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니골라당ㆍ이세벨ㆍ유태회ㆍ발람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기도하는 동역자들에게 앞으로 나타날 촛대교회(메노라처치)에 대해서 김시환 목사의 글을 연재하고자 한다. 김시환 목사는 뉴저지한밝교회 목사, 미국합동장로교총회 서기 및 기독저널 주필을 역임하였고 뉴욕에서 러브영피플 사역을 하였다.<편집자 주>

 

현대판 니골라당, 이세벨, 유태회, 발람 

요한계시록 2~3장에서의 ‘이방인’이란 옛날 유태 우월주의 선민의식이 말한 ‘혈연적 이방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거부하고 적대시하는 영적 자세를 지닌 모든 인간을 말한다. 그런데 그런 무리들이 교회 안에까지 침투하여 들어와 크리스천 행세를 하며, 교회를 괴사증후군 쪽으로 끌어가는 무리들이 되었다. 그 무리들이 바로 이세벨ㆍ니골라유태회발람의 무리들이다.

그들은 어떻게 교회괴사 증후군을 일으켰는가? 그것은 크리스천의 ‘아가페 패러다임’ 즉 거듭난 크리스천 인격(영성)을 파괴함으로써 이루었다. 그들은 어떻게 그 크리스천의 아가페 패러다임을 파괴할까? 여기에서 이를 간략히 정리해 보자.

◆ 니골라당은 성경을 인간 ‘이성(理性)의 재판정’에 끌고나와 피고석에 앉혀놓은 자들이다.

(계 2: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그들 가운데에는 성경대로 믿는다 하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종교 이기주의적 야망이나 타산을 위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사이비 보수신학)하고, 가감 변조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범하는 인간들이다. 그런가 하면, 그들 가운데엔 성경을 신화라 하는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은 성경을 편의대로 선택한 자료와 혼융-가감-변조하는 것은 물론, 창조주의 존재여부를 자신들이 판정하며, ‘메시아(하나님) 자격 적부심사’까지 하는 자들(자유주의 신학)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성이 원래 피조물로서의 한계에 갇혀있어서, 창조주를 판단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인정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지적(知的) 오만에 빠져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이성이 그나마 타락해서 이해타산 밖에 모르는 자연과학이나 일반 학문의 종노릇이나 한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지도 못한다.

그러다가, 자기 야망이나 필요에 따른 ‘영웅 메시아’ 상(민중신학)을 그리며 그것을 미화하다가, 결국 스스로 그런 영웅 메시아(종교 통합주의)로 행세하게 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 위선을 가증히 여기시며, 반드시 대적(對敵)하여 부순다 하셨다.

◆ 이세벨은 양심의 기준에서 예수의 아가페 윤리실천 절대명령을 옆으로 밀쳐놓는다. 

(계 2: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의 실천을 향하는 사람을 ‘신 율법주의자’라 정죄하며,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것을 거꾸로 바르게 나가는 이에게 뒤집어씌운다. 그만큼 이기적 번영과 이익 극대화(성공주의)의 탐욕에 편집(偏執)되어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이 탐욕을 위해 하나님을 ‘거래대상’으로 보는(우상숭배)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속적 번영 여부로 신앙의 척도를 삼고, 하나님의 초자연적 권능(샤머니즘)’에 탐익되어, 자기최면으로 자신이 ‘초자연적 권능’이나 ‘번영하는 축복’을 받은 하나님의 사자로 꾸미기까지 한다.

그런 자들은 성령(아가페)이나 천국이나 성경 지식도 이익을 위한 자산가치 중의 하나로 여기는 자세이다. 그리고 이 탐욕이 반드시 끌어들이는 샤머니즘적 잡령들을 ‘진리의 영’과 분별하지 못하고 성령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다가, 알게 되어도 거의 대부분이 그것을 회개하지 못하고, 자신과 남에게 최면술을 써서라도 성령으로 속인다(은사주의).

예수께서는 이를 영적 음행으로 판시(判示)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영적 음행의 더러운 실체를, 그 영적 음란의 침상(寢牀)을 뒤엎어서라도, 드러내겠다 하셨다. 한 마디로 말해 귀신에 사로잡힌 실상은 정신병리적 증상인데, 바로 그 증상을 숨기지 못하고 모조리 드러내신다는 뜻이다. 즉 그런 자들은 반드시 그 정신병자의 모습을 감추지 못하게 되는 징벌을 못 면한다.

 ◆ 유태회(사탄의 회당)는 고의로 그 이성과 양심을 하나님께 대단히 충성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꾸미는 자들이다.

(계 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유대회)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그러나 실은 그 의지가 완전히 ‘종교적 엘리트이즘’에 묶여 있다. 그들은 종교의전과 제도와 기구를 신성화성물화(聖物化) 하면서, 자신의 권위의 의상(衣裳)으로 삼아, 자신의 거룩을 가장(假裝)하여 돋보이게 하는 짓을 즐긴다.

이를 위해 교회의 법과 행정제도나 정치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과 자기의 소속집단을 ‘정통보수주류’로 만들어 종교지배권 장악에 혈안이 된다. 하나님과 성경도 자신의 경건함과 선함을 드러내는 도구요, 자신의 위광(威光)을 실현하는 종교적 권위와 권력창출의 근거로 인용한다. 심지어 ‘회개의 연극’ 조차 철저하게 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겉보기로는 그들 나름의 정직성실정의법준수가 있지만, 그 모두가 자신의 권위와 권력의 정당한 근거로 내세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자기가 필요로 하는 여러 신학적 주장을 편의대로 뒤섞어, 자신의 신비를 조작한다. 그래서 어디에서든 겸손을 가장한 눈을 내려뜨고, 독사의 눈으로 상대방이 자신을 높여주는지 않는지를 살핀다.

그러나 그의 실상은 교회와 교계 또는 사회에서 자기 개인이나 소속집단의 소유와 명예와 지배력에 충성하는 자이다. 그것을 마치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처럼 자기최면을 걸면서까지 자기 개인이나 소속집단의 위광에 목숨을 건다. 그래서 그는 늘 남을 재판하는 자리에 서는데, 그 판결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 윤리’가 아니고, ‘내 편이냐, 네 편이냐’가 기준이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옳고 그름’을 책임있게 판별하는 일에서는 떠나고, ‘나 또는 내 소속집단’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선’으로 인정하고, 손해가 되는 것은 ‘악’으로 판결하는 ‘사이비 선악의 윤리기준’을 내놓는다. 그런 자들은 ‘정통-보수-주류’의 자리를 가지고 개인적 집단적 경쟁과 다툼이 처절하다. 이것은 자신의 지배이익을 위해서는 목적도 수단도 얼마든지 변개시키는 자세이다. 그는 명백히 ‘종교 마키아벨리즘’으로 신들린 자요, ‘종교괴물’로 변화한 자이다.

이렇게 되면, 교회나 교단에서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진보-보수, 좌-우, 정통-비정통, 주류-비주류, .... 등으로 분류된 자들 외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인다. 모든 것은 그들간의 이해와 타협과 거래의 품목으로 환원된다. 결국 ‘종교정치’의 문제로 귀속시켜, 그곳은 교권주의자들 간의 이해갈등으로 아수라장을 이루게 된다.

그런 자들은 당연히 그들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하는 소리가 등장하면, 자기들끼리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그 메신저를 ‘공동의 적’으로 보고 달려든다. 왜냐하면, 그 메시지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자신들의 악이 드러나 괴멸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이제까지 독차지하고 있던 교권(敎權)으로 이단 논쟁을 일으키며, 이 메신저에게 함께 공격을 한다.

옛날 예수께서도 유태인 사회에서 바로 이 과정을 거치며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선진들인 삼일운동 주동자들 역시 그렇게 교회에서 출교(黜敎)당했다. 이 신앙의 선진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건국사 역시 삼일운동 역사처럼 한국교회사에서 지워졌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들을 ‘사탄의 무리(모임)’라 단정하셨다.

◆ 발람은 앞에서 말한 모든 신앙적 타락의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그것으로 성공하려는 인격(靈性)이다.

(계 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그 부패한 이성은 니골라당이요, 화인 맞은 양심은 이세벨이요, 그 괴물스러운 의지는 유태회로서, 철저하게 종교상업주의자이다. 사람에 따라 이 가운데 한 가지나 두 가지로 그 타락이 출발하지만, 결국 세 가지가 합쳐지게 되고, 종교 마키아벨리스트로 화한다.

이 가운데 단 한 가지만 잘못된 채 회개하지 않아도, 반드시 심판 대상이 된다. 하물며 종교 마키아벨리즘에 젖은 자가 목회자가 된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참담하겠는가?

이런 종교상인(발람)이 목회자나 당회원으로 들어선 교회엔 앞서 말한 부패한 종교그룹이 함께 백화점 가게 늘어놓듯이 각기 구획된 방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런 교회는 여러 신을 섬기는 ‘만신전(萬神殿, Pantheon)’을 꼭 닮아 있다. 거기에 이 발람은 ‘악세서리’처럼 반드시 ‘올바른 신앙’을 가진 이들을 끼어놓고, 필요에 따라 그 소수세력을 봐주는 척하며 쓰다가 갈아 끼운다. 왜냐하면, 이 올바른 이들이 ‘권위집단’으로 자라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 교회에서는 각 파벌끼리의 종교 이기주의적 충돌은 실은 살벌하다. 그러나 발람의 특징은 그것을 즐긴다. 발람은 이 갈등을 그들 사이에 적절한 충성경쟁과 계급적 질서와 돈과 각종 특혜와 단호한 치리로 중앙집권적 치외법권 지대를 만들 기회로 활용한다. 거기에 화려한 종교의전(宗敎儀典)을 입혀주어, ‘신비의 성역(聖域)’을 제도화 함으로써, 거래와 타협과 경쟁과 견제와 격려가 적절하게 작용하는 ‘작은 바티칸’과 같은 ‘신성 교회정치 체제’를 만든다.

이로써, 예배와 기도와 성찬과 성경 즉 하나님은 이 신성 교회정치 체제 유지를 위한 ‘도구적 가치’로 취급당한다. 작은 교황 같은 개인이나 그룹은 ‘대리 하나님’ 같이 된다. 그런 자들에게는 교회의 사람이나 기능이나 자산(資産)이 모두 자신의 명예와 지배를 위한 소유자산으로 여기게 된다. 거대 재벌교회를 만들어, 그것을 사유화하여, 자식에게 대를 이어 물려주는 행태는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다.

이렇게 되면, 교회 내의 모든 쟁점은 ‘선악정사(善惡正邪, 옳고 그른 것)’를 구분하는 것은 유치한 의견’으로 구분되어, 그것이 절대결정으로 작용한다. 이 절대결정 앞에서 온갖 이해관계는 주류 VS 비주류, 좌파 VS 우파, 진보 VS 보수, 소수 VS 다수, .... 따위로 구획되고, 그러한 진영논리대로 다뤄지는 ‘교회정치’ 만이 남는다. 이들은 모두 신성(神聖)을 가장한 세속 이익집단에 불과한 모습이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