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비결은 단 하나 ‘거룩’이다

†he 2nd Life Foundation, 뉴 욕 퀸 즈 교 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영적 전쟁은 부부간의 싸움도, 친구나 교우들 사이의 싸움도, 정치인들간의 싸움도 아니고 사느냐 죽느냐의 싸움이다. 이것은 혈과 육 즉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 아니라 생명과와 선악과의 싸움이다. 그리고 이 전쟁은 우리가 싸울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전쟁을 잘 싸울 것인가 패할 것인가, 그리고 누구편에 서서 싸울 것인가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영적인 세계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과 상관없이 평생을 영적 전쟁터에서 살아가도록 예정되었다. 따라서 싸우기 싫다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전쟁터의 포로가 되어 감옥에서 자유를 잃은 채 포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의 검 말씀의 검으로 원수를 대적하고 무찌르고자 하는 이들은 영적 전쟁터의 최전선에 서서 원수들을 물리치며 포로로 잡혀있는 이들의 결박을 풀어서 그들을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

마귀는 죄의 유혹에 잘 넘어가는 이들 즉 믿음이 없거나 연약한 이들을 자주 공격하여 넘어뜨려 포로로 삼는다. 그렇게 할 때에 별일 아닌 일로 주변이 자주 시끄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부부가 싸우다가 별거하고 이혼까지 가게 하며, 교인끼리 시기 질투하며 서로 이간질을 하다가 교회를 떠나거나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까지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구보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이들이 가장 치열한 공격을 받는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야 했으며, 그의 세 친구들은 풀무불 속에 들어가야만 했다. 요셉도 감옥에 가야 했으며, 엘리야는 850대 1로 싸워야 했다. 욥은 그의 모든 것을 잃어야만 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있는 마귀는 수천년동안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들을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최대한의 공격을 퍼붓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마귀의 공격을 허용하신다. 왜냐하면 공격을 많이 받을 수록 공격의 방향과 전략과 전술을 확실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원수의 전략과 전술을 알아야 분별력을 갖고 수많은 이들을 영적 전쟁터에서 이끌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그러한 수많은 공격들을 허용하시고 그 모든 공격을 받아 방어하는 방법과 대적하고 무찌르는 방법을 익히도록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가인을 찾아오시며 아브라함과 모세를 찾아오신 것처럼 마귀도 사람들을 찾아온다. 그리고 사람들을 에워싸고 공격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마귀의 권세를 무찔러서 승리하셨다고 해도 아직 완전한 승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완전한 승리가 이루어질 것이며 현재는 마귀가 아직도 공중권세를 잡고 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지셨다. 우리도 영적 전쟁이 무엇인지 설명을 들은 뒤에 전쟁터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영적 전쟁터에서 전쟁을 겪으며 산다. 때로는 정전상태가 되어 잠시 쉬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마귀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서 공격해온다. 그것이 과격한 때도 있고 너무나 달콤하게 다가올 때도 있다.

마귀를 대적하고 내쫓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축귀사역자들을 대단하게 생각한다. 마치 그들이 하나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수많은 귀신을 쫓아낸 경험이 있는 사람의 그 경험을 부러워하며 존경한다. 그러나 아무리 수많은 축귀사역을 경험했다고 할지라도 새로운 대상을 만나면, 그 동안의 경험과 전혀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할 때가 있다.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치신 일들만 보아도 우리는 과거의 경험이 전혀 쓸데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말씀으로만 하셨고, 어떤 이는 흙에 침을 뱉아 그 침이 묻은 흙은 바르기도 하시고, 손가락을 귀에 넣기도 하시며, 손을 잡아 일으키기도 하시며, 꾸짖기도 하시며 물에 가서 씻으라고도 하셨다.

물론 마귀가 하는 것은 패턴이 있다. 그래서 항상 같은 패턴으로 다가오므로 마귀가 개입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마귀의 전략과 전술을 알았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알았다면, 마귀를 물리치는 방법을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 과거에는 A라는 방법으로 물리쳤으나 현재는 그 방법이 먹혀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마귀는 과거에 진 것을 알기에 그것을 대처할 방안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적 전쟁터에서 항상 같은 방식으로 싸우려고 하는 이들 즉 성경을 연구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넓혀가지 않는 게으른 이들은 마귀의 밥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예수님의 치유 사역만 보아도 알 수 있지만,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전술들과 사용하신 사람들을 보아도 우리는 매번 다른 방법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지혜는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았을 때에 얻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축귀 사역의 베테랑이라고 할지라도 결코 교만할 수 없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이 도움은 되지만,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 경험 때문에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는 골리앗의 상대로 칼을 든 거인을 내보내지 않으시고 청년 다윗을 갑옷도 입지 않고 칼과 창도 없이 물매돌 5개만 갖고 나가서 싸우게 하셨다. 삼손은 나귀의 턱뼈 하나로 블레셋 군대 1천명을 물리쳤으며,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에는 매일 여리고성을 돌게 하셨다. 모압과 암몬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에는 모든 회중이 금식하며 하나님만 바라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감사 찬송하게 하셨으며,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세는 두 손을 들어 기도하게 하셨다.

많은 이들이 마귀와 싸우고 귀신을 내쫓는 것만이 영적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영적 전쟁이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도록 부추기는 마귀의 유혹을 받는 순간을 말한다. 최초의 영적 전쟁은 에덴 동산에서 이루어졌다. 죄가 없던 에덴 동산에 사탄이 함께 있었기에 그는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의심케 하는 생각을 인간에게 넣어주면서 너무나도 쉽게 인간을 마귀의 포로로 잡아갔던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 나만의 달콤한 생각에 빠지는 순간이 영적 전쟁터에 발을 디딘 순간이다. 하나님 없이 우리 개인과 가족과 사업과 교회와 나라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영적 전쟁에 빠진 것이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의 비결은 단 하나 ‘거룩’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신다. 왜 그럴까? ‘거룩’은 ‘죄’와 반대되는 속성을 갖고있기 때문이다. 마귀에게는 ‘거룩’이라는 것이 없고 ‘죄’만 있다. 따라서 우리가 ‘거룩’을 회복할 때에 마귀는 곁에 있고 싶어도 있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싸울 필요도 없이 승리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에게도 ‘거룩’이라는 성품이 없다. 오직 ‘거룩’이라는 성품은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예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그분과 온전한 연합이 되었을 때에 가능한 것이다. 당신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가? 당신의 육체와 정과 욕심을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고 그분과 함께 다시 살아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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