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욱 시 산책】

나는 은사시나무를 받아 적는다

 

                                            김종욱

 

은사시나무의 날카로운 소원은

은빛으로 빛나는가

바람 부는 그 숲은 은빛 파도 출렁이는 바다

하얀 태양이 이파리마다 진다

싱그러운 은빛 눈물로 가득한

 

삶이 그 자체로 빛나고

우리가 그 삶에 어울리도록 은빛으로 물들어 갈 때

어둠이 밤보다 깊어서

검은 모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한 은빛 비명에

잔인한 달이 백색으로 일그러짐도

나의 바다에서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아무것도 아니어서

물과 빛처럼 닮아갔는지

 

나는 전부 받아 적고 있다

은사시나무의 세세한 떨림도

씨앗으로 받고 파종하는 낙서

나무들이 자라면 이곳은 은빛 바다가 되어

안개꽃 한 다발처럼 아름답겠지

 

당신이 책장을 덮으면 언어는 하얗게 사라지고

아무런 의미 없는 백색이 빛나도록

보석 보다 빛나는 눈물을 세공하고

유리창처럼 투명해진다

투명한 얼음 같은 창이 되어 햇살을 끌어안고

햇살의 온기 은빛 건반으로 두드리며

어둠을 삼키는 서리로 녹아지고

어떤 설움이 언 땅의 서랍을 닫는다

 

당신의 눈동자는 투명해져서

반드시 유한한 무한의 침묵을 말하는

빛나는 은사시나무처럼 떨리고

나는 그대로 영혼에 받아 적는다

어쩌면 당신은 더 이상

검은 눈물을 울지 않아도 된다

울어도 백색으로 울었으면

 

나는 은사시나무를 바다 적는다

바다에는 당신의 눈물이 출렁인다

빛나며 일렁이는 문장이

알 것 같은 윤곽도 모르게 되도록

우리가 삼킨 많은 어둠

하얗게 빛나며 출렁인다

 

당신은 읽고 있다

빛을 숨겨놓은 어둠 속을

하얗게 빛나는

나는 당신의 은사시나무를 바다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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