) 허물과 죄의 내용

성경은 우리가 과거에 허물과 죄로 인해 죽었다고 설명하면서 어떻게 죽었었는지에 대해 2, 3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 세상 풍속을 좇고"라고 나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거룩과 반대되는 죄악된 세상입니다. 인간은 아담의 선악과 사건 이후 영적으로 죽게 되면서 세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우며 익히며 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아닌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즉 사단을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요일 5:19)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이들은 사단의 지배하에서 세상의 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이런 자들은 천국과 지옥은 관심이 없고 현실세계 속에서 만족을 찾으려고 합니다.

따라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는데 이러한 삶을 사는 이들을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진노"란 "하나님의 진노"를 말하며 따라서 "진노의 자녀"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자녀"를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3:36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영적인 인간은 자신의 육체의 욕망을 절제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죽은 인간은 육체의 욕망의 노예가 되어 육체가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즉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데, 이러한 상태는 동물의 세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과거에 이러한 삶을 사는 존재였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구원할 수도, 구원받을 수도 없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본문 4절 앞부분에 "그러나(δέ 데)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순종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과거에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함께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도 주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즉 거듭남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거듭남의 은혜는 하나님의 긍휼하신 사랑 때문에 은혜로 얻은 것이지 우리의 어떠한 행위로도 얻을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은 1절에서 "~ 살리셨도다"라고 현재의 상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사랑으로 인해 과거에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새롭게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마땅한 우리들이지만, 그 진노를 피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어제까지, 아니 조금 전까지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부터는 진노의 자녀가 아닌 사랑의 자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더이상 이 세상의 풍속을 좇아가지 말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거룩한 백성답게 성경에서 지시하시는 삶의 방식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에 토달지 말고 100% 순종하며 살므로 은혜받은 자녀로서 죄와 관계없는 의의 종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받은 사람의 생활 태도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삶을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살 수 없으며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실 때 그러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삶을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태어난 우리는 결코 살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온전히 따라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오늘 나의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죄인이었던 저를 긍휼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원하여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비행기를 타고 높은 하늘 위에 올라가서 땅을 내려다보면, 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높고 높은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실 때 하나님의 눈에도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이 그렇게 잘났다고 아둥바둥하며 살아가는 지 모르겠습니다. 조금만 높이 올라가서 보아도 전혀 보이지 않는 무가치한 존재처럼 보이는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하고, 하나라도 더 높아지려고 하며 그렇게 인정받지 못해서 안달하는지... 정말 어리석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러니 하나님께서 생각하실 때에는 오죽 더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인생을 불쌍히 여기사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시고 자비하신 그 성품을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그 크신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몸소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희생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과거에는 허물과 죄로 죽어서 주님과 관계가 없었던 저였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거듭남으로 주님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신 성령님의 은혜를 찬송합니다.
주님의 그 크신 은혜를 생각하며 오늘 하루도 찬송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제 입에서는 이 사람, 저 사람, 이 교회, 저 교회를 비판하는 모든 죄악된 모습이 사라지게 하시며, 오직 소금으로 간을 고르게 하듯이 은혜로운 말과 격려하고 위로하고 회개케 하며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말만이 나오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육체의 열매를 맺던 제가 이제는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원합니다. 저를 오늘도 성령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면서 과거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으므로 강퍅했지만, 오늘 이시간부터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 온유하고 겸손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느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저를 오늘도 새롭게 변화시켜 주옵소서. 그래서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되어 가는 성화의 모습을 저 자신도 느끼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살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