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오늘은 정오 12시에 광주시민 전체가 총궐기가 한다고 한다. 버스 끊기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아침부터 교무회의로 분주했던 담임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시면서 하신 말씀이었다. 5월 17일, 5.18 민주화운동이 터지기 하루 전이었다. 그동안 시위는 대학가 주변에서만 이루어졌었다. 그런데 오늘은 광주시민이 총궐기를 한단다. 1교시가 끝난 10시쯤, 학교를 나섰다. 이미 버스는 끊기고 삼엄한 거리에는 M16에 대검을 꿰찬 공수부대원들만 보인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호기심에 애들과 시내로 향했다. (내가 다닌 학교는 걸어서 시내로 나갈 수 있는 금남로 끝자락에 위치한 학교였다.) 여기저기 "군부독재 독재타도"라는 외침이 들렸다.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있고 중무장한 공수부대 진압군들이 오와 열을 맞춰 서 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나는 그 날, 1교시 자율학습 때 창밖을 바라보며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시던 국어선생님의 표정을 37년이 흐른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시국을 아파하며 나라를 걱정하던 선생님의 마음 말이다.

# 2.
"탕, 탕, 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피투성이가 된 채 사람들이 쓰러지고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다. 나도 무조건 달렸다. '교련복 입은 사람들은 무조건 쏴라고 했다던데 휴, 나는 다행이다. 그냥 교복만 입었으니.' 그래도 무서웠다. 죽어라고 달렸다. 대검을 꽂고 얼굴에 철망을 두른 하이바를 쓴 군인들이 달려오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금남로 근처 광주공원 주변에서는 중앙여고 누나들이 많이 죽었다고 했다. (양동 재래시장 닭전머리 근처 위치) 그리고 그런 누나들이 죽어가는 모습에 항의하던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많이 죽었다. (광주공원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와서 도란도란 얘기하며 쉬는 곳이었다.)

3.
"오늘 헬기 공중사격이 있다는 말이 있다더라. 전두환이가 광주시민 다 죽여도 된다고 했대." 반평생을 광주에서 목회한 경상도 목사였던 중학교 1학년 학생의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었다. 중1학생은 말하기를 "아버지 말씀에 나는 서둘러 예배당 창문을 담요로 둘렀다. 아버지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이태 전 개척을 하셨고 교회는 치열한 격전지였던 농성동 광송간 8차선 도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예배당이 세들어 있는 건물 바로 앞 8차선도로는 진압군과 대치한 시민군의 바리케이트가 위치해 있고 바로 옆 전봇대는 시위군에게 주먹밥을 나눠주는 곳이기도 했다. 어느 날엔 진압군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타이어로 겹겹이 쌓아올려 불을 질렀다. 타이어가 타는 열기에 아스팔트가 녹아내렸고 타이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 4.
"경환이 봤니?" 잔뜩 겁 먹은 표정으로 경환이 엄마가 찾아오셨다. 경환이는 내 친구다. 여기저기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경환이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그 녀석 어디갔지?' 경환이 어머니는 수퍼마켓을 운영하셨다. "경환이 왔어요?" "아니." '이 녀석, 대체 어디 간거야? 엄마 속썩이고.' 그날, 정말 심각했던 날인데 경환이는 하루종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경환이 어머니는 하루종일 발을 동동 구르셨다. 다음날, 경환이네를 찾았다. "경환이 있어요?" "경환아!" "응~!" 부시시한 모습, 겸연쩍은 표정으로 눈을 비비며 나온다. "어제 어디갔었니?" 경환이는 동네 형들과 아저씨들과 함께 장갑차를 타고 광주시내를 이리저리 다녔다며 무용담을 한창 늘어놓았다.

# 5. 
적막이 흐르는 어느날 저녁, "탕~!" 소리가 들리더니 큰 이모집은 피바다를 이루었고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육군통합병원 근처 2층에 세 들어 사는 이모집이었다. 그날 저녁, 이모부와 이종사촌 여동생은 '바깥 상황이 어떻게 되는가' 궁금해 했고 살짝 커텐을 젖히고 바깥을 바라보는 순간, M16으로 쏜 총탄에 이모부의 턱뼈가 박살이 났다. 사람들이 몰려왔고 이모부는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렇게 해서 이모부 가족은 '5.18 부상자 가족'이 되었다.

# 6.
새벽 6시쯤이었을까?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건물이 흔들렸다. (그때 나는 교회가 임대한 건물 3층, 교회 사택에 살고 있었다.) "그르릉 그르릉!!!" 땅이 흔들리는 소리에 '무슨 일이지?' 싶어 창문을 열고 밖을 쳐다 보았다. "아~!" 처음 보는 그 광경에 겁이 질렸다. 안기부가 위치한 잿등 너머에서 내려오는 수십대의 탱크들, 수십대의 탱크가 광주시내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순간 아버지를 외쳤다. "아버지, 탱크!!!" 바로 그날, 시민군이 있던 도청을 진압군에 뺏겼다고 했다. 전두환 진압군은 탱크를 앞세워 도청을 진압했다.

◈ 팩트체크 : 광주5.18 민주화운동은 근래 지만원씨 등 일부 극우파들이 떠드는 "북한 특수부대가 와서 선동하고 장갑차를 몰고... 제1광수, 제2광수..." 그런 것 아니고, 평화로운 시위에 공수부대원들이 먼저 발포한 것이라고 JTBC 팩트체크에서 정리하였다.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헬기로 광주상공에서 사격지시를 내려 시민들에게 무차별 발포한 것도 팩트이란다. 또한 소위 '5.18 유가족회' '5.18 부상자회' 라는 것은 반정부단체가 아니라 많은 경우, '세월호 유가족'들처럼 그냥 무고하게 죽임을 당하거나 부상을 당한 이들의 가족이라는 것도 팩트이다. 아직도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가짜뉴스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특히 청소년들도 이 가짜뉴스에 속아서 그렇게 믿고있다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 사회가 하루속히 낡은 냉전 이데올로기 프레임, 왜곡된 반공주의에서 벗어나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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