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 39세에 갔으니 벌써 30년이 흘렀습니다.

안면도 휴양림 안에 있는 채광석 시비

과 꽃

                              채광석

 

서방에서 순 깡패짓만 골라 하던 그 새끼 
광주일고 문턱에도 가지도 못하고 
겨우 상고에나 다니던
그 새끼 
툭하면 땡땡이치고 
툭하면 
야 꼬마야 돈 내놔 
야 꼬마야 누나 내놔 
하던 그 새끼가 
어느날 군인이 되어 
우리 집에 찾아왔어

학교 끝나는 시간만 되면 
스포츠 머리에 기름 발라 넘기고 
어이 은희 씨 
수피아 여고생허고 상고생허곤 
영 수준이 안맞는당가 
키득키득 우쭐거리며 
누나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그 새끼

야이 씨발년아 
누군 공부 못해 일고 안간 줄 알어 
그놈의 돈 때문에 청춘 썩는 거지 
박박 악쓰던 바로 그 새끼였어

그 새끼는 느닷없이 
벌벌 떠는 아버지 앞에 넙죽 큰절을 했어 
은희 누나를 절대 집 밖으로 내보내지 말라고 
나가면 무조건 개죽음이라고 
죄없는 광주시민 다 죽이는 
공수놈덜 샅샅이 때려잡고 
민주화되면 
사람돼서 돌아오겠다고 
숨 넘어가듯 주절댔어

그때서야 난 알았어 
그 새끼 군복과 공수부대놈덜 군복이 틀리다는 걸 
그 새낀 회색 깨구락지 군복을 입고 있었어 
그때였어 
처음으로 내 머릴 쓰다듬어 주고 
누나에겐 
수십통의 편지를 툭 던져주었어 
그리곤 어둠 넘어 사라져 갔어

그날부터 누난 울었어 
이 난리에 사귈 놈이 없어 
저런 날깡패를 사귀어 
아빠 호통에도 아랑곳 않고 
매일 헌혈을 갔다와선 
한통 한통 편지마다 
얼굴 파묻고 울었어

나타나지 않았어 그 새끼는 
하얀 교복 입고 등교길 서두르는 
작은누나 골목길 어귀 
예전처럼 뒷호주머니에 손 찔러넣고 
보라색 배꼽바지 펄렁거리며 
헤이 
헤이 
낄낄거리며 거들먹거리지도 않았어 
우리 반 애들 돈 빼앗던 
그 새끼 똘마니들도

하늘나라 가 버린거야 
그 새끼는
아예 하늘로 올라가 버린 거야 
누나가 매일 과꽃을 꺾어와 
한 잎 두 잎 집 골목에 흩뿌리기는 하지만

맨날 하얀 눈물 
꽃잎처럼 
하늘거리기는 하지만

 

1948년 충남 태안 출생, 대전고졸업,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학과, 시인, 신협중앙회 근무중 1987년 교통사고로 소천. 향년 39세. 

 

안면도 휴양림 안에 있는 채광석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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